[인터뷰]신임 신성철 총장,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선도 대학' 비전 제시
"MIT 총장 KAIST서도 나와야죠"···학생 등 구성원과 공감대 형성, 수평적 리더십 강조

KAIST에 신성철 총장이 부임하면서 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 과학기술계 등과 연계해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야전사령관의 역할을 기대하는 구성원들이 적지 않다.

신성철 신임 KAIST 총장은 개교 46년만에 첫 동문 총장이다. 그는 KAIST에만 교수, 부총장으로 22년 몸 담았다. 그동안 DGIST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대덕클럽 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덕특구의 지역 특성과 한국 과학기술계의 현장에 대해 폭넓은 이해와 식견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학계 현장에서는 역대 KAIST 총장들이 KAIST와 대덕특구를 연계해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대로서 역할하겠다고 나섰지만 연구현장에서 체감하는 것은 실질적인 교류 활성화가 부족했다고 평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신 총장은 내·외부적으로 교류의 변화를 이끌어 KAIST와 지역공동체, 한국 과학계에 새로운 활성을 이끌어 낼 적임자로 기대를 받고 있다. 덕분에 한국 과학계의 야전 사령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적지 않다.

KAIST 내부 사정에 익숙한 만큼 부임 초기부터 바쁜 행보를 걷고 있다. 보직자들도 대부분 오랫동안 신뢰를 갖고 지켜본 관계였기 때문에 격식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임 이후 학내 곳곳을 다니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신 총장은 앞으로 KAIST를 이끌 계획, 지역과의 연계,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핵심 방향타를 제시했다.

신성철 신임 KAIST 총장.<사진=김요셉 기자>
신성철 신임 KAIST 총장.<사진=김요셉 기자>
◆ "지역 뿌리 알아야···출연연, 대학 등과의 교류 앞장설 것"

"KAIST 설립의 청사진이 된 터만 보고서(Terman Report)에는 KAIST 발전에 대한 확신이 미래완료시제로 담겨있습니다. 학내 구성원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혜택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KAIST를 위해 역사적 사명감, 비젼을 가진 사람이 있었고 그동안 구성원들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자신의 뿌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성철 총장은 지역과 역사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신 총장이 15년 후 미래 정책을 담은 '2031 비전위원회' 참가자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것도 터만 보고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KAIST 설립과정에 대한 영상이다. 

프레드릭 터만(Frederick E. Terman)은 미국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역임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지난 1970년 한국이 한국과학원(KAIS, KAIST의 전신) 설립을 위한 교육차관을 미국 국제원조처(USAID)에 요청하자 당시 터만이 단장으로 파견되어 이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같은 팀원으로 파견돼 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한 이가 정근모 KAIST 석좌교수다. 당시 30세에 불과했던 정 교수는 국가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보고서 마지막 장에 KAIST가 한국 교육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미래 완료 시제로 썼다. 이후 KAIST는 한국 산업체, 연구소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으며, 케냐 등 개발도상국서 벤치마킹을 원하는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 발돋움했다.

"KAIST 행정직원과 교수에게 축복입니다. 신입 교수, 행정직에게도 이러한 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중요성을 설파할 계획입니다."

학생들이 지역에 대한 자존감을 갖고 캠퍼스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새로 시작한 행사인 'Happy Birthday breakfast with the president'는 반응이 좋다. 아침에 신입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침을 함께 하며 손수 기입한 생일카드를 건네고, 미래를 위한 조언도 하고 있다. 앞으로는 대학원생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 학생들이 지역을 알기 위해 여름 계절학기 등을 통한 연구소 탐방, 지역 산업 투어 등도 모색할 계획이다. 

"KAIST 학생들이 지역을 이해하면서 IBM,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의 회장을 꿈꿔야 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서 벤처기업으로 성공도 해봐야 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MIT, 스탠퍼드대 총장도 배출돼야 합니다. 이제는 한국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흐름을 좌우해야 할 시점입니다."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과의 연계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신 총장은 KAIST가 구심점이자 전문교육훈련기관(Center of Excellence)으로써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학습 뿐만 아니라 문화 등 생활 측면에서 다양한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충남대 등 인근 대학, 출연연 연구진과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지식을 함께 나누고 교류하는 '대한민국 지식 잔치'가 필요하다는 데에도 공감했다.

신 총장은 "과기특성화대학, 기업연, 출연연 등 산학연 협업이 중요하다"면서 "오픈이노베이션을 넘어 협업적 혁신으로써 연구 수행 과정을 같이 하면서 역할을 다르게 조정해 기업연은 산업, 출연연은 응용, 학교는 기초적 관점서 논의하면서 수평적 혁신을 이끌겠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 총장은 "KAIST와 대덕이 한국의 두뇌가 돼야 한다"면서 "신지식 창출과 국가 발전, 경쟁력 향상을 위해 대한민국 지식잔치를 만들고, 대덕이나 세종과도 적극적으로 연계해 지역과 대학의 공생을 이끌겠다"고 피력했다.

신 총장은 KAIST와 대덕이 한국의 두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신 총장은 KAIST와 대덕이 한국의 두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김요셉 기자>
◆ 신 총장 "KAIST를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선도 대학으로"

"이제는 마음의 담을 낮춰 주변과 함께 가야 합니다. 국내 기관끼리 경쟁하는 시기는 끝났습니다. 우리의 자원을 갖고 어떻게 세계 속에서 생존할 것인지 고민하고 협업해야 합니다."

신 총장은 부임하면서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 선도 대학'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현 세계 40위권 대학에서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수준의 경제, 기술 부가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는 대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과의 비전 공유에 주력하고 있다. 교육혁신, 연구혁신, 기술사업화 혁신, 국제화혁신, 미래전략 혁신 등 5대 혁신 방안을 담은 비젼 2031 위원회도 가동되기 시작했다. 오는 2031년이 KAIST 개교 60주년을 맞는 해인 만큼 플랫폼을 구축해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신 총장은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선도 대학'을 비전으로 제시했다.<사진=김요셉 기자>
신 총장은 '글로벌 가치창출 세계선도 대학'을 비전으로 제시했다.<사진=김요셉 기자>
기존에 총장만 선언하고 간부, 학생들이 따르는 형식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탑다운 방식에서 바텀업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공동위원장은 보직자 중에서 발령을 냈고, 실무자는 자발적인 신청자를 받아 듀얼 헤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신 총장은 "이 변화에 공감해 한 분과에 60여명이 몰리는 등 성황을 이뤘다"면서 "KAIST에 새로운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해 한영 이중 언어 소통 가능한 글로벌 캠퍼스를 구축하고 외국인 학생과 교수도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인 외국인 학생에게도 자산이 되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심어주고 지역과 연계된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추진할 계획이다.

신 총장은 "이상적인 것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이지만 외국인들도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면서 "마음 속 플랜은 박사학위 받는 외국인 학생이 논문의 일정 부분을 한국어로 하면서 한국에 대한 애착심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팀 기반 학습 등 융복합 프로젝트를 통한 인재 육성도 본격화된다. 특히 지난 6년간 DGIST 총장으로 부임하며 도입한 융복합 무학과 트랙을 내년부터 선택제로 추진할 예정이다. 융복합의 기초 가치, 세부 전공을 압축한 교재를 개발해서 정통적인 학과와 다른 차원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창업, 저널리즘, 과학정책, 기술변리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재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수평적 협업연구와 달리 기초학문 분야에서는 수직적 깊이가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협업 연구실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의 교수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일본은 교수, 부교수, 조교, 학생 등으로 구성된 강좌제를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제도는 연구실을 시스템화해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후계자로 하기 때문에 교수가 은퇴하더라도 지식이 축적된다. 일본이 노벨상을 수상한 주요 원동력 중 하나로 꼽힌다. 

신 총장은 "한국은 교수 은퇴와 동시에 연구실이 폐쇄되어 그동안의 지식과 노하우가 사장되는데 국가적인 낭비이며, 연구비의 유실"이라며 "우선 선택형으로 도입해 3~5명 정도의 세부 전공 분야 교수를 한 팀으로 구축하고, 원로 교수는 명성을 기반으로 연구방향을 제시하고, 신진 교수는 연구비 걱정 없이 자신의 아이디어 갖고 연구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연구에 대해서는 글로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BFO(Best, First, Only)형 연구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인공지능, 국방, 바이오, 군집 드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발된 기술을 활용해 벤처기업이 스핀오프해서 산업에 파급효과를 가져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들이 학문, 기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BFO형 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대형 융복합 플래그십 과제 연구도 실시될 예정이다. 

◆ 국가 거버넌스 혁신 위해 "부총리급 콘트롤 타워 필요"

"국가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가장 큰 문제는 부처간 이기주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미국은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차원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한국은 부처간 협력이 잘 되지 않습니다. 투자 대비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부총리급 콘트롤 타워가 구축되어 모든 부처를 연계하고 자원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 총장은 한국 과학계 차기 리더의 국정 운영에 대해 과학기술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요한 정책 방향은 정권에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큰 정책 흐름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임자가 했던 정책을 모두 없애고 새로 추진하는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총장은 강성모 전임 총장이 추진한 KAI plus 등 일부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신 총장은 한국의 경쟁 상대가 미국, 중국, EU, 일본 등인 상황에서 단순한 연구비 경쟁보다는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투자 필요성도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정부주도로 연구 분야 투자가 집중되어 왔다면 연구자를 중심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연구자가 경쟁력이 있다면 세계적 연구기관과도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가장 우수한 연구자를 뽑아서 이들에게 필요한 기간,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또 파괴적 혁신 과정서 발생하는 도전적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 총장의 가장 큰 목표는 수평적 리더가 되는 것이다. 리더는 구성원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가 최근 가장 듣기 좋은 이야기도 가슴이 뛴다는 얘기다. 지속적으로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학생식당도 종종 찾아 학생들과 소통에 나설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신 총장은 형식주의 행사에서 벗어나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 과학강국의 총장, 관료 등 리더들은 주요 행사 자리를 지키며 현장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것이다.

"형식이 아니라 내실 중심으로 교류하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한국이 한단계 도약하려면 그동안의 보여주기식 행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주관자는 최소한 기조강연은 듣고 가야하며, 현장을 지켜야 합니다. 저부터 먼저 실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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