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회, 비정규직 현황 등 실태 조사 추진···"예산·적용대상 관건, 정부 가이드라인 나오길 눈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과학기술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부터 시작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키로 하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은 앞으로 어떤 영향이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22일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비정규직 현황 등 실태 조사를 기관별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 비율(2016년 12월 31일 기준)은 평균 23.4%에 달한다. 총 인력 1만5899명 중 3714명이 비정규직이다. 

이들 중 한국생명공학연구원(34.3%), 한국한의학연구원(36.4%), 한국생산기술연구원(39.0%), 한국건설기술연구원(36.0%), 한국식품연구원(37.6%), 세계김치연구소(34.7%), 한국화학연구원(33.2%), 안전성평가연구소(34.6%) 등 8곳은 3명 중에 1명이 비정규직에 해당한다.

출연연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어떤 방법으로 정규직화 할지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전환 대상과 방식, 재원 등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향후 적지 않은 난관마저 예상된다. 또 연구기관별 업무 성격에 따라 고용형태 등이 천차만별로 달라 고려할 점도 적지 않다. 

우선적으로 정규직 전환 범위에 대한 논란이 크다. 전환 대상 범위를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할지 출연연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출연연은 특성상 비정규직 연구원 구성이 어느 공공부문 조직보다 업무 판단이 복잡하다. 같은 석박사급이라도 기간제, 단기계약직, 별정직, 연수과정노동자, 위촉연구원, 박사후과정 등 본질은 비정규직이지만 업무특성이 모두 다르다. 

이에 일률적인 잣대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내부 조직 간의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출연연 한 인사담당자는 "정규직들은 연구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출연연에 들어온다. 반면 비정규직은 단순 업무 등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다. 일괄적인 기준으로 정규직 전환은 어려울 것이다. 출연연의 특성과도 맞지 않는다"며 "정부 방침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출연연이 선제적으로 방침을 세우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연 인사담당자도 "출연연 상위 운영기관인 연구회가 비정규직 현황 파악을 요구해 왔지만 범위를 어느 선까지 해야 기관에 유리한지 모르겠다. 다른 기관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뾰족한 해법이 없다"며 "정부의 입장이 명확해 질 때까지 눈치보기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재정 부분도 큰 걸림돌로 작용할 예정이다. 현재 출연연의 인건비는 정부가 간여하고 있는 형태다. 매년 총인건비 허용 범위에서 사용해야 한다. 총인건비는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정규직 직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를 모두 더한 금액이다. 

만약 정부가 추가 재원 없이 정규직 전환 방안을 내세울 경우 출연연은 고용 인원을 한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PBS(성과주의예산제도) 비율이 높은 출연연의 경우 예산 자체가 불안정한 만큼 정규직 전환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태다.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 운영 연구기관은 비영리 단체로 사실상 돈 벌기가 힘들다. 인건비 예산 규모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더욱이 임금은 노사의 문제와도 연결되기에 복잡하다"며 "정규직 전환을 늘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관계자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해 출연연의 비정규직 인원 등을 파악 중이다. 연구회에 일방적으로 출연연에 방법을 강요할 수는 없다"며 "재원 마련과 수월성 문제 등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 기조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화 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오는 부담감이 크다. 한꺼번에 정규직화 시키면 예산 등의 문제로 신규 인력 채용, 해외 우수 연구자 유치 등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우수한 연구자 중심으로 정규직화 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피력했다.

과학계 한 관계자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과학계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복잡한 구조로 얽혀있기 때문에 신중하면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며 "무조건적인 접근 보다는 연구수월성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큰 원칙을 전제로 하면서 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과학계 한 원로는 "정규직 전환 정책이 실행에 옮겨진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예산 확보에 대한 고민이 없이는 전환 규모가 늘어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규직 전환은 연구자에게 안정적 연구환경 제공하고 과학기술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일회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