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대통령 의지와 소통 중요…구체적 대안과 인선 기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는 정책 심의 어려워, 이름 바꿔야"

"과학기술 발전은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미래창조과학부를 폐지하지 않고 확대 개편한 것은 문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산편성권과 출연연의 인력 TO는 여전히 기재부에 있다. 아직 세부 실행안이 마련되지 않았는데 앞으로가 중요하다.(과학계 정책 전문가)

"미래부 1, 2 차관을 그대로 두고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가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차관급 혁신본부에서 무엇을 할까? 미래부 조직만 커지면 관료들이 늘어나고 현장의 연구자들에게 갑질할 인력만 많아지게 되는 셈이다."(출연연 정책 전문가)

문재인 정부 조직 구조조정 대상 1순위에 올랐던 미래창조과학부가 확대, 개편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과학계 현장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에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예산 편성권과 정부출연연구기관 인력 TO는 여전히 기획재정부에서 쥐고 있어 대통령이 보다 적극 현장과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정부와 청와대, 더불어민주당은 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고 정부 조직을 18부·5처·17청·4실로 개편하는데 합의했다.

개편안에 의하면 미래창조과학부에는 기존 1, 2 차관과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이하 과기혁신본부)가 새롭게 설치된다. 과기혁신본부에는 과학기술정책국, 연구개발투자심의국, 성과평가정책국이 구성되며 중요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예비타당성 조사권도 미래부로 이전된다. 기재부가 갖고 있던 지출한도(실링) 결정에 미래부가 초기부터 참여하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과 다른 과학계 예산구조 논의의 변화가 기대된다.

또 정부출연연구기관 인건비와 운영비 조정권도 미래부가 갖는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 자문, 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도 대통령이 맡는다. 과학계의 자율성 확보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연구현장에서는 대통령이 과학기술 분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의지를 보인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제 과학계가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제 역할을 하려면 인력과 예산 편성권도 필요한데 이는 여전히 기재부에 있어 자칫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많다.

◆ 예산권 일부 왔지만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권, 지출한도 결정 참여 등 미래부의 권한이 커졌지만 실제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기재부에 있다. 그럼 아무리 과학계에서 자율성을 갖고자 해도 제자리 걸음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개편으로 그동안 기재부에서 갖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권은 미래부로 이관된다. 이는 5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형 R&D 과제의 경우 예타를 통과해야 과제가 진행할 수 있는 제도. 지금까지 미래부에서 기술성을, 기재부에서 경제성을 심사하면서 과제 진행 속도가 더디고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개편으로 미래부가 예타 조사를 전담하게 돼 질적 개선이 기대된다.

지출한도(실링) 설정도 그동안 기재부에서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과 달리 미래부가 초기부터 공동으로 참여한다. 정부출연기관의 인건비와 운영비 결정 권한도 미래부가 갖는다.

하지만 인력 TO와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기재부에 있다는 게 과학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인력 TO권을 갖지 못할 경우 출연연에서 필요한 인력을 제 때에 확보하기 어렵다. 또 비정규직 문제도 안고 있어 출연연으로서는 여전히 인력난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예산 편성은 한정된 재원을 분배하는 것으로 예산권의 핵심이다. 연구개발 진행도 예산권에 따라 축소, 확대되는 사례가 많아 예산권 없이는 창의적인 연구, 미래지향적 연구는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학계 한 관료는 "이번 예비타당성 조사권이 미래부로 이전되면서 좀 더 신속하게 예타 심사가 이뤄지고 질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출연연 인건비와 운영비는 미래부에 있으면서 인력 TO권과 예산 편성권이 여전히 기재부에 있다면 이번 개편은 사실 크게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기재부에 R&D과가 있는 한 연구현장은 여전히 옥죔을 당할 것"이라면서 "기재부의 R&D과를 없애고 지속적인 자율성을 위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심의관 체제도 필요하다. 혁신본부 내 3개국 중에서 민간인 심의관을 기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책 전문가는 미래부가 예산권의 일부만 가져오는 것으로 다부처간 협력을 이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연구개발이 부처별로 나눠먹기 식으로 찢어져 있고 협력은 안되고 있는데 미래부가 예타와 실링권 참여로 협력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부처간 총괄한 연구개발 예산권을 미래부가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과기혁신본부를 미래부 아래 둔 상태에서 어렵다. 변화 없을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사회와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분화되고 독립성이 필요하다. 출연연을 단일부처에서 빼고 독립토록 하고 책무성을 갖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차관급 과기혁신본부, 지속적인 대통령 의지 필요

"과학계 컨트롤타워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나왔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며 과기혁신본부가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아직 디테일한 권한 등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대통령이 현장과 소통 하려는 의지와 소통창구를 마련하려는 것은 긍정적이다."

과기혁신본부는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고 연구개발 예산권, 심의, 조정 및 성과평가를 전담한다. 본부장은 국무회의에 배석해 중요 정책결정에 참여하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상정 안건의 예비검토 등 실무 지원도 수행한다.

국가 과학기술 정책 자문, 조정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은 대통령이 맡는다. 기존 국가과학기술심의회와 과학기술전략회의는 폐지되고 각 기능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로 통합된다.

과기정책기관 전문가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장을 대통령이 맡고 실행 기구로 혁신본부를 둔것으로 짐작된다"면서 "정책 결정 자문 기능과 심의 기능이 모두 넘겨질지 모르겠다. 과기계와 논의 후 결정하겠다는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와 인선에 따라 변화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과기혁신본부의 역할론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노무현 정부 시기의 과기전략본부와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는 것.

출연연 정책 전문가는 "자칫 중소벤처기업부 빼고 노무현 정부시기와 다를게 없을 수 있다"면서 "그동안 자문회의는 형식적이었다. 자리하나 만드는 격으로 가면 의미 없다. 통합은 좋지만 자문이라는 이름으로는 예산을 심의할 수 없다. 과학기술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과학계의 원로는 "미래부의 성과 평가로 연구 현장이 어려움을 겪었다. 다시 성과평가과가 국으로 바뀌었는데 갑질로 가면 안된다"면서 "대통령의 의지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인사가 중요하다. 과학계는 특히 누가 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며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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