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호 著 '한중일 경제 삼국지 2'
R&D 외부 시각, 과학계에 '자극'···한국 경제 전반 이해는 덤

우리나라 과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는 수많은 진단과 처방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과학계 관련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대목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뿌리부터 바꾸자는 근본적 개혁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가운데 과학계 외부인의 시각에서 연구개발 방향에 대해 쓴 책이 있어 흥미를 끈다. 저자가 관료 출신이라는 한계(?)아닌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비 과기부처 출신이고, 산업계를 잘 알고, 우리의 경쟁 및 협력 상대이기도 한 중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밝다는 점이 이 책에 손을 가게 한다.

주인공은 안현호 전 산업부 차관이다. 공직을 그만두고도 발품을 많이 팔아 중국과 일본의 현장을 많이 가고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고 들은 것과 생각한 것을 기반으로 책을 썼다. 그 책이 '한 중 일 경제 삼국지 2'. 4년 전 1편에 이은 속편이다.

'한중일 경제 삼국지 2' 저자: 안현호, 출판: 나남.<사진=출판사 제공>
'한중일 경제 삼국지 2' 저자: 안현호, 출판: 나남.<사진=출판사 제공>
이 책에서 그는 우리나라 정부의 연구개발을 '교량 건설'에 비유한다. 정해진 하향식 기획과 절차적 효율성 그리고 강화된 감독 기능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이해당사자인 개인과 조직의 이익은 극대화되고 양은 증가하지만, 질은 저하되며 혁신성과는 떨어지고,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고착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투자는 양적으로는 세계 6위이며, GDP 대비로는 세계 1위인데 성과는 극히 빈약하다는 문제의식에서 그의 연구개발 관찰은 시작된다.

자세히 살펴보니 몇 가지 이유가 나온다. 첫째는 국가 R&D 전략 부재. 연구 개발 그 자체가 목표인가 여길 정도로 애매하다.

'R&D 역량을 제고해 경제 효율성,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고용 창출과 국민 복지를 향상한다'고 대외적으로는 밝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5년 정부에서 비롯되는 중장기 비전 실종, 임기응변식의 지배구조, 전임 정권 프로그램 폐기와 새정부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 급조, 추격형 패러다임에서나 적합한 정부 관료의 지나친 간섭과 전문가 집단의 단기적 시각, 역량축적 부족 등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두 번째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이다. 예산 부처와 R&D 주관 부처가 권한을 나눠 가지며 개별 사업을 담당하는 부처와 기관은 두 번 똑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주관부처에 가서 설명하고 이해를 얻은 다음 예산 부처에 가서 다시 설명한다. 그런데 문제는 결과가 다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주관 부처에서는 통과됐으나 예산부처에서 걸리는 경우가 있고 또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이다. 자연 현장은 갈팡질팡하게 된다.

세 번째는 정부 관료의 지나친 간섭이다. 정부 연구개발 산업은 1982년 구 과학기술처 '특정연구개발사업'이 133억원 예산으로 시작된 이래 현재 21개 부처 청으로 확대되 2016년 19조 가까운 규모다.

다양한 부처에서 관여하고 있는 만큼 이를 관리하기 위해 너나없이 연구관리 전문 기관을 두어 현재 29개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투명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하향식 관리방식을 택해 모든 과정에 평가를 도입했고 각종 제도 및 규정을 과도하게 도입해 자율성이 저하됐다. 결국에는 창의성이 가장 크게 담보돼야 할 연구개발 부문이 창의성이 전혀 발휘될 수 없고 만들어진 도면대로 지어져야 하는 다리 건설과 똑같이 됐다는 지적이다.

산업부 출신인 만큼 기업연과 국가 출연연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대기업을 비롯해 산업계 연구개발의 생명은 역동성. 하지만 국가출연연구소는 역동성은 물론이지만 장기를 내다보는 연구를 하지 못해왔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을 비롯해 산업계 입장에서는 출연연 등에 더 이상 기댈 수 없고 자체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만 저자는 출연연의 미흡한 성과문제는 지나친 개입으로 연구현장의 창의성을 고갈하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도 말한다.

해결책은 없을까. 난망하다는 게 저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연구 주체들이 상호협력을 하며 전략을 짜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경험이 부족하고 시스템도 그렇게 돼 있지 않아 힘들다는 것.

산업부에서 잔뼈가 굵은 만큼 산업 전반을 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기업들의 연구개발이 중요하나 대기업 위주의 경제체제에서 중견 및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은 극심한 가뭄이라고 말한다.

연구개발비를 보아도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대기업도 줄고 있고, 중소 및 중견 기업은 더욱 취약하다는 것. 예를 들면 화학산업은 매출액 5000억원 이상 대기업수가 가장 많음에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가 1%에도 못 미치는 0.97%로 R&D 투자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의 하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방식의 경제 구조에 원인이 있다. 일부 세계적 대기업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고 다른 기업들은 그 기업의 1차, 2차 벤더 등으로 종속화돼 있다. 그런 가운데 종업원 임금이나 이익률 등이 대기업에 의해 수치 조정되며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는 것.

자연 인재들도 소수 대기업으로만 가려 하고 중견 기업 등으로는 가려 하지 않거나 가서도 5년 정도 되면 대기업으로 떠나는 상황이다. 연구개발의 지속성이 담보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필자가 처방전으로 내놓은 것은 선진국 수준의 창조적 국가 혁신 시스템 구축이다.

그 내용은 연구 현장에서 거론된 것과 비슷하다. 하나는 자율성이다. 전략을 세우는 데는 컨트롤 타워가 작용하지만, 이 과정에서는 손을 떼는 것이다. 창의성이 생명인 연구 과정에 지나치게 정부 관료가 개입해 연구현장을 관료화시켜 그저 그런 결과가 나오도록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몰제 도입도 주장한다. 전략에 따라 연구 포트폴리오를 짜고 그 가운데 효과가 없는 것은 폐기하는 것이다. 기획 단계 강화도 제안한다. 기획 단계에 5% 정도의 예산이 투입되는 것을 20~30%로 끌어올려 설계를 충실하게 하도록 한다.

평가도 2, 3년에 걸쳐 추적 평가를 하며 시장에서의 효율성을 평가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집행과정에서 연구자와 기관에 대한 과도한 사전규제를 하지 말고 규정 위반시 엄격하게 처벌하는 사후규제 방식을 주장한다. 이외에도 일괄 방식 예산 배정, 연구원 인건비 100% 지원, 인력 선발과 운용의 자율성 부여 등등을 거론한다.

중견 중소기업의 연구역량 제고를 위해서는 독일 방식을 제안한다. 독일의 경우도 1970년대 초 내외부 여건으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악화되면서 도산하는 중소기업이 속출했다. 이때 독일 정부가 택한 정책은 중견 중소기업의 연구역량 강화 방안. 'PKZ'란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중견 중소기업이 석 박사급 연구인력을 고용할 때 인건비를 정부에서 전액 지급하는 것.

1979~1987년 연방정부 R&D 지원액의 10%인 32억 마르크를 지원했다. 이 결과 중소기업의 석박사급 연구개발 인력이 3만8000명 이상 증가했고, R&D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중소기업도 33% 이상 늘었다는 것. 이런 인력지원 프로그램이 오늘날 독일 '히든 챔피언'들의 씨앗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저자인 안현호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일자리 수석으로 발표됐다가 검증단계에서 문제가 있다며 인사가 취소되기도 하는 시련(?)을 겪고 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각설하고 그의 이 책은 그가 꽤 고민하는 공무원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과학계와 관련해 국외자의 시선이기 때문에 일부 다른 의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과학자는 현장을 잘 모른다. 연구실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욱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연구의 맥을 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자들이 일독해도 좋을 듯하다.

과학계에 대한 의견도 좋지만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체계적이면서 장기 비전을 갖고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가 온 이유와 그것이 가진 한계점과 대안 등을 생각해 보는 데 있어 좋은 참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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