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너무 재밌는 학문인데 왜 우리는 모르는걸까?"

[과학! 읽다②]잘 나가던 학원강사 '출판업' 뛰어들다
황승기 승산 대표 "과학·수학 재미 알고싶다면 '독서'해야"
"'좋은책 출판' 독자들에게 좋은 길 제시할 수 있어"
우리는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을 통해 지난 50여 년간 경제성장을 이뤘고 부를 축적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의 가치를 경제발전 수단으로 한정지어야할까.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백년대계를 앞두고 이젠 그 시선과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 수단에 한정짓지 말고 인류의 지식과 교육, 노동, 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과학과 대중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글로 풀어내는 과학출판사 사람들이다. 대덕넷은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의 가치는 무엇이며, 과학기술 문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작지만 진보된 행보를 조명한다. '과학! 읽다'라는 기획보도로 연재한다.[편집자 주]

황승기 승산 대표는 2008년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잘나가던 50대 학원원장의 뒤늦은 도전이었지만 후회는 없다.<사진=김지영 기자>황승기 승산 대표는 2008년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잘나가던 50대 학원원장의 뒤늦은 도전이었지만 후회는 없다.<사진=김지영 기자>

잘나가는 수학학원 강사에서 학원 원장으로 성공했다. 한때 800명의 수강생을 둘 정도였으니 먹고 사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한국 이공계 교육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법은 그가 막내 강사에서 원장이 될 때까지 바뀌지 않았다. 선생도 학생도 거기에만 매몰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과학과 수학은 너무 재밌는 학문인데 왜 우리나라는 모르는걸까. 바뀌지 않으면...'
 
원인을 찾던 그는 그 시작에 '독서'가 있다고 믿었다. 수강생들에게 독서를 권했다. 강사가 싫으면 학생은 관두면 그만이지만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을 거두자 점점 수강생도 늘었다.
 
많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 새롭게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50대 잘나가던 학원을 접고 출판사를 차린 승산의 황승기 대표의 이야기다.
 
1998년 출판사업에 뛰어든 그는 내년이면 창업 20주년을 맞는다.
 
"10년만 하려던 출판사업을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그는 "처음에는 사명감이었는데 하다 보니 재밌더라. 사실 즐겁고 행복하니 70대가 된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서울 역삼동 둥지에 5명의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하는 승산은 국내외 수준 높은 과학, 수학서를 독자들에게 출판하고 있다. 과학에 흥미를 일으키는 쉽고 재밌는 과학보다 정통과학책을 주로 출판한다.
 
승산의 1호 책인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와 '엘러건트 유니버스' 등은 비록 작은 출판사가 낸 책이지만 성공을 거뒀다. 현재는 수학의 핵심 개념인 '대칭'을 책을 통해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 신출내기 사장의 우여곡절···저작권 6년 걸리기도
 
"1997년 7월 30일까지 학원을 운영하다 제자에게 넘기고, 1998년 4월 출판사를 등록했습니다. 주변사람들이 진짜 많이 말렸지만 후회는 없어요."

황 대표는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소재한 포이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승산을 창업했다. 첫 책을 출판할 때까지 직원 하나 없이 오롯이 혼자 책을 기획하고 출판했다. 그야말로 1인 출판이었다.
 
의욕은 넘쳤는데 노하우가 없어 고생도 꽤 했다. 그는 "대학원 영문과 학생들에게 책 번역을 맡겼는데 한 여학생의 번역이 마음에 들더라. 전적으로 맡기려는데 갑자기 유학을 간다해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며 "신출내기 사장이다보니 전문번역가를 찾는 것조차 어려웠던 때가 기억 난다"고 회상했다.
 
승산이 출간한 '프린스턴 수학안내서'. 필즈상 수상자 5명을 포함한 세계적 수학자 135명이 저술에 참여한 방대한 책이다. <사진=김지영 기자>승산이 출간한 '프린스턴 수학안내서'. 필즈상 수상자 5명을 포함한 세계적 수학자 135명이 저술에 참여한 방대한 책이다. <사진=김지영 기자>
미국 유학 중이던 아들이 미국에서 꽤 유명한 책이라며 가져온 몇 권의 책을 한국에서 출판해 보겠다고 애를 쓴 기억도 생생하다. 저작권을 따는데만 6년이 걸린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부터, 국내 출판과 다른 미국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해 발간 후 승산을 위기에 처하게 했던 '엘러건트 유니버스'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도 출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독자들의 피드백', 그리고 '보람' 덕분이다.
 
그는 "초등학생인 자녀가 승산에서 출판한 책을 다 읽었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었다. 초등학생이 우리 책을 읽었다는게 믿기지 않아 살짝 테스트를 해봤는데 정말 완독을 했더라.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 '프린스턴 수학안내서'를 읽자는 모임이 만들어져 강의를 요청받아 독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며 독자들로부터 많은 피드백에 감사함을 표시하기도 했다.
 
◆ "좋은 책, 좋은 길 제시한다"
 
"우리나라에 출판사만 약 5만 개가 넘습니다. 출판사가 좋은 책을 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늘어날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교재삼아 가르친다면 교사, 학생들도 좋은 길로 가지 않을까요."
 
일반인이 읽기에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묵직한 정통과학서는 대중성은 없지만 찾는 사람이 꾸준하고, 독자들의 수준도 굉장히 높다. 독자들을 만족시킬 책을 골라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다.

해외에서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읽고 또 읽으며 출판이 정말로 도움이 될까를 고민한다는 그는 "내용이 너무 어려워 몇 년 동안 국내 출판을 미룬 책들도 여러권"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문서적 출판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만 출판했을 때 뿌듯함도 배라고. 내용이 워낙 복잡하고 까다로워 판권 계약 후 출간까지 5년이 걸린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는 그런 의미에서 황 대표에게도 특별한 책이다.
 
이 책은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1960년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학부생 대상으로 강연한 것을 엮은 것이다. 이미 외국에서 유명한 책이었지만 아무도 번역에 손을 대지 못해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황 대표가 출판을 결정한 뒤 국내 번역본이 출판돼 많은 이공계생이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됐다. 일부 대학에서는 정교재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 참 많은 출판사가 있어요. 이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늘어날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읽는 독자가 많아지면 더 선진국이 되겠지요."<사진=김지영 기자>"우리나라에 참 많은 출판사가 있어요. 이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내면 자연스럽게 독자들도 늘어날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을 읽는 독자가 많아지면 더 선진국이 되겠지요."<사진=김지영 기자>
중간 중간 대중적인 책도 펼치는 승산이지만 묵직한 과학책 발간 프로젝트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황 대표가 최근 몇 년간 몰두하고 있는 것이 '대칭'이다. ▲진리는 왜 아름다운가 ▲나의 대칭 ▲우주의 탄생과 대칭 등, 승산은 지금까지 대칭과 관련된 책을 8권 출판했다.
 
그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연구했던 주제가 대칭"이라며 "대칭을 알면 과학, 고전물리학, 현대수학, 양자역학 등 과학전반을 아는데 매우 중요하다. 올해도 대칭과 관련된 책 출판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 70대 황 대표의 꿈 "책 읽기 독려하고 싶어"
 
내년 창업 20주년을 맞는 그에게는 꿈이 있다. 강의 등 어떠한 형태로든 많은 사람들에게 인문학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독려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공계 관계자들에게 인문학책을 독서하기를 권유했다. "수학은 하나의 시이자, 하나의 언어"라고 말한 그는, 수학을 가르치고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수학자와 수학을 잘하는 사람에게 독서를 중요성을 강조했다.
 
"200여 년 전 수학자들은 '인문학책을 읽지 않으면 수학자가 되더라도 자기만의 언어를 쓰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숫자로 가득해 추상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수학은 사실 언어다. 지금은 수학이 더 발전했다. 수학이 어렵다면 독서로 극복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은 수학 외에도 다른 분야를 설명하고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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