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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키우는(?) 로봇···英 박물관서 러브 콜

[2030이 간다⑧]김대건 KAIST 박사 '기생로봇시스템' 연구 지난 5월 저널 발표
英 과학박물관 등 해외서 인기, 동물 행동 스스로 강화
수족관을 유영하는 붉은귀거북. 그런데 거북의 등에 기계가 붙어 있다. 이 기계에서 5개의 LED 전구가 달린 장치가 거북의 머리 위로 뻗어나왔다. 마치 헤드 렌턴 같다. LED 전구 중 하나가 반짝이면, 거북은 전구가 켜진 방향으로 몸을 틀어 헤엄친다. 그러자 거북의 입으로 연결된 튜브에서 거북의 먹이인 젤라틴 푸딩이 나온다. 이런 방식으로 거북이 움직이기를 여러 차례. 거북은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데 성공한다. 거북을 키우는 '기생로봇'의 등장이다.

거북 모형에 기생로봇을 부착한 모습이다. '기생로봇'이라는 말은 김대건 박사가 만들었으며 구글에서 'parasitic robot'을 검색해 나오는 내용들은 거의 다 김 박사의 연구 결과들이다. <사진=김대건 제공>거북 모형에 기생로봇을 부착한 모습이다. '기생로봇'이라는 말은 김대건 박사가 만들었으며 구글에서 'parasitic robot'을 검색해 나오는 내용들은 거의 다 김 박사의 연구 결과들이다. <사진=김대건 제공>

거북의 등에 달린 기계장치는 일명 기생로봇(Parasitic Robot). 연가시가 숙주동물을 물로 이끄는 것처럼 기생로봇이 거북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거북이 몸에 칩을 넣은 것도 아니고 거북이 사람과 연결되지도 않았다. 거북을 조종하는 것은 등에 부착된 손바닥 크기의 로봇이 스스로 하는 일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김대건 KAIST 박사(전산역학및구조시스템연구실, 지도교수 이필승)는 지난 5월 기생로봇시스템(Parasitic Robot System) 주제로 바이오엔지니어링(Journal of Bionic Engineering)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했다. 저널에 연구가 게재되자 이를 먼저 알아본 것은 해외 언론이었다. 뉴욕타임즈 등에서 그의 연구를 보도했고 유명해진 기생로봇은 영국까지 진출하게 됐다. 

2011년 대학원에 입학해 기생로봇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한 김대건 박사는 당시만해도 동물과 기계가 융합된 로봇이 주목받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김 박사가 속한 연구실은 전산역학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생체 융합 로봇 연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거북 5마리와 아이디어만 가지고 시작한 연구였다. 거북이와 기생로봇, 이들의 동거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전산역학및구조시스템연구실 이필승 교수(좌)와 김대건 박사. <사진=한효정 기자>전산역학및구조시스템연구실 이필승 교수(좌)와 김대건 박사. <사진=한효정 기자>

◆ 거북 훈련사는 사람 아니라 '기생로봇'

"지금까지 과학계에서는 물고기나 곤충의 몸에 칩을 심어 조종하거나, 동물과 비슷한 로봇을 만드는 연구가 시도됐어요. 그런데 거북이를 대상으로 조종연구를 한 것은 저희가 처음입니다. 자율적으로 동물을 제어하는 기생로봇 시스템도 역시 처음이죠." 김대건 박사는 이번 연구의 특별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기생로봇 시스템은 자연 속 기생 동물의 생태를 모방해 탄생했다. 로봇의 구성은 간단하다. 본체, LED 전구, 먹이 공급장치다. 로봇은 모터나 바퀴가 없어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거북의 몸을 빌려서 움직일 뿐이다. 

로봇 본체에는 거북 제어 프로그램이 심어져 있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 로봇은 LED 전구의 불빛을 키고 끄며 거북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준다. 로봇이 제시한 방향으로 거북이 이동할 때마다 보상이 주어지고 이 패턴이 반복될수록 거북의 행동 정확도는 높아진다. 자극에 따라 보상을 주면 훈련이 된다는 '스키너의 행동강화 이론'을 바탕으로 거북은 5주간 훈련을 받았다.

김 박사는 "거북을 훈련시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며 "동물을 스스로 훈련하는 장치가 숙주동물의 몸에 달렸다는 것이 새로운 발상이었다"고 강조했다. 

전자·기계 분야 학사를 전공한 김 박사에게 기생로봇시스템도 처음이었지만 거북과 같은 동물을 이용한 연구는 더욱 처음이었다. 그렇다보니 동물의 인지 및 행동과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배워야 했다. 김 박사는 생명과학과의 행동과학 수업을 청강하고 관련 서적과 논문을 공부했다. 

그는 "노하우가 전혀 없었던 생물 실험을 다루느라 사육, 행동 실험, 윤리규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남들이 안가는 길을 가다보니 어려운 만큼 보상도 컸고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거북을 조종하는 연구는 여러 단계를 거쳤다. 연구 초창기인 2013년에는 거북의 장애물 회피 본능을 이용한 연구로 같은 연구실 김철후 학생(현재 졸업생)이 논문을 발표했다. 당시 거북의 얼굴 앞에 반달 모양의 가리개를 부착해 거북이 가는 방향을 조종하는 데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이후에는 전산학과 조성호 교수 연구팀과 협업해 인간의 뇌파로 거북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 해외 언론에 소개된 '기생로봇', 영국 박물관 진출

영국 과학박물관에서 기생로봇을 소개하는 세션이 마련됐다. 기생로봇이 부착된 거북 사진과 함께 "왜 로봇이 동물에 탔을까?"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김대건 제공>영국 과학박물관에서 기생로봇을 소개하는 세션이 마련됐다. 기생로봇이 부착된 거북 사진과 함께 "왜 로봇이 동물에 탔을까?"라는 문구가 보인다. <사진=김대건 제공>

올해 5월 논문이 발표되자 해외 언론사에서 김 박사에게 연락이 잇달았다. 뉴욕타임즈, 로이터, 뉴사이언티스트, IEEE 스펙트럼 등에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김 박사는 그동안 언론사의 연락에 대응하며 바쁜 날을 보냈다.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뉴사이언티스트가 김 박사에게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영국에 연구가 소개되자 지난 6월 초, 영국 과학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미래 기술을 주제로 기획 전시(Tomorrow's World gallery)를 하는데 기생로봇을 전시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기생로봇은 현재 영국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며 박물관에서 만드는 기획 영상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로봇이 동물의 행동을 인지하고 강화시켜 의도대로 특정 행동(이동)을 유도한다는 독창성을 해외서 알아봐준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생로봇이 주목을 받은 것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의 흐름도 한 몫 했다. 김 박사는 "인간(생물체)과 기계의 융합도 4차 산업혁명의 한줄기로써 최근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거북과 기계(로봇)가 융합해 하나의 임무(navigation)를 달성한 이 연구가 돋보였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대건 박사에 따르면, 동물 제어 연구는 2002년 뉴욕대학교의 로봇쥐(Roborat)를 시작으로 미국 국방부에서 군사용 목적으로 연구를 주도해왔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동물 사이보그의 수준도 올라가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기술과 기계기술의 융합 연구에 관심이 커져 곤충 사이보그를 개발하는 사업체도 생겼다. 스페이스X의 엘론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회사를 설립해 인간의 모든 뇌세포를 네트워크화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 박물관에서 기생로봇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들 모습. <사진=김대건 제공>영국 박물관에서 기생로봇에 대해 알아보는 사람들 모습. <사진=김대건 제공>

◆ 말도 안 된다고 했던 연구였지만···

거북이를 조종해보자는 아이디어는 2009년 우연히 이필승 교수가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도 완전히 새로운, 미국을 따라하지 않는 군사 무기가 필요하지 않냐는 국방 연구원들의 이야기가 시작점이 됐다.

이필승 교수는 "처음에는 로봇물고기를 떠올렸는데 이 연구를 하는 사람도 많았을 뿐더러 배터리 수명 등 여러 문제가 있어 무기로 쓰이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이 교수는 "살아 있는 물고기를 조종하면 그게 로봇이 아니겠냐"는데 생각이 닿았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부정적 의견도 있었지만 '일단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아지며 연구도 속도를 더했다. 이 교수와 김대건 박사를 포함한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거북이로 연구를 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덩치도 크고 수중과 육지에서 실험을 할 수 있는 동물로는 거북이가 제격이라는 생각에서다. 거북이를 어떻게 조종할까? 이 질문에 대학원생들은 이틀만에 방법을 들고왔다. 거북의 회피본능을 이용한 초기 연구를 해보자는 것. 

이 연구로 특허를 내고 KAIST 모험 연구 과제에 제안해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이 교수는 "동물을 조종하는 것은 이미 연구가 된 분야인데 우리가 원한 것은 로봇과 동물(거북)의 융합 및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라며 "처음에는 군사적인 아이디어로 시작했지만, 직접 무기로 사용되기보다 독창적 시도로써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했던 연구가 지금의 기생로봇시스템까지 오게 됐다. 김대건 박사는 오는 8월부터 KAIST 생명과학과 김대수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 과정을 시작한다. 

김 박사는 엘론 머스크의 말을 인용하며 앞으로 생체-기계 융합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게 되면 인간은 판단의 결정권을 AI에 빼앗길 것이고, 결국은 애완동물 신세가 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인간-기계의 융합을 통해 두뇌의 능력을 강화하고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 미래 인간과 기계의 공생 방법이다."  -엘론 머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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