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AGT 활용 열역학적 온도 측정기술 확보 목표
정욱철 센터장 "국제 온도 표준계 리드할 기술력 확보해야"

정욱철 열유체표준센터장은 "열역학적 온도 단위 재정의로 국제 온도 표준계를 선도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기술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정욱철 열유체표준센터장은 "열역학적 온도 단위 재정의로 국제 온도 표준계를 선도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기술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표준 단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이목이 프랑스로 쏠렸다. 

'온도', '질량', '전류', ‘물질량’ 등 국제단위계 7개 중 무려 4개 단위의 정의가 바뀔 예정이다. '단위' 역사에 이처럼 한꺼번에 재정의가 이뤄진 사례는 처음이다. 

지난 4일부터 9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3차 국제 단위자문회의에서는 온도(K·켈빈), 질량(kg·킬로그램), 전류(A·암페어), 물질량(mol·몰) 등 단위를 재정의 하기로 결정했다. 바뀐 단위 정의는 오는 2019년 5월 20일 열리는 '세계 측정의 날'에 공식적으로 발효된다. 

단위 표준 재정의로 K은 볼츠만 상수, kg은 플랑크 상수, A는 기본 전하량, mol은 아보가드로 수 등을 통해 정의된다. 자연 법칙에 의해 변하지 않는 값인 '물리상수'를 이용해 보다 정확한 단위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 열유체표준센터(센터장 정욱철)도 이번 단위자문회의 결과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온도(K) 단위는 표준연의 결정적 기여로 재정의 논의에 '막차'를 탄 단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온도는 다른 단위에 비해 비교적 명쾌하게 정의됐던 단위다. 열역학적 온도 단위 K는 현재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의 1/273.16‘로 정의돼 있다. 물의 삼중점은 기체와 액체, 고체 상태의 물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욱철 센터장은 "단위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수를 이용해 정의를 하게 된다. 물의 삼중점은 밀폐된 용기 안에 물을 넣고 부분적으로 얼려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가 공존하도록 만든 상태로 이는 고유한 온도"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쾌한 정의지만 '물'이 기준이 됐다는 점이 문제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단위 표준에 가장 우선된 기준이 '불변성'이지만 '독립성'도 중요한 사안이다. 물의 삼중점이 변치 않는 불변성을 지녔지만 물이라는 특수한 물질에 의존함으로써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기에 재정의 대상이 됐다는 이야기다.  

"왜 꼭 물이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 것 같아요. 온도를 물이라는 물질의 성질을 이용해 정의한다는 점에 만족하지 못하는 거죠. 재정의에 대한 논의는 10여 년 전부터 본격화 됐어요. 온도도 변치 않는 물리상수로 정의를 해보자 하면서 볼츠만 상수가 온도의 파트너가 된거죠."

◆ 온도, '볼츠만 상수' 기반 재정의···과학적 '정확성' 부여 

정 센터장이 고체, 액체, 기체 등 세 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물의 삼중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정 센터장이 고체, 액체, 기체 등 세 가지 상태가 공존하는 물의 삼중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Huge change, But no change~"

정 센터장은 온도 단위 재정의와 관련해 "엄청난 변화이지만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변화에 과학자들이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적인 문제인 것 같아요. 편리성만 생각한다면 현재의 정의가 큰 불편함을 야기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재정의를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완벽성을 추구하기 위함이죠. 표준은 변하지 않는 과학적 원리를 근거로, 그 시대가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볼츠만 상수는 미시세계에서의 입자 운동 에너지와 거시세계에서 관측된 온도를 연결해 주는 물리상수다. 볼츠만 상수를 고정해 K를 재정의 하기 위해서는 국제온도표준위원회(CCT)가 정했던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한다. 

하나는 개별적인 볼츠만 상수 측정 방법에 의한 결과의 상대불확도가 1×10⁻⁶보다 작아야 하며,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측정한 값이 3×10⁻⁶의 불확도 내에서 일치해야 한다.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프랑스와 영국은 음향기체온도계(AGT) 기술을 이용한 볼츠만상수 측정연구를 수행했다. 그러나 양 기관의 측정결과가 약 백만분의 3 정도 차이를 보여 온도 단위 재정의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던 실타래를 푼 것은 다름 아닌 표준연이다. 

표준연은 두 국가가 모두 아르곤을 사용해 볼츠만 상수 값을 측정한 것과 관련, 아르곤 평균 분자량 측정에 오류가 있을 것으로 가정하고 두 기관에서 볼츠만 상수 측정에 사용된 기체 시료의 동위원소 구성비를 정밀 측정했다. 

그 결과 영국 표준기관이 사용한 아르곤의 평균 분자량이 볼츠만 상수 측정에 사용된 값보다  백만분의 3 정도 높음을 밝혔다.

정 센터장은 "양인석 박사가 두 나라에서 사용한 아르곤 기체의 몰질량이 서로 달랐음을 밝혀냈다"며 "영국 표준기관이 오류를 인정하고 결과를 수정해 온도 단위 재정의의 조건을 만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표준연, 상온서도 볼츠만 상수 측정 가능토록 

표준연이 AGT 기반 절대온도 측정기술 확립을 위해 갖춘 장비(좌). 물의 삼중점(우). <사진=박은희 기자>
표준연이 AGT 기반 절대온도 측정기술 확립을 위해 갖춘 장비(좌). 물의 삼중점(우). <사진=박은희 기자>
표준연의 활약으로 열역학적 온도 단위 재정의에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정 센터장은 표준연이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고 자평한다. 볼츠만 상수에 기반 한 열역학적 온도를 측정할 수 있는 독자적인 기술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표준연이 시도 중인 방법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미 성공한 AGT를 활용한 방법이다. AGT는 온도가 달라지면 소리의 속도, 즉 음속이 달라지는 성질을 이용해 열역학적 온도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다만 측정표준으로서 의미 있는 정확한 온도 측정을 위해서는 음속을 측정하는 공진구의 크기를 정밀하게 제어하고 측정할 수 있는 기술이 핵심이나, 선진국에 비해 미흡한 실정이다.  

"열역학적 온도를 측정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10여 년 전부터 연구를 시작해 기본 장비를 갖추고 있지만 아직은 정확한 측정 기술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꼭 갖춰야 하는 만큼 기술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표준연은 우선 공진구 크기 측정을 위한 전자기파 공진주파수 기술을 확보하고 공진구 주변 온도를 안정적이고 균일하게 유지하는 기술을 개발해 'AGT 기반 절대온도 측정기술'을 확립할 계획이다. 

올해까지 마이크로파 공진 주파수 측정 불확도를 1×10⁻⁶까지 낮출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후 열역학저 온도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측정 불확도를 낮춘다. 

오는 2018년까지 0~200℃에서 열역학적 온도의 측정불확도 10mK 수준, 2019년까지는 0 ~420℃까지 열역학적 온도의 측정영역을 확장시키고, 2020년까지는 0~420℃ 영역에서 열역학적 온도 측정불확도 5mK을 달성할 계획이다. 

정 센터장은 "기존 AGT는 저온에서 의미 있는 온도 측정이 가능했다. 이를 상온이상의 온도 영역에서도 측정이 가능토록 기술을 개발한다면 우리 역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단기간 내 저온 측정 기술을 확보하고 사용이 많은 0℃에서 420℃ 내에서 열역학적 온도측정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열역학적 온도 단위가 재정의 되면 국제 온도 표준계를 선도하기 위한 국가들의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 국제 온도 표준계에서 세계 정상급을 유지하는 표준연이 기존의 위상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술력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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