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접어들면서 지치고 힘들게 하던 여름이 빠르게 물러가고 어느새 초가을의 느낌이 물씬 나는 아침과 저녁이 우리 곁에 와 있음을 느낀다. 지난해에 비해 빨리 찾아온 것 같은 초가을이 반갑기만 하다.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나는 언제나 가을이라고 답했다. 조금 쓸쓸한 느낌의 바람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와 내 마음을 높고 푸른 하늘 끝에 매달고, 노랗고 붉은 옷으로 성장한 나무들을 황홀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절. 어쩌면 10월을 생각하면서 하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9월에 나는 9월의 매력을 새롭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 계절이 이리도 좋은 계절이었던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무더위에서 조금 물러나 있으면서도 아직은 여름의 활기를 가지고 있고, 붉은 단풍과 열매를 향한 기다림이 있어 아직은 덜 조급하고 쓸쓸함이 적은 계절임을 느낀다.
마치 바쁘고 치열했던 젊은 시절을 잘 마무리 한 중년의 여유로움과 같은 계절, 혹은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할 때에 느껴지는 작은 긴장감마저 드는 계절인 것 같다.
그래서 윤보영 시인은 9월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나 보다.
차 한 잔을 들고 아쉽다며 따라나선 8월을 달래는 9월입니다.
더러는 아픈 기억도 있었고 또 더러는 힘든 여운도 담겼지만 좋아, 좋아하는 기분에 묻힌 8월, 마무리 하고 보니 모두가 내 넉넉한 9월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윤보영 '9월에는 사랑을' 중)
9월에는 늦여름부터 피기 시작한 코스모스, 참취꽃, 각시취꽃 등이 여전히 피고, 애잔한 전설을 가슴에 품고 붉게 피어나는 석산이 새롭게 피어나기도 하는 계절이다.
더위 속에서 정신 없이 지나간 것으로 느껴지는 나의 8월을 잠시 뒤돌아 본다. 아내와 다녀온 6년만의 외출은 덥고 힘들었던 여름 속의 오아시스처럼 지금도 기분 좋은 느낌으로 기억된다. 또 여러 사진 작가들과 함께 2018년 국제캘린더사진전에 참가하여 전시회를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렇게 내 사진으로 만들어진 달력을 보면서 내년도도 하루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야 할 이유들을 떠올리게 된다. 뒤돌아 보니 지난 여름은 그냥 흘러간 것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는 9월이 좋다.
지난 봄부터 일주일에 이틀은 가까운 사무실에 걸어서 출근하고 있는데 9월에 접어들면서 그 재미가 쏠쏠해졌다. 걷기에 쾌적한 날씨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천천히 걸어서 출근을 하다 보면 가까운 동네길이지만 자동차로 지나치면 볼 수 없는 작은 풀꽃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전 느지막이 꽃을 피우는 키 큰 왕고들빼기, 길가 아파트 담장 부근에 피어 있는 정겨운 나팔꽃, 여름내 꽃을 피웠을 노란 여우팥꽃, 흔하지만 초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개여뀌와 닭의장풀꽃, 그리고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고들빼기꽃까지 지나가는 나를 반겨주며 말을 걸기도 한다.
어디에서 날아와 자랐는지 보도 블록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낮게 자라나 노란 꽃을 피우는 동네에서는 흔하지 않은 좀가지풀꽃도 만날 수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 보며 카메라에 담기도 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는 가끔 심부름을 시키시며 나에게 해찰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해찰하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일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다른 일이나 쓸데없는 짓을 하다'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말씀을 비교적 잘 듣는 모범생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9월에 나는 해찰하며 걷는 일도 때로는 즐거움과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지는 해가 빨라지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었으니 가을꽃들은 서둘러 피고 결실을 준비할 것이다. 며칠 전에 들른 뜰이 넓은 집 9월의 정원에는 대상화, 벌개미취, 산비장이, 두메부추 등 가을꽃들이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 피어나고, 끝물인 좀목형꽃 위에서는 늦은 사랑을 나누는 호랑나비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만난 마가목 열매는 벌써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계절이 빠르게 가을로 옮겨가고 있음을 느낀다. 바람 부는 10월에도 넉넉함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가슴 속에 얼마 남지 않은 9월의 여유로움을 가득 채워 두어야겠다.
이제 9월은 열매 맺을 생각에 미소 짓는 들꽃처럼 숱한 8월을 사랑으로 보냈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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