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생존이다' 대전과총 지역혁신토론회 개최
"혁신은 실패를 축적해 소통 공유할 때 가능한 일" 공통의견

과학기술인과 행정인, 정치인이 국가와 지역에 닥친 '생존 문제'을 토론했다. <사진=윤병철 기자>
과학기술인과 행정인, 정치인이 국가와 지역에 닥친 '생존 문제'을 토론했다. <사진=윤병철 기자>
 
'거울나라의 엘리스(루이스 캐럴 作)'에서 엘리스가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자, 붉은 여왕은 "두 배로 빨리 뛰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엘리스가 뛰고 있던 세상은 주인공만큼 움직이는 기묘한 세상이다.
 
이 대목은 진화학자 베일런에 의해 '붉은 여왕 가설'이 됐다. 변화하는 세상에 놓인 주체가 변하지 못하면 멸종한다는 살벌한 현실을 설명한 생존 이론이다.
 
박윤원 대전과총 회장은 붉은 여왕 가설로 '4차 산업혁명' 첫머리에 놓인 과학기술인들의 위기감을 표현했다.
 
3일 대전 유성 라온호텔에서 열린 대전과총 지역혁신토론회는 평일 오전임에도 평소보다 많은 80여 명의 과기인이 자리해 이 같은 문제의식을 함께 했다.
 
토론회에 앞서 대전과총 운영진은 주제를 놓고 고민이 깊었다. 과기계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식상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더 불리하게 돌아가는 국내 상황을 놓고 볼 때, 용어의 논쟁에서 빠져나와 실행을 논하자는 데 공감이 일었다. 운영진은 논의 끝에 '4차 산업혁명, 이제는 생존'이라는 주제를 도출했다. 토론자들의 발표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심진보 ETRI 기술경제연구그룹장은 "시중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만 1370권이다. 모자만 바꿔 쓴 거다"라고 꼬집었고,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전처럼 현장의 피드백이 없으면 어떤 정책도 무용"이라고 지적했다.
 
김성현 ETRI 책임연구원은 "지금 같은 정책 취합과 결정 속도로는 혁명은 무용"으로 단정했다. 한 기업가는 "정권은 매번 소보다 축사만 관심이다. 막상 소인 기업은 뒷전이다"라고 한탄했다.
 
정택수 대전시 정무부시장은 "과학도시 대전이라지만, 막상 과학계와 지자체가 친하지 않더라"고 실상을 밝혔고, 이상민 국회의원은 "우리는 실상 끓는 물 속 개구리"로 비유했다.
 
"실패가 자산이다" 공통된 주장
 
심 그룹장은 '데이터를 제대로 수집 축적하고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지능 시스템'을 생존 조건으로 들며 "실패든 성공이든 데이터 지식을 축적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에서 수집되는 데이터양은 13억 인구의 중국이나 전 세계서 데이터를 끌어모으는 미국에 비교되지 않는다. 그는 "우리만의 데이터 축적예측 공유모델을 개도국에 무료로 이식시키고 거기서 나온 데이터로 수출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안을 냈다.
 
김 연구원은 출연연의 혁신 속도 저하 원인으로 정부의 '연구 실패에 대한 불신'을 들었다. 그는 "정부와 국회에서 제도 개선 하나에도 3년이 걸리는데 무슨 퍼스트무버를 말할 수 있나. 단계별로 책임을 정해 기간 내 해결하는 책임제를 도입하자"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혁신에 동감한다면, 연구기관에 예산을 직접 투여해 아이디어가 발생할 때마다 즉각 연구에 돌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연구원은 문제 대처 방식으로 결국 실력차가 벌어진 미국과 러시아의 비행기 개발 역사를 설명했다. 냉전시대만 해도 러시아는 많은 자원을 항공기에 투자했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 발생 원인보다 해결에 집중해 기초 연구가 사회에 스며들지 못했다. 미국은 문제 원인에 자원을 투자했다. 안 연구원은 "실패 원인을 뿌리 끝까지 파고들어 꺼내 올려야만 진정한 혁신이 일어나고 자산화를 이뤄 전파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정부출연연구소들의 단단한 로드맵을 제안했다. 연구에 기업을 불러들여 실패의 피드백을 왕성하게 받으면서 '맷집'을 키워 가면, 정부의 간섭에도 자율성을 갖는 리더쉽이 생기는 정책이다. 그러면서 "각 분야 소통의 질이 높아지면, 전체 사회의 질도 높아진다"고 환기했다.
 
재차 강조되는 협력···​'4차 혁명 특별시' 미래전략 최초 공개
 

대덕연구단지를 안고 있는 대전시는 문재인 정부의 기치인  '4차 산업혁명' 구현을 위한 특별시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선 '창조경제 혁신도시'란 칭호를 얻었다. 과학기술이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과학도시 대전을 주목하게 하지만, 실상은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지속되는 게 현실이다. 참석자들도 이 상황을 인정했지만, 가능성을 포기하진 않았다.
 
심 그룹장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초연결"이라며 빅데이터 기반의 광역도시를 제안했다. 그는 "과학기술 메카 대전이 바이오산업의 요지 오창과 인문사회기관이 들어선 세종과 연계하면 국내최초로 과학화된 도시 데이터를 축적해 전국으로 확산하고, 전 세계 표준모델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했다.
 
김 연구원도 "공공데이터 기관이 이미 존재하는데, 정작 활용이 미진하다. 지자체와 연구단지가 협력하면 잘 할 수 있다"고 대전의 선도모델 제안에 힘을 보탰다. 이어 그는 "수도권과 가장 큰 격차는 사람인데, 이 부분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임근창 대전시 4차 산업 특별보좌관은 대덕연구단지와 함께 마련한 '미래전략' 24개 과제를 최초 공개했다. 이 전략은 오는 8일 정식 공개될 예정이었다.
 
주목된 전략으로 ▲KAIST-충남대 사이 '스타트업 타운' 조성  ▲실시간 교통 복지 안전 지원 '스마트 지방행정 서비스 4.0'  ▲대덕연구단지 융합 공동연구를 위한 '과학문화센터'  ▲스마트 실증도시 '연구단지 대덕대로-공동관리아파트'  ▲전기차 1000대 보급 등이 밝혀졌다.

이상민 의원은 "대전이 축적된 과학기술을 인문사회와 융합하는 선도 모델을 만들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고, 조승래 의원은 "4차 산업혁명 특별시민에 걸맞은 교육 정책에 힘 쏟겠다"고 발언했다.
 
한편, 김용환 한국원자력연료 수석연구원은 "전기자동차는 이동수단 뿐만 아니라, 데이터 발생원이자 움직이는 에너지 저장원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빅데이터와 에너지의 수집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고, 정학근 에너지연구원 ESS연구실장은 "우리가 간과한 것은 4차 산업혁명이 목적은 아니다"라며 "연구 수단으로서 '지구를 살 맛 나게 하는 1도씨 높이기' 같은 인류 행복을 목적으로 여기는 연구를 하자"고 의견을 보탰다. 

대전과총은 토론회에서 제안된 내용을 오는 12월 국회에 전달해 의정에 반영되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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