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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선진국 기초연구 100년 추격···'마라톤'처럼"

글·사진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림원의 창' 117호 발췌
유룡 KAIST 교수, 최기운 KAIST 교수 '허심탄회' 이야기
물리학자 최기운(왼쪽) 교수와 화학자 유룡(오른쪽) 교수가 노벨과학상에 대한 솔직담백 대담을 가졌다.<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물리학자 최기운(왼쪽) 교수와 화학자 유룡(오른쪽) 교수가 노벨과학상에 대한 솔직담백 대담을 가졌다.<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제공>

우리나라 과학기술 70년은 산업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기술'에 매진한 시간이었다. 1989년부터야 본격적인 기초연구 지원이 시작되었고, 1996년부터 실시한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이 실질적으로 기초연구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 총 연구개발투자비 중 기초연구비는 2000년대 초입까지 20%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경제수준과 국제적 위상이 상승하며, 노벨과학상에 대한 열망도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가·사회적으로 기초연구 역량을 높이기 위한 관심은 반가운 일이지만, 다소 조급한 기색이다.

종종 일본을 비교대상으로 삼는데, 일본은 메이지시대부터 대학을 세워 기초과학 분야에서 해외와의 교류를 추진했고, 지금도 전체 연구개발 투자규모가 우리의 3배 정도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이학부 정회원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초과학자인 유룡, 최기운 교수의 대담을 통해 국내 기초연구 환경을 짚어보고, 노벨상 수상가능 환경을 위해 필요한 노력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한다.

◆ 10월의 대한민국, 그리고 노벨상···"연구자보단 과학행정가에게 더 부담인 듯"

유룡 교수(이하 유) : 과학자들이 노벨상으로 인해 받는 압박감은 그다지 크지 않다. 과학자들의 연구 목표는 진리 탐구지, 상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연구들이 장차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떠한 분야에서 독창적이면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그것이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면 상은 따라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과학자들이 노벨상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은 아니지만, 관심이 있는 것과 압박감은 다르다. 아마 연구자보다는 과학행정가들에게 더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최기운 교수(이하 최) : 행정가나 정치가들은 답답할 수 있으나, 기초과학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분야가 아니다. 기술은 두 번째로 출발해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과학은 최초가 중요하다. 현재 유망한 분야를 연구해서는 소용이 없다. 아무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 그 분야를 꾸준히 연구해 온 선구자격 과학자가 노벨상을 탈 수 있다.

유 : 그렇다. 노벨상을 논하기 전에 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현재 유망한 분야는 진리를 탐구해야 할 '과학'이 아니라 '기술'로 분류할 수 있고, 정부에서 어느 분야에 얼마를 투자하겠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기술에 해당한다. 우리는 아직도 과학보다 기술에 대한 투자가 많다.

최 : 기초과학의 특징이 또 있다면, 연구 성과에서 명확하게 순위를 매기는 것도 쉽지 않다.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연구 분야에서 각각의 기여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분야에서 100명의 굉장히 유능한 학자가 있다면, 그중의 10명 정도가 세계적인 석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그 중에 한 사람이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만약 대형 프로젝트에서 나온 성과라면 후보군은 더 두텁다. 우리나라에도 각 분야에서 어느 수준에 도달한 연구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그 중 한 명이 탈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노벨상을 기대하기에 이르다.

◆ 기초과학 수준, 일본과 비교할 수 없다···역사·규모 더 갖춰져야

최 : 기초과학 수준이 일본보다 현저히 떨어진다고 하는데, 냉정하게 생각하면 전혀 이상한 결과가 아니다. 일본은 서양 과학을 받아들인 지 100년이 넘었고, 2차 세계대전 즈음에는 이미 소립자 물리학, 핵물리학 등 몇몇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결과들이 일본에서 연달아 나오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1949년 일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유카와 박사의 연구는 1930년대에 진행됐다. 이미 그때부터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너무 늦게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 연구중심대학인 KAIST는 1970년대 초반에 만들어졌고, 서울대 연구중심대학원은 1980년대에 생겼다. 시간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유 : 1977년에 KAIST 1학년이었는데 그때 국내 대학의 수준은 외국에서 했던 것을 한 번 더 해보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론분야는 인적 자원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발이 앞섰지만, 더 많은 투자가 필요했던 실험분야는 1990년대 말을 본격적인 시작으로 봐야 한다. 과학에서는 1, 2년 차이도 따라잡기 힘든데, 일본이 구축해 놓은 100년 간의 방대한 연구 자원을 추월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사실 20~30년 내에는 노벨상 수상은 힘들다고 본다.

최 : 일본은 기초과학 분야의 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더 크다.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가 2배로 늘어나면, 효과는 제곱배로 늘어난다. 우리나라도 기초학문의 커뮤니티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많아져야 그 안에서 경쟁이 일어나고 좋은 성과가 나온다. 기초분야 학과들을 키워 젊은 과학자들을 양성해야 하고, 아시아권 나라들, 특히 한중일의 협력이 필요하다. 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과학적 성과를 내는 것은 유럽 안에 큰 연구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CERN(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이 좋은 사례다.

유 : 일본처럼 적은 연구비라도 과학자가 하나의 분야를 수십 년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풍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간혹 연구 키워드만 보고 같은 주제면 다음에 연구비를 주지 않거나 비슷한 연구들을 제외하는데 그것이 과학자들의 한 우물 파기 연구를 저해한다. 과학자들이 주제를 바꾸지 않고 연구할 수 있어야 한다.

최 : 그렇다. 소액 장기 연구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여기에 국가적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대형 과제를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 기초과학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려면,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아지고 국가 정책과 전략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 과학자 자성도 필요···"한림원도 과학철학·정책 발전 위해 제 역할 해야"

유 : 물론 과학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인기 있는 학문을 좇거나 특정 학술지를 목표로 해선 안된다. 논문을 위주로 평가하는 제도를 뛰어넘긴 힘들겠지만학자들도 반성을 해야 한다.

최 : 그렇다. 우리 스스로도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연구의 자율성을 준다고 해도 적절한 경쟁시스템은 필요하다. 어느 집단이든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일부는 쉽게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이상적인 부분을 잘 조화시켜서 사회 전체적으로 효율성을 낼 수 있는 시스템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유 : 과학철학이나 행정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림원도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한림원은 신망 받는 과학자들의 모임이니 편견이나 사심 없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최 : 한림원이 과학자들에게 창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권위는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 노벨상보다 중요한 과학 인재양성

유 : 사실 노벨상 이야기를 하며 더 걱정되는 것은, 연구 환경이 아니라 과학교육이다. 학생들을 보며 위기를 느낀다. 교육이 전부 선행학습화되다 보니 각 단계에서 심도 있게 배우지 못해 사고력이 약하다. 학생들의 창의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회의 잘못이고, 입시를 위해서 학생들을 옭아맨 결과다.

최 : 같은 생각이다. 최근 교수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의견인데, 학생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속성으로 배우려고 한다. 남들보다 빨리 배워야 앞서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느 과목이든지 제대로 소화를 하려면 단계별로 배워야 할 것들이 있는데 무조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고 하는 학생들이 많다. 우리 과학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몇십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해 보면 더욱 암담하다. 인구가 줄어들면 연구자 숫자도 감소할 텐데, 학생들의 창의력이 위태로우니 걱정이다.

유 : 학생들이 기초과학에 흥미를 갖지 않는 것도 우려스럽다. 과거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에 진학하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사회분위기도 과학기술인을 존중했고, 취직이나 직업안정성도 높았다.

최 : IMF 때 연구개발직을 구조조정하고, 정년을 단축한 것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과학기술계에서 정규직을 확대해서 규모를 키우고 그 안에서 경쟁 시스템을 갖춰야 좋은 연구가 나올 수 있다.

유 : 기초과학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성을 갖춘 인재 양성이다. 저변 확대는 다음 문제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최 : 교육은 가장 중요하지만 효과는 가장 늦게 나타난다.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 역시 쉽지 않다. 그렇지만 주어진 여건 내에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인재양성은 과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니 대대적인 교육 혁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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