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죠"

조각가 이장원의 태양 프로젝트
화학연 '화학의 정원: 경계에 피는 꽃' 전시 출품
새해 첫날 새벽이 되면 사람들은 해맞이를 간다. 태양을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는 날도 드물다. 하지만 평소에는 아침에 떠오르고 저녁이면 저무는 태양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공기처럼 늘 그곳에 있어 일상에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양의 존재를 환하게 밝혀주는 예술가가 있다. 일명 '태양 프로젝트'로 작품 활동을 해온 이장원 작가다. 그는 태양을 가리키거나 태양빛을 비추는 등 작품을 통해 매순간 태양의 존재를 부각한다. 이 작가는 지난 6일부터 내년 2월까지 한국화학연구원 디딤돌플라자에서 열리는 '화학의 정원: 경계에 피는 꽃' 전시에 태양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작품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봐, 지금 태양은 저기에 있어."

이장원 작가. <사진=한효정 기자>이장원 작가. <사진=한효정 기자>

◆ 태양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경기도 광주 곤지암읍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큰 창고 같다. 출입문을 닫으면 빛이 잘 들어오지 못한다. 태양을 관찰하는 도구나 장비도 없다. 태양의 표면이나 활동을 오랜 시간 관찰하는 과학자와는 달리, 이 작가는 태양 전체에 주목한다. 작업을 할 때도 '아 태양이 저기 있구나' 정도만 확인할 뿐이다.

조소를 전공한 이장원 작가는 물리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이 많다. ‘태양 프로젝트’가 과학과 융합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대학시절 화려한 뉴미디어 빛의 원천이 태양이라는 사실에 매료됐고, 그 후로 여러 작품과 빛에 대한 실험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태양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태양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지만, 태양을 유일하게 망각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정동진에서 일출을 볼 때 그 순간을 불태우고 나면 태양 자체는 다시 잊혀요. 생각해 볼 이야기가 아닐까요? 현대 사회에서 태양의 가치가 전복된 것 같다는 직관이 작품의 시작이었어요."

◆ sunTracer, sunSculpture, enlightment

이장원 작가의 태양 프로젝트는 2003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태양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시작은 태양을 쫓아다니며 촬영한 sunTracer 프로젝트다. 태양 추적 장치를 만들어 관악산과 홍대, 강남과 강북, 헬싱키 등에서 각각 태양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디지털 영상으로 전송하는 작품이었다.

그는 "강남과 강북에서 태양을 촬영할 때는 두 지역 간에 땅값 갈등이 증폭되던 시기였다"면서 "같은 태양 아래 있는 곳인데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sunTracer를 통해 내린 결론은, 태양은 다른 곳에서 다른 느낌을 주지만 결국 '같다'는 것이었어요. 다름을 만들어가는 건 사람이라고 깨달았죠."

(왼쪽부터) 2003년 제작한 최초의 sunTracer(선트레이서),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에 각각 sunTracer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전시장에 설치한 모습. <사진=이장원 제공>(왼쪽부터) 2003년 제작한 최초의 sunTracer(선트레이서), 강남과 강북의 아파트에 각각 sunTracer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전시장에 설치한 모습. <사진=이장원 제공>

sunTracer에서는 태양을 쫓아다닌 반면, sunSculpture 프로젝트는 태양을 가리키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다. 구름과 폭우 속에 태양이 가려져도, 실내에서도 작품은 태양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태양이 움직이는 알고리즘이 필요했다. 작가는 이 알고리즘에 프로그래밍을 더하고 액추에이터와 기계를 구현했다. 장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태양 위치 계산 GPS, 소프트웨어, 광학, 이미지 전송기술 공부도 필요했다.

"이 작품의 움직임은 빠르게 느낄 수는 없어요. 마치 시계의 시침을 보는 것 같죠. 현대 문명의 속도감과는 반대입니다.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천천히 어느 날 갑자기 다르게 느껴지는 태양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화학의 정원' 전시에 출품한 작품 <There is>, 도시 속 강변에서 태양을 향해 손을 뻗는 작품 <prehistory>. <사진=화학연, 이장원 제공>(왼쪽부터) '화학의 정원' 전시에 출품한 작품 <There is>, 도시 속 강변에서 태양을 향해 손을 뻗는 작품 <prehistory>. <사진=화학연, 이장원 제공>

그의 작품은 태양빛을 반사시켜 어딘가에 비추는 enlightment로 이동했다. enlightment 프로젝트는 우주를 건너온 태양빛의 따뜻함을 소외된 곳에 전하는 작품이다. 인공 빛에 묻혀 진짜 빛을 인식하기 어려운 오늘날, 태양이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증거를 태양빛으로 표현한 것이다. 

enlightment는 과학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enlightment는 영어로 '계몽'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계몽과 과학을 같은 의미로 생각했다. 이 작가는 "과학이 인간을 똑똑하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중요한 것을 망각하게 되기도 한다"며 "태양빛을 비추는 행위로 과학 내에서 균형을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면서 이 작가는 여러 과학자들을 만났다. 태양 추적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서울대와 연세대 전파천문대에 찾아갔고,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촬영을 할 때 카메라가 타버리거나 갈매기들이 카메라에 배변을 보기도 했는데, 작업하다가 만나는 이런 도전을 해결하는 데 과학이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자동차로 이동하며 태양빛을 비추는 장치이자 작품인 <Mobile enlightenment>, 특정 공간에 태양빛을 반사시켜 그늘진 공간을 환기하는 태양빛 설치 작품 <달>. <사진=이장원 제공>(왼쪽부터) 자동차로 이동하며 태양빛을 비추는 장치이자 작품인 <Mobile enlightenment>, 특정 공간에 태양빛을 반사시켜 그늘진 공간을 환기하는 태양빛 설치 작품 <달>. <사진=이장원 제공>

◆ 대중과 생각을 나누는 작품 선보일 것

태양 프로젝트를 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작가는 생각이 정리된 것 같단다. 작가는 태양에만 몰두하는 자신이 태양 교주가 된 것 같아 내적 갈등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계속된 고민의 결과는 세 프로젝트에 융합되어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다분히 실험적인 성격이지만, 앞으로는 대중과 생각을 공유하는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이번 '화학의 정원' 전시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고 밝혔다. 

"밤도 낮처럼 밝은 현대 사회에서 태양은 조절 가능한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나 우리는 다시 태양으로 돌아오게 되죠."

이 작가는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소중한 태양이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언어로 태양 존재를 알리는 일을 이어갈 예정이다.

 
※ [알찬 과학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화학연구원과 대덕넷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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