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없이 택한 길, 신념으로 걸어온 33년 '정규수 박사'

글: ADD
정규수 박사가 ADD 홍보관을 둘러보고 있다.<사진=ADD>정규수 박사가 ADD 홍보관을 둘러보고 있다.<사진=ADD>
미사일 박사로 알려진 정규수 박사의 인터뷰는 ADD(국방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오프라인 소식지 '무내미'에 실린 글을 ADD 동의 아래 사진과 원고를 제공 받아 대덕넷에서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글 진행과 표현이 본지와 다를 수 있다는 점 양해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 편지>

어릴 적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노거수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숱한 풍파를 겪어내며 기나긴 세월 한 자리를 지켜온 그 노목의 당당하고 온화한 모습은, 사람들에게 말없이 가르침을 주는 듯했다. 정규수 박사를 바라보는 후배 소원들의 시선도 그와 같을 것이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미사일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정규수 박사. "연구는 한번 잡은 목표를 향해 꾸준한 노력과 깊은 사고를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깊고 또 깊게 한 우물을 파온 그의 모습은 여전히 청청하다. 

◆ 고향 같은 연구소, 추억 어린 회상

"ADD 여러분,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습니다. 2008년 연구소를 떠났으니 만 9년이 되어 갑니다. 그간 언뜻 보이는 ADD발 뉴스에서 물 밖의 빙산을 보아왔습니다. 물 밖의 빙산을 보면 잠겨있는 덩어리를 잠작 할 수 있듯이 뉴스를 통해 스쳐가는 ADD 흔적들은 그간 축적한 ADD의 저력을 짐작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33년간 몸 담았던 ADD 후배 소원들의 열정과 땀의 대가라는 것도 잘 알고, 저도 모르게 흐뭇해집니다." 

오랜만에 찾은 연구소. 인생의 절반 가까이 머문 곳이기에 고향에 온 것처럼 반갑고 정겹다. 정규수 박사가 ADD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8월, 자금으로부터 41년 전이다. 1967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에서 활동하던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ADD가 우리나라 최초의 지대지 탄도미사일인 '백곰'을 개발할 당시 해외 두뇌 초빙의 대상이 됐다. 그는 미국의 보장된 직장과 좋은 근무여건을 마다하고 한국행을 택했다. 

"무슨 연구를 했냐고요? 이곳저곳에 필요한 소소한 계산을 했고, 나 자신은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더러 '미사일 박사'라고 하는데 사실 미사일 박사들은 따로 있어요. 연구소 현장에서 실제로 미사일 연구에 땀 흘리시는 분들께 죄송하기 그지없습니다." 

2002년 조선일보 기사에 '미사일 박사'로 소개된 이후, 아직도 그의 이름 앞에는 그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수행 한 첫 임무가 바로 '백곰'에 탑재되는 고성능 탄두(彈頭) 개발이었고, 1978년 9월 시험 발사 성공으로 국산 지대지 탄도미사일 개발 임무를 완수했다. 이후 백곰은 현무 미사일로 개량돼 우리 군의 장거리 전략 타격 미사일의 토대를 제공했다. 

"ADD에 우등상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정말로 그런 상이 있어요. 내가 받은 적이 있으니까 압니다. 상을 받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퇴직하면서 경력증명서를 떼어보니 포상 부분에 당당히 올라 있더라고요. 우등상, ADD인 상, 그리고 아내한테 받은 밥상이 제가 받은 포상 3종 세트지요." 

좋은 대우나 높은 자리에 마음 두지 않고 연구에만 열정을 쏟았다. 그런 그에게 인정과 명예는 저절로 따라왔다.

◆겁없이(?) 도전한 미션

정규수 박사는 무기 연구는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시작이라고 말한다.<사진=ADD>정규수 박사는 무기 연구는 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시작이라고 말한다.<사진=ADD>
"1977년 설 무렵, 당시 대전 기계창 창장이셨던 이경서 박사님의 호출을 받고 창장실로 올라갔더니 '위성발사 계획'을 세우라고 하시는 거예요. 평소 로켓과 위성발사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위성발사 계획'을 세우라니 어리둥절했지요. '저는 적격자가 아닙니다'가 정답인 걸 알고 있었지만, 약간의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저는 두 가지 조건을 들어주시면 해보겠다고 말하고 말았지요. 첫 번째는 로켓부서 각 주요 분야에서 제2인자를 한 명씩 차출해 20명의 Task Force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각 부서에서 파견된 인원은 원래 부서에 책상은 그대로 두고 몸만 와서 일하다 일이 끝나면 각자 자기부서로 복귀한다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해서 R-1 건물 2층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깡패집단(?)이 바로 '용마그룹'이었습니다. 용마 팀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미국은 고체로켓으로 추진하는 'Scout Space Launcher'를 개발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는데, 그때마다 수천 페이지 이상의 보고서를 썼고, 우리는 그 보고서를 가지고 세미나를 했습니다. 몇 달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 계획수립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발사장소로는 여수 땅끝마을 근방을 점 찍었고 발사대, 벙커, 추적레이더, 제주도 Down Range 레이다, 필요 인원, 예산 등을 추정했습니다. 계획 자체는 엉성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방향만은 괜찮았다고 생각됩니다."

하루는 새벽 2시까지 세미나를 하고 기숙사로 자러 가려고 나와 보니 찬비가 내리고 있었다. 팀원 중 한 사람이 모터 풀에 전화를 걸어 차를 보내달라고 하자 수화기를 통해 "차 보내라는데?"라고 동료에게 하는 말이 들렸고, 이어서 "누가 이 시간에 잠도 안 자고 오라 가라 해? 없다고 그래!"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울컥 화가 치밀고 서러운 순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 꿈 그리고 신념

"'미사일 박사'라는 수식어가 오늘날 제가 미사일에 대해 글을 쓰게 된 동기 중의 하나이기도 해요. 저를 그렇게 불러주신 분의 글이 거짓말이 되게 해서는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6권 째 미사일 책을 쓰고 있네요. 요새 TV에서 본 '연애를 책에서 배웠어요'라는 대사가 자꾸 뇌리를 스치네요. 전 로켓을 책으로 배웠답니다."

정 박사는 ADD를 떠난 후 3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우주 발사체 및 우주여행 등을 공부했다. 그 뒤에는 각국의 로켓 개발사, 항주학(astrodynamics), 로켓무기 등을 책으로 펴내기로 계획하고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로켓과학'은 총 3권으로 계획되었는데, 현재까지 제1권 로켓엔진 편, 제2권 로켓응용 편까지 펴낸 상태다. 다음 권 역시 로켓응용을 주제로 쓰고 있는데, 제2권은 로켓을 우주 발사체로 사용할 때 필요한 지식을 다루었다면 아직 씨름하고 있는 제3권에는 탄도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 박사' 대신 '정 작가'가 되고 싶은데 아무도 작가 선생이라고 안 불러 주네요. 도대체 몇 권을 더 써야 작가가 되는 겁니까?"

퇴직 후 제2의 인생. 과학자이든 작가이든 정 박사의 꿈은 늘 국방과학과 이어져 있다.

"ADD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 가족이 전쟁에 나가지 않도록 전쟁을 억제하는 무기를 만들거나, 그래도 전쟁이 난다면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 돌아올 확률을 높여주는 무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DD 연구원의 위치에서' 내 가족이 전쟁을 겪지 않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것뿐입니다. 무기를 연구하는 것은 결코 양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위치에 있는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능력과 열정이 있다 해도 뚜렷한 소신이 없다면 그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규수 박사는 믿고 있다. 자신이 평생을 다한 국방과학 연구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단단한 신념은 정규수 박사를 여전히 푸르게 하는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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