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본의 엇갈린 운명을 현장답사로 파헤친 역사 탐방기
저자: 이광훈 펴낸곳: for book

◆ 조선과 일본, 출발은 같았으나 왜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까?

저자: 이광훈 펴낸곳: for book.<사진=출판사 제공>
저자: 이광훈 펴낸곳: for book.<사진=출판사 제공>
1852년생 동갑내기인 고종황제와 메이지천황은 비슷한 시기 권좌에 올라 근대화의 여정에 나섰다. 하지만 메이지는 근대화의 명군, 고종은 망국의 암군으로 전락하는 운명으로 엇갈렸다. 107년 전 조선은 전쟁도 하지 않고 그렇게 나라를 빼앗겼다.

이 책은 '조선은 왜 그렇게 당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조선과 일본의 근대사를 현장 답사를 통해 비교 분석한 탐구적 역사 여행의 결과물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책은 2016년 9월 초판에 이은 개정증보판이다.

저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큐슈와 야마구치, 교토, 도쿄 일대의 일본 개항 유적지, 메이지유신 사적지를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 답사를 인솔해 수십차례 다녀오며 고증을 거쳐 조선과 일본의 상반된 근대사를 복원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조선과 가장 교류가 많았던 야마구치현에서 어떻게 메이지유신 주역들이 대거 배출돼 조선 침탈의 선봉에 섰는지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 비밀의 상자를 열어본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망국사의 민낯이 드러난다.

◆ 조선을 삼킨 조슈 사무라이: 정한론의 본산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산실 '쇼카손주쿠'

역사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사람을 돌아보면 왜 일본이 그토록 집요하게 조선을 삼키려고 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조선 침탈 주역들의 족적을 찾아가 보기 위해서 출신 지역을 조사하다가 소름 끼치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조선 침탈의 주역은 조선주재 일본 공사, 공사를 막후에서 조종한 일본 외무대신과 총리대신, 을사늑약 이후의 조선 통감과 주차군사령관, 합병 초기 조선 총독 등 이다.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1894년부터 한일합병기까지 이 자리에 있었던 인물은 모두 10명으로 그중 8명이 막부시대 죠슈번, 지금의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등 총리 3명과 민비 살해의 주역인 미우라 고로 등 5명이 야마구치현 변방의 '하기'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도 인구 5만명에 불과한 이 벽촌에서 일본 근대화를 완성하고 조선을 침탈한 주역이 모두 나왔다는 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조선에 대한 지역적 원념이라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그렇게 뿌리를 찾아 들어간 하기에는 일본의 개화기에 나이 서른의 서생 요시다 쇼인이 개설한 '쇼카손주쿠(松下村塾)라는 시골학숙이 있었다. 일본 근대화 추적의 출발점이었다.

조선 침탈의 주역이었던 당시 일본 총리(이토 히로부미·야마가타 아리토모·가쓰라 다로), 조선공사(이노우에 가오루·미우라 고로), 조선통감(이토 히로부미·소네 아라스케·테라우치 마사다케), 조선주차군사령관(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테라우치 마사다케·하세가와 요시미치) 등 핵심 인물 8명은 쇼카손주쿠에서 동문수학한 이토 히로부미와 먀아카타 아리토모를 정점으로 수직계보를 이루고 있는 죠슈인맥의 핵심이다.

천출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수하에 두고 메이지유신의 주역으로 키운 인물이 요시다 쇼인의 수제자였던 다카스키 신사쿠라는 젊은 사무라이이고, 그가 바로 야스쿠니의 망령을 창조한 군국주의의 원령이었다. 요시다 쇼인이 세운 쇼카손주쿠는 일본 군국주의의 본산이었다.

메이지유신을 이끈 3명의 총리를 포함해서 대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 9명이 이 시골학숙에서 나왔다. 종전 후 4명의 총리를 더 배출한 야마구치는 도쿄도를 제치고 총리 배출 1위(9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을사늑약, 한일합병 당시(가쓰라 다로)는 물론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사토 에이사쿠)도 야마구치 출신 총리의 손을 거쳤고 현재 아베 총리도 마찬가지다. 메이지 유신 50주년(1917년 테라우치 마사다케), 100주년(1968년 사토 에이사쿠), 150주년(2018년 아베 신조)를 기념하는 총리도 모두 야마구치 출신이다.

아베 총리는 2016년 쇼카손주쿠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군국주의 유산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포장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름의 '신(晋)'자를 다카스키 신사쿠에서 따올 정도로 군국주의의 원령을 숭배하는 아베 총리의 강경 우경화 노선은 그 뿌리가 여기에 있다.

일본 야쿠자의 최대조직인 야마구치구미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야마구치구미의 연원은 야마구치와 관계 없지만-한일 관계의 악역을 도맡아 왔던 야마구치 인맥의 조선침탈사를 복기해 보면, 야마구치를 모르고 한일 역사 갈등의 뿌리를 논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저자는 하기에서 야마구치, 시모노세키, 호후, 히카리 등 야마구치의 메이지유신 사적지를 샅샅이 훑고 다니면서 조선을 삼킨 일본 사무라이의 근대화 여정을 생생하게 되살려 냈다.

어떤 여행사 상품에도 등장하지 않는 낯선 지역에 잠복하고 있는 일본 사무라이의 조선침략사를 복원하면서 오늘 우리가 되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을 짚어본다.

◆ 메이지유신 150년,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이 다시 칼을 잡았다

도쿄에 있는 쇼인신사에 가면 신사 경내에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던 메이지시대 야마구치 출신 고위 인사들이 바친 석등이 줄지어 서 있다. 이토 히로부미, 야마카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다로, 기로 다카요시, 노기 마레스케,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 메이지시대를 주름잡은 쟁쟁한 인물과 함께 아베 총리의 진외가 외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의 석등이 서 있다.

오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경복궁을 무단 침입, 고종을 겁박해 갑오개혁을 강요하고 청일전쟁의 선발대로 전쟁을 도발했으며 관동도독(만주총독)으로 안중근 의사를 사형대에 세운 인물이다.

하기에 있는 쇼인신사의 현판 글씨는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조부)의 작품이고, 1968년 메이지 유신 100주년을 기념해 당시 사토 총리(아베 총리 외종조부)가 세운 기념비가 신사 앞마당에 웅장하게 서 있다. 아베 총리 가문은 조선 침탈의 역사에서 악역과 주역을 도맡은 우익의 본가였다. 아베 총리의 DNA는 그렇게 형성됐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일본의 우익 세력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통절한 반성은 커녕, '일본은 왜 패배했는가'에 대한 처절한 자아비판을 통해 패권 국가로의 부활을 꿈꾸며 국제무대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지만 일본이 그런 모습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군국주의자의 초상을 지우고 훨씬 더 세련되고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강력한 동맹국'의 손을 잡고 국제 무대에 당당히 복귀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일합병을 후원한 가장 강력한 후원세력이 미국이었고 지금 일본의 재무장을 지원하는 강력한 동맹국 역시 미국이다. 대한제국이 망국으로 치닫던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일본에 등을 돌리고 미국과 멀어져 가고 있는 지금의 판도에서 일본과 중국의 자리를 그 당시 일본과 청나라로 대체하면 어떻게 될까.

최근의 한·중·일 3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100여년전 조선 망국을 불러왔던 당시의 데자뷰처럼 전개되고 있다. 당시 일본이 국운을 건 전쟁까지 도발하며 한반도에서 몰아냈던 러시아를 21세기 패권국가를 지향하는 지금의 중국으로 대체하면 상황은 복사판처럼 똑같다. 일본이 두번의 전쟁까지 치르면서 청나라와 러시아를 조선에서 몰아내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것처럼, 미일 군사동맹의 울타리에서 한국을 빼내려고 하는 중국의 강압적 외교전략이 전개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150년전의 그때와 너무나 닮아 있음에 소름이 돋는다.

5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2012년 12월 총리로 복귀한 아베 총리는 다음해 2월 미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방문해 '일본이 돌아왔다(Japan ist back!) 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에서 아베 총리는 일본이 더 이상 '2열 국가(Tier-two nation)'에 머물지 않을 것이며, 미국과 함께 '국제적 공동자산의 수호자(guadian of global commons)'가 되겠다고 천명했다. 'global commons'는 해양자원과 같은 국제적 공동자산을 천명하는 것으로 아베의 선언 속에서 말하는 '국제적 공동자산'이 '남중국해'를 지칭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확실하게 미국편에 줄을 선 아베와 미국과 멀어져가는 한국, 그 결말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흔들지 걱정하는 마음이 이 책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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