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의 느린여행]하동으로 도망친 두 여자

차 한잔을 위한 최고의 명당···'금향다원'
글 ·그림 ·사진 : 강선희
anger15@nate.com

금향다원 전경금향다원 전경

"언니, 우리 만나요! 주말에 시간 있어요? 우리 여행갈래요?"

뜬금없이 만나자는, 만나는 김에 여행을 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몇 년 전 영어유치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나 알고 지내던 동생으로부터였다. 본의 아니게 어딜 돌아다니는 사진을 SNS에 많이 올리다 보니 '같이 가자'는 연락을 종종 받는다. 혼자 떠나기는 영 심심하고, 누군가와 같이 가려면 날짜를 맞추는 게 어렵다 보니 내가 딱 적절한 표적인 셈이다.

"오! 어디로 갈까?"

그래서 그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 가든 괜찮으니 너 가고 싶은 곳으로 가자고, 주말에 시간을 비워두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름 정도가 지났나. 은애는 아직도 어디로 갈 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떠나고픈 마음은 간절한데, 매일같이 야근이 이어져 무척 바빴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연히 찾은 링크를 보내주고 혹시 이 중에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훑어보라 했다. 그렇게 출발 이틀 전, 우리는 가까스로 방을 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까지, 나는 우리가 묵을 곳이 경상도 하동 어딘가로만 알고 있었다.

"언니, 우리 괜찮겠죠?"

고속도로 주행이 처음인 은애가 운전대를 잡으며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아무렴, 장롱면허인 나보다 낫겠지!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우리는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했다. 휴게소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지리산 자락에 들어서니 구렁이 등을 탄 것처럼 길이 구불구불했다.

숙소를 찾아오기 어려울 거라며 주인이 약도를 보내줬다고, 길 찾는 걸 도와달라며 은애가 핸드폰을 건넸다. 그 눈빛은 걱정스러우면서도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21세기에 약도라니 웃기죠?"

그래, 요즘이 어느 시댄데~하고 까르르 웃으며 도착한 하동의 악양마을. 우리는 보란 듯이 길을 잃었다. 악양 초등학교 근처를 빙빙 돌기를 두 번. 하는 수 없이 약도를 보며, 배밭을 찾고, 정자를 찾고, 장승을 찾아 30분… 마침내 지리산 산자락 해발 400m에 위치한 금향다원에 도착했다.
 
황토구들방황토구들방

딱 하나뿐인 황토구들방은 이미 예약이 되어버려서 우리는 다른 방에 묵었는데, 손님이 체크인을 아직 안했다길래 양해를 구하고 구들방 구경을 해 보았다. 손님 맞을 준비에 아궁이에 불을 피워두었는지 방바닥이 따뜻했다. 은애랑 나는 '아~ 예쁘다'하며 감탄과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보지 말 걸 그랬나! 정갈하게 깔려있는 이불 속에 쏙 들어가, 그대로 낮잠을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향다원 차실금향다원 차실

구들방 윗층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이 곳에서 손님들께 차를 대접한다고 했다. 저 멀리 지리산의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차 한 잔을 위한 이런 명당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라는 숙소 한 켠의 작은 주막에서, 사장님은 음식준비에 손이 바쁜 와중에도, 우리에게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며 녹차와 말린 곶감을 내어주셨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다원 일을 돕고 있다는 종석씨가 녹차를 정성스레 우려주는 동안,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경상도 사투리가 참 재밌고 포근해서 흉내도 내어보고 농담도 하다 보니, 담소를 나누는 동안 우리는 금새 친해졌다.

금향다원 오두막금향다원 오두막

"언니 뒤에 창문으로 지리산이 훤히 보여요. 이렇게 한가로이 차를 마시는 게 너무 좋네요. 이번 주는 일이 많아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전해 내려온 보람이 있어요!"

일정이 없는 여행이었다. 유일한 일정이 도시를 빠져 나오는 것이었고, 은애는 마지막 기력을 운전을 하는 데에 쓴 것이다. 한참 동안 앉아 느긋이 차를 마시다가, 오후 세 시께 우리는 낮잠이나 자기로 했다. 쉬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대로 지리산의 정기나 흠뻑 마시고 힐링하고 가자!
 

악양마을 구석에 쌩뚱맞게 숨어있는 형제봉 주막. 문 여는 시간은 주인장 마음?악양마을 구석에 쌩뚱맞게 숨어있는 형제봉 주막. 문 여는 시간은 주인장 마음?

푹 자고 일어나니 밖에는 어스름이 깔렸다. 은애와 나는 픽업서비스를 이용해 형제봉주막으로 갔다. 혹시 문을 안 열었을까 봐 노파심에 전화를 해봤는데, 주인아저씨가 이 산골짜기에 있는 주막집을 어찌 알고 오느냐며 일찌감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하동에 갔던 건 11월 말이었는데, 주막집 바닥에는 은행나무 잎이 수북이 깔려있었다. 주막집의 노란 조명에 노란 은행잎들이 노랑노랑, 제 발로 찾아왔건만 마치 특별초대를 받은 기분이었다. 동네 은행잎을 다 긁어오느라 조금 수고스러웠지만 예쁘잖아! 라며 호탕하게 웃는 아저씨였다. 난로에 밥을 주자, 아저씨의 환영 만큼이나 공기가 한층 더 따뜻해졌다.

시장한 은애와 나는 메뉴가 몇 개 없는 메뉴판을 쭈욱 훑어보다가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달빛 젖은 막걸리라…? 그 날 저녁, 형제봉 주막에는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아저씨는 튜닝이 안된 낡은 기타를 퉁기며 이문세 노래를 불러주셨고, 우리는 달빛에 젖으며 토요일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달빛에 취한 두 처자달빛에 취한 두 처자

주변에 불빛이 따로 없는 고즈넉한 숙소에 돌아오니, 깨끗한 밤하늘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촘촘하게도 박혀 있다. 추위에 코가 시린데 우리는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았던 것 같다. 달빛에 취하고, 막걸리에 취하고, 별빛에 취한 밤이었다.

다음 날 은애는 밀린 늦잠을 자서, 나는 오랜만의 숙취에 예약해 둔 시골 아침밥상을 못 먹고 말았다. 둘 다 알람을 맞춰놓는 걸 깜빡해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세상 모르고 잔 거다. 정갈하고 맛있게 차려져 나온다는 시골밥상 먹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그만 자느라 놓쳐버린 우리는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별들이 수 놓은 밤하늘. 금향다원 홈페이지에서 발췌별들이 수 놓은 밤하늘. 금향다원 홈페이지에서 발췌

"우리 다시 와요, 언니! 이런 시골여행이 이렇게 매력적인지 몰랐어요."
"그래, 그러자! 시골여행 2탄!"

 일요일 오후, 우리는 도망쳐 나왔던 도시로 향했다. 또 다시 빠져나올 날을 꿈꾸며.

+
우리가 금향다원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맛조이코리아의 '시골집밥', '시골여행'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시골체험 여행과 더불어 맛있는 시골 집밥도 먹어볼 수 있는 1석 2조의 기회랄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내려와 짧게는 하루 이틀, 길게는 일주일씩도 묵어간다고 한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시골하루'를 다운받으면 다양한 정보를 볼 수 있다. 물론 은애에게 보냈던 링크도 이 시골하루에서 발췌한 것이다. 

형제봉주막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입석길 40-1
금향다원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신흥길 167
http://goldaroma.ma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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