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전파망원경 21대 연결···우주 공간 곳곳 자세히 살핀다
손봉원 천문연 전파천문본부 박사 "과학계 국제협력 사례 만든다"

한국의 VLBI 관측망을 설명하고 있는 손봉원 천문연 박사. EAVN에 4대의 한국 전파망원경이 참여한다. <사진=박성민 기자>
한국의 VLBI 관측망을 설명하고 있는 손봉원 천문연 박사. EAVN에 4대의 한국 전파망원경이 참여한다. <사진=박성민 기자>
제주도 한라산 정상에서 서울 명동 길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볼 수 있다?

얼마나 높은 해상도의 망원경이 필요할까. 엉뚱한 생각같지만 실제로 가능하다. 심지어 동전에 적힌 작은 숫자까지 보인다. 우주 공간을 관측하는 전파망원경의 이야기다. 동아시아 국가의 전파망원경 21대를 연결해 관측한다면 달에 있는 동전을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높은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다.

우주 공간을 더욱 자세히, 멀리 들여다보기 위해 지구촌 천문학자들이 뭉쳤다.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이해하며 인류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기반이다. 이름은 '동아시아 VLBI 네트워크'.(이하 EAVN·East Asian VLBI Network)

한국천문연구원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 전파망원경 21대를 연결해 수천km 크기를 가진 전파망원경을 구현하는 네트워크다.

VLBI란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ery Long Baseline Interferometer)의 줄임말이다. 멀리 떨어진 여러 전파망원경이 한 지점을 동시에 관측함으로써 그 거리에 상당하는 크기의 해상도를 얻는 관측 장치다. 많은 망원경이 참여할수록 해상도도 올라간다.

◆ 21대 전파망원경 뭉쳐 성능 10배 향상 "초대형 블랙홀 자세하게 본다"

21대의 망원경으로 구성된 EAVN의 지리적 분포.<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21대의 망원경으로 구성된 EAVN의 지리적 분포.<사진=한국천문연구원 제공>
EAVN은 한국의 VLBI 관측망인 KVN(Korean VLBI Network), 일본의 VERA(VLBI Exploration of Radio Astrometry), 중국의 CVN(Chinese VLBI Network) 등 3개국 21개 망원경을 연결한 최대 5000km 정도의 거대 관측망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도와 감도로 우주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한국에는 4대의 전파망원경이 참여한다. 천문연이 보유한 21m급 전파망원경 3대와 국토지리정보원이 보유한 22m급 전파망원경 1대가 동참한다.

좋은 영상을 얻기 위해 전파망원경이 한 곳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시간은 적어도 6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한국을 포함한 중국, 대만, 일본의 천문학자들이 관측을 제안할 수 있다. 이들은 관측 제안서를 작성하고 21대 전파망원경에 정확한 관측 일정을 배포한다.

각 전파망원경에 구축된 정밀한 시계를 기반으로 정확한 시간과 지점을 맞춰 관측한다. 1년 동안 300~400시간 관측을 목표로 두고 있다. 내년께 4개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천문학자들이 관측을 제안할 수 있도록 구성할 방침이다.

21대 전파망원경은 올해 하반기부터 정식 관측에 돌입한다. 주로 초대형 블랙홀이 뿜어내는 에너지인 '제트'를 관측한다. 제트가 우주 탄생 초기부터 은하와 은하가 무리를 이룬 은하단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려는 목적이다.

블랙홀은 은하에 비해 크기가 작다. 무게는 태양 질량의 100만배~10억배 수준이다. 블랙홀이 내뿜는 제트는 은하 밖까지 나가며 주변 환경을 뜨겁게 만든다. 환경이 뜨거워지면 별이 생기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블랙홀이 별의 탄생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진다.

21대 전파망원경으로 정확한 지구 좌표계도 구성할 수 있다. VLBI는 멀리 있는 우주 공간을 정확히 볼 수 있다. 멀리 있는 지점을 기준으로 대륙의 자전 속도를 관측하고 대륙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주 공간의 좌표계도 구성한다. 우주 탐사선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거나 달의 로버 궤도도 계산한다. 탐사선의 연료 등을 절약하며 우주 탐사·추적 분야에 활용된다.

동아시아 천문학자들이 똘똘 뭉치면서 독자적으로 우주를 관측할 때보다 감도 5배, 분해능 10배 향상의 효과를 낸다.

◆ "동아시아 전문성 결집···과학계 국제협력 사례 만들겠다"  

손봉원 박사는 "EAVN을 과학계 국제협력의 긍정적인 사례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사진=박성민 기자>
손봉원 박사는 "EAVN을 과학계 국제협력의 긍정적인 사례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사진=박성민 기자>
"동아시아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에도 가까운 국가들끼리 밀접한 협력이 쉽지 않습니다. 가까울수록 정치적·경제적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죠. VLBI는 망원경을 가능한 크게 만들어야 하므로 국제협력이 필수인 분야입니다. 과학기술계 긍정적인 국제협력 사례로 만들겠습니다."

초대형블랙홀 제트 연구의 한국 책임자로 활동하는 손봉원 천문연 전파천문본부 전파천문연구그룹 박사의 포부다. 이론을 뛰어넘는 우주 관측을 위해 단일 국가나 단일 연구기관의 장비·인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하고 선도적 국제협력을 꾀하고 있다.

EAVN 국제협력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3년 한국천문연구원과 일본국립천문대는 양국이 보유한 7대의 전파망원경을 연결했다.

한일공동 우주전파 관측망인 '카바(KaVA)'를 탄생시켰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협력 성과를 얻어냈다. 카바의 성공적인 관측으로 주변국들이 국제협력 연구에 동참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21대 전파망원경뿐만 아니라 중국 신장의 110m 망원경과 태국 VLBI 네트워크(TVN) 시설, 대만의 전파망원경 등이 추가되면 EAVN의 성능은 더욱 강화된다.

EAVN은 미국의 초장기선 전파망원경배열(VLBA), 유럽 VLBI 전파망원경 네트워크(EVN)에 필적하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전파망원경 네트워크의 큰 축이 될 전망이다.

손봉원 박사는 "한국과 일본의 카바 협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연구자들이 지난 수년간 EAVN의 구성을 위해 노력해왔다"라며 "동아시아의 자원과 전문성을 모아 그 연구역량을 극대화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로 국제협력의 중요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 박사는 "기초·응용과학의 선도적 연구를 위해 수많은 자원과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라며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거나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극한 이상의 장비와 인력이 필요한 환경"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단일 국가나 단일 연구기관이 보유한 장비와 인력의 수준을 넘는 자원이 필요하다"라며 "국제협력으로 자원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아시아의 천문학 협력을 활발하게 이뤄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 박사는 "기초과학은 응용과학과 달리 대부분 개인의 궁금증에서 출발한다"라며 "기초과학의 결과는 의도할 수 없고 파급력을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연구에 대한 진실성을 가지고 천문연구 성과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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