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방법
글 ·그림 : 강선희 anger15@nate.com
꿈꾸는 여행가 강선희 작가는 도서 '청춘, 카미노에서 꽃피다'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여행에서 느끼는 자신만의 삶과 길을 기록하는 강선희 작가의 [써니의 느린여행]이 매월 둘째 주 목요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정겨운 풍경과 함께, 바쁜 일상 속 힐링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
대전에 지하철이 생긴 이후로 어디 갈 일이 있으면 제 시간을 잘 지키는 지하철을 타는 걸 선호하는데, 가끔은 버스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바로 봄 바람이 불어올 때다. 겨우내 볼이 땡땡 얼 정도로 차가운 바람에 시달리다가 우연히 봄바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하루 종일 건물 안에 있다 보니 비 맞을 일도 눈 맞을 일도 별로 없어 바깥날씨가 어떤지 무감각해지곤 하는데, 어느 새 겨울이 마침표를 찍었고 지난 주에는 봄비가 내려었단다. 그 봄비가 언제 내렸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다.
휘모리장단 같은 한 주가 끝나고 봄비처럼이나 반가운 일요일이 돌아왔다. 거짓말처럼 따뜻한 날씨에 본능적으로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수통골.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니, 열려진 창문 틈새 사이로 봄바람이 비집고 들어와 콧등을 간지럽혔다. 두 볼에 스며드는 따뜻한 봄의 기운을 오래오래 느끼고 싶어졌다. 공교롭게 노선이 제일 긴 버스를 타다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을까.
종점행 버스는 긴장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한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안내방송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스르륵 잠이 들어도 부담 없고,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푹 빠져 종점에 도착한 줄 몰라도 걱정 없다. 기사아저씨가 "다 왔어~ 내려~!"하고 친절히 소리쳐주기 때문이다.
영사기처럼 휙휙 스쳐 지나가는 창문 밖 풍경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가 포근하니 다들 나처럼 봄볕을 즐기러 나왔나 보다. 겨울 내내 이 도시 절반 이상의 인구가 약속이라도 한 듯 새까만 롱패딩만 입고 다녔는데, 저 멀리 강아지와 산책을 나온 아가씨의 파스텔톤 외출복을 보니 드디어 컬러의 계절이 돌아오는구나 싶었다. 몹시 반가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여행이라고. 즐거운 일만 일어나는 게 여행이 아닌 것처럼, 그 말은 일리가 있다. 꼭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며, 누군가와 함께 왁자지껄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다. 단지 내가 필요한 건 내가 사는 도시를 바라볼 색다른 시선이다.
그리고 내가 일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즐겨찾기. 커피!
생긴 지 얼마 안 된 우리동네 카페 'café bru'는 커피가 정말 기똥차게 맛있다. 이런 즐겨찾기는 집에서 멀지 않아야 하고 맛있어야 자꾸 생각난다. 거기다 공간이 주는 매력과 선곡센스까지 겸비한 카페라면 일주일에 한 번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 기다려질 수 밖에 없다.
바 자리에 앉아 고소한 커피향에 퐁당 빠져 있으면 정성을 다해 만든 커피를 내어준다. 다른 곳과 다르다. 천편일률적인 프랜차이즈 카페처럼 딸깍, 버튼 한 번에 내려지는 커피가 아니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어지는 커피라서 더욱 마음에 든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지긋이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주인장이 내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염탐하는 재미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받은 커피는 항상 따봉이다!
피아노 선율 가득한 음악, 군더더기 없이 원목으로 심플하게 꾸며진 공간이 주는 편안함. 내가 할 일은 커피잔을 비워내는 것 뿐. 한 모금 두 모금 커피를 음미하는 그 순간이 정말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손님이 별로 없을 땐 책을 읽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럼 그 분위기에 젖어 커피를 한 잔 더 마실 때도 있다.
바삐 사는 다른 요일들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여유이기 때문일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꼭 가지려고 노력한다. 내가 좋아하는 소박한 즐겨찾기 하나로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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