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ETRI 명사초빙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특강 열려
"독서실 칸막이 구조···집중력 올라가지만 '창의력' 없다"

ETRI는 13일 본원 국제회의동에서 유현준 건축가를 초청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로 명사특강을 개최했다.<사진=ETRI 제공>
ETRI는 13일 본원 국제회의동에서 유현준 건축가를 초청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로 명사특강을 개최했다.<사진=ETRI 제공>
"세계적인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 연구자들은 '잡담'을 많이 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부서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청소부와도 끊임없이 대화합니다. 출연연이 밀집된 대덕특구도 독서실 같은 칸막이를 허물고 수시로 모여 잡담해야 합니다."

도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이자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부교수인 유현준 건축가가 대덕특구를 찾아 출연연이 담장을 허물고 잡담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이상훈)는 지난 13일 본원 국제회의실에서 유현준 건축가를 초청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로 'ETRI 명사초청' 행사를 개최했다. 

유현준 건축가는 독서실 칸막이를 예로 들었다. 그는 "독서실 칸막이 구조는 집중력이 올라가겠지만 창의력은 올라가지 않는다"라며 "담장을 허물고 모여서 잡담을 시작될 때 창의적 성과가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출연연 중심의 거리' 공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연구자들이 중심의 거리로 나와 다른 연구자들과의 접촉이 필요하다는 것. 하다못해 다른 연구자들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엿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공대 캠퍼스는 하나로 연결된 구조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잡담하며 소통한다"라며 "출연연 연구자들도 일단 다른 연구소 사람들과 밥을 먹어야 한다. 물리적 장벽인 담장을 허물고 점심시간이라도 모이고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도시의 진화는 생명체의 진화···5G·IoT 첨단기술로 "도시는 바뀐다"

유현준 교수가 세계적인 도시들이 고밀화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ETRI 제공>
유현준 교수가 세계적인 도시들이 고밀화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사진=ETRI 제공>
유현준 건축가에 따르면 시대를 이끌었던 국가들은 세계적인 도시를 가지고 있다. 로마제국은 로마, 미국은 뉴욕, 프랑스는 파리, 영국은 런던 등의 도시를 만들었다. 각 도시는 도시 고밀화를 위해 다양한 기술을 만들었다. 예로 로마는 상수도, 파리는 하수도, 뉴욕은 엘리베이터 등을 개발했다.

그는 도시의 진화가 '생명체의 진화'와 동일함을 강조했다. 로마의 상수도 개발은 '동맥 네트워크', 파리의 하수도 개발은 '정맥 네트워크', 뉴욕의 엘리베이터 개발은 '신경계' 등과 같이 생명체 진화로 비유된다.

유 건축가는 향후 찾아오는 도시의 진화는 '중추신경계' 단계로 IoT를 비롯한 5G 기술이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생명체의 진화가 도시의 진화와 같다. 지금은 중추신경계 진화 단계"라며 "동시통역기 등으로 모든 인류가 통하게 된다. 2050년 통신 기술의 세계 표준화 작업이 끝나면 모든 도시가 바뀔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그는 소통이 단절돼가는 현대도시의 아픔을 언급했다. 과거 한국은 초가집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를 도입하며 대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소통의 부재로 현대도시의 장점이 점점 사라지고 무관심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유 건축가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때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다"라며 "과거에는 골목에서 이웃들이 만났다. 지금은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웃 간의 소통이 없다. 복도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도시가 자동차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폭이 넓어진 차도를 따라 먼 곳은 쉽게 가지만, 차도를 사이에 둔 블록은 더욱 단절된다"라며 "소통의 단절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 도시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우연히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는 '학교 건축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어린이가 집을 떠나 12년 동안 배우는 공간이 학교지만, 학교 교실과 건축 양식은 건국 이래 변함없이 그대로라는 것.

수십 개의 똑같은 박스형 교실이 모여서 만들어진 건물과 운동장 하나로 구성된 학교 건축물은 '교도소'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라며 "전국 어디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교실을 보면 양계장의 폐쇄형 닭장 안에 갇혀 지내는 닭이 떠오른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는다면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정신이 없어진다"라며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공간의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세계적 대도시들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공간들이 많이 있다"라며 "현대도시는 우연한 만남이 줄어들고 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대덕특구에도 희망의 공간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 참가한 참석자들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행사에 참가한 참석자들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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