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소식 개최···미산 스님, 초대 연구소장으로 부임
과학과 명상 융·복합 연구로 미래형 인재 양성

"명상은 종교, 사상, 인종의 벽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명상과학연구소는 앞으로 하버드대에서도 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인 명상 기제와 관련된 융복합 연구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 과학적 명상프로그램 개발과 교육을 통해 구성원들의 안정과 미래 가치 실현을 돕겠습니다."

KAIST 명상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미산 스님의 포부다. 

최근 KAIST가 'Vision 2031'을 선포하고 21일 명상과학연구소 개소식을 가졌다. 비전 달성을 위해 KAIST 인재상으로 도전, 창의, 배려를 제시하고, 공감형 창의적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통해 인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하겠다는 힘찬 행보를 시작했다.

명상은 그동안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영역으로 간주됐다. 이공계특성화대학이 이와 관련된 연구소를 설립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세계 굴지의 대학에서도 하지 않는 연구로 KAIST의 선도적인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미산 스님은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출신이며, '하트스마일 명상 프로그램'을 창시했다. 그는 인문-종교-명상학 등을 넘나들며 학업을 수행했으며 이론과 관련 행법을 전통적으로 수행한 명상 전문가다.  

그는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의 고유의 상태를 회복하고, 풍요롭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산 스님은 "현대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심신이 미약해지고 어려움을 겪는데 명상은 해결책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두뇌가 감각기관을 활용해 정보를 객관화해서 판단한다. 그런데 난관에 봉착하면 이러한 객관화 능력이 결여된다. 명상은 몸과 마음을 고유의 상태로 만들어 풍요롭고 행복한 삶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음 챙김 기반 연민 명상(Compassion Meditation)을 통해 통찰, 창의, 배려, 사랑, 집중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자신을 다 비워내야 남을 배려하거나 창의·도전적 연구 수행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풍요를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개소식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개소식 참석자들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명상 관련 연구 활발···"명상의 과학화 중요"

KAIST는 SK의 지원으로 명상과학연구소 개소를 추진해 왔다. 학교측은 지난해 8월 SK에서 설립한 재단인 플라톤 아카데미(이사장 최창원)와 명상과학연구소 설립·운영에 관한 양해각서를 채결하고 관련 준비를 해왔다.

명상은 뇌과학 등의 발전에 따라 기존의 개인·종교 차원을 넘어 과학적 효과를 입증하려는 노력이 미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그동안 연구를 통해 명상의 대표적 효과는 집중력 향상과 불안이나 스트레스 완화로 알려져 왔다. 

구글, 인텔 등 글로벌 기업에서도 임직원들에게 명상을 장려한다. 구글에서는 사내 명상 프로그램으로 'gPause' 실시하고 있으며, 인텔은 'Awake Intel'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업무능력 향상을 이끌겠다는 취지다.

최창원 플라톤 아카데미 이사장이 축사를 전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최창원 플라톤 아카데미 이사장이 축사를 전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대학, 연구소 등 연구기관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NIH(미국 국립보건원)의 대체의학연구소(OAM)은 1993년부터 명상 연구에 공식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년 명상 관련 논문 1200여 편이 각종 학술지에 발표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 하지만 하버드, 스탠퍼드대와 같은 세계적인 대학에서는 명상 효과 관련 연구만 수행하는 수준이다. 매사추세츠 주립대학교 의과대학(UMass Medical School)에서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램을 개발해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KAIST 명상과학연구소는 단순 효과를 넘어 명상 과정부터 두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방침이다. 

이번에 개소한 연구소는 인간과 과학기술, 명상과학의 융복합을 통해 과학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가치창출을 이끄는 공감형 창의적 인재 육성을 주요 목표로 과학적 명상프로그램 개발과 교육 관련 활동을 수행한다.

주요 시설로는 한지와 거울 등을 활용한 인테리어와 함께 명상공간, 대나무 숯을 이용한 자연정화 시설 등을 갖췄다.  

최창원 플라톤 아카데미 이사장은 "명상은 '나 자신을 만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KAIST 구성원들이 자신의 위대한 본성을 만나고, 명상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서 더 많은 효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나무숯과 한지 등을 활용해 만든 시설.<사진=강민구 기자>
대나무숯과 한지 등을 활용해 만든 시설.<사진=강민구 기자>

연구소 한켠에는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연구소 한켠에는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KAIST 관계자들은 명상과학 연구가 구성원의 안정, 4차산업혁명 대비 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신성철 총장은 "KAIST가 국가 최고를 지향하면서 교수, 학생들이 겪는 학업과 연구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면서 "주변에서도 이를 관리하고 해소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고 설명했다.

정범석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도 "학생들을 보면 본인의 사고 방식에 국한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들이 기존 틀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울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면서 말했다.
 

KAIST 명상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미산 스님.<사진=강민구 기자>
KAIST 명상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미산 스님.<사진=강민구 기자>
◆인공지능시대 명상과학 역할?···"인간론적 탐구 통해 과학적 설득해야"

명상과학연구소는 향후 뇌과학, 의과학 등 학내 타학과와의 융·복합연구를 통해 명상의 효과, 심리학과의 관계, 명상수행에 의한 뇌연구 등 명상의 과학화를 위한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KAIST 주요 교수들이 함께 협력한다. 

김대식 교수는 출범 행사 포럼을 통해 "인공지능 시대에 기계가 '지능'을 보유한 존재로 급부상할것"이라며  "인간이 인간다운 가치를 키우면서 로봇과의 공생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화물신앙 탈피(Anti Cargo Culture)'를 강조했다. 인과관계 없이 배나 비행기에 특별한 화물을 실어 올 것이라고 믿는 원주민의 풍습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인과관계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명상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은 물질적 영역을 탐구하기 때문에 그동안 정신적 영역과는 분리되어 있었다"면서 "앞으로 강한 인공지능이 구현된다면 보다 인간적인 가치가 중요해지며, 인간이 명상을 바탕으로 과학적 설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명상이 종교적,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깊은 인과관계 규명과 보이지 않는 것을 통찰하는데 활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휴대용 영상기기로 뇌 질환 모니터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배현민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애초 명상과학연구소의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던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직접 장치를 활용해서 분석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명상과학의 필요성을 인지하게 됐다.

배 교수는 "명상은 자기 자신을 보는 존재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과학적인 명상기법을 도입해 이를 분석하고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덕주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도 "4차산업혁명에서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기술뿐만 아니라 맥락적 인지, 정서조절 등이 중요하다"면서 "과학적 명상을 통해 사물을 객관화하고 뇌 인지적 오류를 해소하는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신성철 총장은 "명상과학연구소가 KAIST의 새로운 목표인 'Vision 2031' 실현을 위한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며 "하버드대에서도 하지 않는 새로운 연구를 하기를 바라며, 명상을 통해 학내 구성원들이 마음의 여유와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 시대 명상과학의 역할에 대한 강연도 진행됐다.<사진=강민구 기자>
인공지능 시대 명상과학의 역할에 대한 강연도 진행됐다.<사진=강민구 기자>

개소식과 함께 진행된 명상과학 포럼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KAIST 교수들의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개소식과 함께 진행된 명상과학 포럼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는 KAIST 교수들의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