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KIST 박사, 맞춤형 스포츠 기어 설계 위한 측정기술 개발
생체역학적 데이터 반영해 생활패턴 분석 및 질병 예방까지

#.건강을 위해 마라톤을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한 A씨. 하지만 시작전부터 고민이 생겼다. 시간이나 체력 문제가 아닌 러닝화를 선택하는 과정에서다. 다른 사람들보다 발바닥 아치가 깊은 '요족'형 발 때문에  조금만 오래 달리면 피로감이 쉽게 찾아온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러닝화는 사이즈만 구분될뿐, 개인별 발 아치 형태는 고려하지 않아  A씨에겐 오히려 불편하다.

취미 활동, 건강을 위한 생활 체육 등 운동 인구가 날로 증가하며, 웨어러블 디바이스, VR·AR 등 다양한 과학기술과 접목하며 새로운 개념의 스포츠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그중 주목되는 분야는 '스포츠 기어'. 신발, 장갑, 헬멧, 보호대 등 스포츠 활동을 하며 착용하는 장비들을 지칭한다. 개인 맞춤형 의료나 교육 시대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스포츠 기어를 통한 '개인 맞춤형 스포츠' 시대도 다가오고 있다.

개인 맞춤형 스포츠 기어 설계는 개인의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기술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김진욱 KIST 영상미디어연구단 박사는 개개인의 신체 구조적 특징은 물론 세세한 동작을 구분하고 습관까지 반영 가능한 측정기술을 개발 중이다.

김진욱 박사는 "기존 제품들은 대부분 정해진 사이즈로 대량 생산되기 때문에 억지로 기존 제품을 사용하거나,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개인용 스포츠 기어를 제작해야 한다"며 "측정기술 기반 맞춤형 스포츠 기어가 보급되면 전반적인 스포츠 산업 수준이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움직임을 반영한 스포츠 기어가 등장한다

김진욱 영상미디어연구단 박사의 인체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최적의 스포츠 기어가 설계, 제작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은 필수다. <사진=이원희 기자>
김진욱 영상미디어연구단 박사의 인체측정 기술을 기반으로 최적의 스포츠 기어가 설계, 제작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업은 필수다. <사진=이원희 기자>
개인 맞춤형 스포츠 기어 제작의 첫 단계는 분야별 '측정'이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기존 측정 기술은 '압력'에 의한 간접적인 측정이었다. 예를 들어 발바닥이 측정 발판을 밟을 때 가해지는 압력을 기반으로 발의 모양과 신체적 특징을 역으로 추측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압력이 없는 부분에선 측정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김 박사팀은 카메라로 촬영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를 개발했다. 카메라를 이용한 시각적 데이터로 압력만으론 측정이 불가능한 부분들을 측정 가능케 했다.

대표적인 예가 발바닥의 아치형 구조다. 아치 부분은 바닥에 닿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기존 압력에 의한 측정 방식으로는 구체적 데이터를 얻기 힘들었다. 김 박사팀은 영상 촬영 기술을 통해 구조적 측정은 물론, 한 단계 더 나아가 생체역학적 연구까지 연계했다.

김 박사는 "내측 아치와 외측 아치의 모양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며 "여기에 개개인의 보폭과 케이던스(cadence)까지 반영한 기능성 신발 인솔(insole) 제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착석해 있다가 일어서서 걸어가는 반응 시간을 측정하는 'Seat and Go' 등의 실험과 연계해 치매를 유추하는 의학 연구도 가능하다"며 "일회성 측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데이터를 수집 후 딥러닝을 이용해 개인의 건강상태 진단과 질병 유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카메라를 이용한 측정기술로 '스캐닝'의 문제점도 해결했다. 기존 스캐닝 기술은 대상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이는 기본적인 모델링 기술엔 적합하지만, 움직이고 있는 대상의 스캔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보행 중인 발은 계속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했다.

김 박사는 1초당 30회 촬영을 통해 문제를 풀어냈다. 하나의 데이터는 멈춰있는 개별적 이미지지만, 빠르게 연속 촬영한 이미지들의 연속성을 통해 보행 중인 발의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보행 스테이지다. 보행 데이터를 얻기 위해선 보행을 해야 한다는 필수 조건이 있었고, 이는 공간적인 제약을 가져왔다. 특히 보급화가 이루어질 경우 매장에서 측정 후 제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매장의 공간은 실험 공간보다도 더 한정적이기 때문에 설치가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김 박사는 이를 VR을 통해 해결했다. 그는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될 경우 무의식적으로 실제 보행과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며 "VR을 통해 실제 걸어가고 있는 듯한 가상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제자리걸음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보행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를 통해 기존에 필요했던 스캐닝 스테이지는 긴 '런 웨이(Run way)'에서 1인용 정사각 테이블 정도의 크기로 축소됐다.

◆발을 해석해줄 생체역학 전문가까지 함께한 연구

"이 수치와 이미지는 실험을 통해 얻은 개개인의 '발'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하지만 이 수치와 모양으로 발이 말해주는 진짜 정보는 모르죠. 때문에 이를 해석해줄 전문가가 함께 해야 합니다."

측정 후 설계과정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발바닥 아치의 모양과 보폭, 케이던스 등 발에 대한 데이터는 얻었지만, 이 데이터가 말해주는 의미를 몰랐던 것. 이는 스캐닝 장비에 쓰이는 센서 기술이나 시장성을 고려한 경제성 차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박사는 "스포츠 기어는 측정기술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제품이 기술로써 의미를 갖고, 시장에 나오기까지 다양한 분야가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한다"며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생체역학적 의미를 해석해줄 전문가는 물론, 이를 시장에 보급해줄 비즈니스 전문가까지 함께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과정에서 KIST가 종합연구기관으로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었다"며 "덧붙여 연구개발 단계와 실제 상용화 단계의 차이를 줄이기 위한 '스핀오프 컴퍼니(Spin-off Company)' 등 다양한 제도적 지원이 갖춰지면 연구의 종합적인 질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한다는 김 박사는 스포츠 산업 분야의 전망을 밝게 내다보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스포츠 산업의 연구분야를 건강 증진이나 엘리트 스포츠 등으로 한정짓지만, 실제 스포츠 분야는 더 넓고, 가능성 역시 무궁무진하다"며 "스포츠 기어를 비롯해 차세대 스포츠 시대의 모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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