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⑭]정욱철 표준연 박사 "젊은 과학은 '도전'이다"
유년기 로보트 태권V '김박사' 롤모델···30년 뒤 세계주목 성과 '톡톡'
APMP 젊은 과학자상 수상···국가 온도표준 국제적 동등성 확립 공로

정욱철 표준연 박사는 젊은 과학은 '도전'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길을 걷기에는 두려움이 따르지만, 도전정신이 앞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사진=박성민 기자>
정욱철 표준연 박사는 젊은 과학은 '도전'이라고 정의했다. 새로운 길을 걷기에는 두려움이 따르지만, 도전정신이 앞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사진=박성민 기자>
1980년대 한 국민학교 교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남자아이들이 책가방을 대충 짊어지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 아이들은 거실 TV 앞에 삼삼오오 쪼그려 앉아 '로보트 태권V' 애니메이션에 푹 빠졌다.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밀려있는 숙제마저 내일로 미뤄뒀다.

아이들은 로보트 태권V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지구를 지키던 '김박사'와 '윤박사'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모든 것을 척척 만들어 내는 애니메이션 속 박사들은 아이들에게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당시 남학생 가운데 열에 아홉은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과학자'라고 적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열에 아홉 중 한 명이었던 정욱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유년기 또래 친구들과 과학자를 꿈꿔왔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 국가 온도표준을 연구하는 막중한 임무의 연구자로 활약하고 있다.

정욱철 박사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연구'를 고집한다. 인류가 시도하지 못한, 혹은 도전하지 않았던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최근 압력 제어식 온도제어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국제표준계가 그의 성과에 주목하고 있다.    

◆ 우주에 대한 꿈에서 온도표준 과학자까지

"중·고등학생 시절 우주를 탐험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주 과학자의 꿈을 가지고 학업에 전념했죠. 대학진학 이후 우주인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죠. 하지만 우주 탐험에 필요한 기반기술은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열망의 끈을 놓지 않았죠.(웃음)"

정욱철 박사가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계기부터 온도표준 과학자로 성장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욱철 박사가 우주에 대한 꿈을 꾸게 된 계기부터 온도표준 과학자로 성장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욱철 박사는 유년시절 로보트 태권V를 보며 막연히 과학자의 꿈을 품어왔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입학하고 '우주 과학자'라는 구체적인 꿈이 생겨났다. 우연히 칼 세이건 천문학자가 저술한 '코스모스' 서적을 접하면서부터다.

서적은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인 우주가 배경이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는 내용.

인간이 추구하는 과학기술도 결국 '우주로 가겠다'는 DNA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에 청소년이었던 정 박사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책이 닳아 떨어지도록 읽고 메모했다. 흥미 있는 구절은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그러면서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커졌고 '우주 과학자'의 꿈은 확고해졌다.

정 박사는 항공기·로켓 등의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우주인의 꿈은 이루기 어렵지만, 우주탐사를 위한 기반기술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항공기·로켓에 쓰이는 열에너지 흐름 제어기술을 세부 전공하며 우주 연구에 대한 꿈을 지속해갔다.

하지만 우주 연구에 대한 열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원 졸업 이후 삼성전자에 입사하면서 우주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뒀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LED 조명의 냉각기술 관련 R&D에 매진했다. 시장에서 필요한 제품을 만들어 오며 사회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껴왔다.

대기업에 입사하고 1년 남짓. 더욱 근원적인 연구를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한국표준과학연구원으로 연구 무대를 옮겼다. 그는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하며 국민들 실생활에 도움 되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연구를 하고 싶었다"고 소회했다.

이후 표준연에서는 온도표준 관련 연구에 도전했다. 우주에서 쓰는 온도제어 기술로 온도표준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말 그대로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시도하지 못했던 연구 주제였다.

그는 "우주 물체의 온도제어 기술은 압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를 온도표준 구현에 응용할 수 있었다"라며 "우주 진출에 대한 꿈 하나로 열전달 기술을 전공했고, 온도제어 원천기술 개발까지 이어졌다. 우주에 대한 열망은 끊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세상에 나만 할 수 있는 연구···하지만 혼자는 의미 없다"

정욱철 박사는 "자신만의 연구철학으로 차별화된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욱철 박사는 "자신만의 연구철학으로 차별화된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사진=박성민 기자>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길을 가겠습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연구만 찾겠습니다.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는 주제를 바탕으로 온도표준 원천기술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겠습니다."

정욱철 박사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연구'에 집중했다. 뚝심 있는 연구철학으로 5년간의 한 우물 연구 끝에 압력조절을 통한 온도제어기술인 '압력제어식 온도제어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정 박사는 압력제어식 온도제어 원천기술을 이용해 231.982℃를 정의하는 온도 표준기인 주석의 응고점을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게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 박사는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측정표준 협력기구(APMP) 총회에서 'APMP 젊은 과학자상'도 수상했다.

독창적 온도제어 기술을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온도표준을 실현해 특허를 등록하는 등 실적을 올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 온도표준의 국제적 동등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세상에 나만 할 수 있는 연구는 존재하겠지만, 결국 과학은 혼자 할 수 없다"라며 "온도제어 원천기술을 요구하는 국가에 전파하고 있다. 국제표준의 정의로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젊은 과학은 '도전'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지구상에 유일한 연구라면, 아무도 도전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라며 "새로운 길을 걷기에는 두려움이 따르겠지만 도전정신이 앞서야 한다. 과학자의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자신에게는 충분한 기쁨을 주는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우주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된 어린 시절 꿈이 지금까지 나를 만들었다"라며 "노력 끝에 얻은 연구성과의 희열감은 어떤 것에도 비교할 수 없다. 자신만의 연구철학을 갖고 차별화된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덕넷은 젊은 과학자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추천할 젊은 과학자의 ▲이름 ▲소속(연락처 포함) ▲추천 사유를 적어 이메일(HelloDDnews@HelloDD.com)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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