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저자: 이지유·강양구·이은희·이정모·김상욱 외 5명, 출판: 바틀비

◆ 과학책에 도전할 용기를 주는 과학자들의 가이드북

저자: 이지유·강양구·이은희·이정모·김상욱 외 5명, 출판: 바틀비.<사진=YES24 제공>
저자: 이지유·강양구·이은희·이정모·김상욱 외 5명, 출판: 바틀비.<사진=YES24 제공>
과학이 교양이 된 시대. 과학자들은 어떤 과학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어나갈까? 과학 이외의 문학 작품이나 논픽션, 에세이를 읽을 때 과학자의 시선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까?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은 열 명의 과학자 및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한 해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과학과 비과학 분야의 책을 각각 한 권씩 선택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서평집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수십 년간 과학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강의해온 뛰어난 과학자들이지만 이들도 과학책을 소설책처럼 술술 읽어나가는 건 아니다.

김범준 교수는 일단 손에 잡은 책은 아무리 읽기 힘들어도 무조건 끝까지 읽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어떻게든 붙잡고 계속 읽어야만 좀 더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강환 관장은 자신 또한 다른 분야의 과학책을 읽을 때는 용어가 어렵다면서 용어에 익숙해지면 더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정모 관장은 종이 쪼가리에 간단한 계산을 하면서 양과 시간, 크기를 가늠하며 읽는다고 귀띔해준다. 이지유 작가는 과학 지식을 생산해내는 과정은 상상도 할 수 없이 고되다고 토로한다. 생산 과정이 고되다면 그 지식을 이해하는 과정 또한 고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과학책이 너무 어려워 차마 도전할 엄두를 못 냈던 사람이라면 이제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라는 가이드북을 들고 과학책 탐험을 떠나보자. 과학자가 골라낸 좋은 책을 배경지식과 함께 읽어나가면 과학책 읽기의 망설임이 한 뼘 낮아질 것이다.

◆ 우주를,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자들의 책 읽기

저자들은 과학의 역사가 끊임없이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해온 역사였다고 입을 모은다. 옛사람들은 간절히 원하면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물리적 공간에서 물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구체적으로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140~142쪽).

지동설의 발달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지구도 태양계의 일개 행성이라는 사실을, 천문학의 발달은 이 광막한 우주, 영겁의 시간 속에서 우리 인류는 좁은 공간, 찰나의 순간을 살다가 가는 존재임을 알려주었다(46쪽).

우리처럼 울고 웃던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는 게 아니라 인간은 별 먼지로 만들어진 존재에 불과하다(94쪽, 111~112쪽).

무언가를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종속영양생물인 인간에 비해 광합성을 발명해낸 식물은 위대해 보이기까지 한다(204쪽, 187쪽).

인간의 '자유의지'도 환상이자 기생생물의 조작에 불과하며 '의식'이란 정보가 어떤 복잡한 방식으로 처리될 때의 느낌에 불과할지 모른다(54쪽, 210쪽, 45쪽).
 
이렇게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는 깨달음이 있기에, 우리 인간은 소중하다는 것이 저자들의 통찰이다. 세상을 사실 그대로 보는 관점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났고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우주적 범위가 확장되었다(142쪽).

아직까지는, 우주를 이만큼이나 이해하는 종은 우리밖에 없다. 인간은 숱한 죄를 지었지만, 이를 만회할 의지와 능력과 기회를 갖고 있기도 하다(23쪽).

우리 인간이 우리 우주 안에서 특별하지 않듯이, 우리 우주가 특별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우주의 광막한 공간, 영겁의 시간 안에서 우리 인간 존재가 하나도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게 한 과거의 물리학 발전의 마지막 단계에 드디어 우리가 서 있는 것이 아닐까. 바로 우리가 위치하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우리 우주도 사실 하나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 말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있다. 특별하지 않다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나나, 내 아이나, 독자나, 우리나라나, 모두 다 하나도 특별하지 않지만 그래도 정말 소중하다. '우리' 우주도 말이다. -김범준, 47~48쪽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은 과학책을 일상어로 쉽게 풀어내면서 이 세상을 조금 더 다른, 조금 더 큰 시각에서 바라보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공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저자들은 과학책을 읽으면 과학 지식을 배울 수도 있지만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과학자들은, 따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법 등을 배우지는 않지만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교육을 받다보면 물에 닿은 종이가 서서히 젖어들어 부풀어 오르듯 그렇게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진다. 단위의 환산을 통해 실질적인 크기를 가늠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모델을 만들어 경향성을 파악하고 핵심적인 구조를 읽어내는 법을 배운다. 다양한 조건과 사례들 사이에서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 원인과 결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관적 변수를 찾아내길 원하고, 통계를 바탕으로 추산된 확률이 실질적인 환경에서 일어나는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은희, 139~140쪽

이 사고방식은 마치 숨쉬기처럼 자연스러워서, 한번 익숙해지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과학자들은 일상의 작은 사건도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이를 테면 천체물리학자 정경숙 박사는 지난여름 심한 장염에 걸렸다. 박사는 양쪽 팔에 줄과 전선을 대롱대롱 달고서는 자기 몸속에서 벌어지는 "숙주를 차지하려는 미생물 간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찰하고 "우리 몸의 70% 정도가 수분이라는 사실"을 목격하는 기회로 삼았다. 한 달 내내 항생제를 먹어 체온이 떨어지고 체력이 급격하게 방전된 상황에서도 두터운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 장내 세균과 항생제, 근육과 체온 유지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 위해 다양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208~209쪽).
 
통계물리학자인 김범준 교수는 현직 판사가 쓴 법정 소설에서도 과학을 읽어낸다. 법조계에서 말하는 '전관예우'는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늘어나는 되먹임(positive feedback)'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관예우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을수록, 전관 변호사에게 사건이 많이 몰리고, 따라서 전관은 승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을 골라 수임할 수 있다. 결과는? 당연히 전관 변호사의 승소율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더 많은 사건이 몰려 승소가 확실한 사건만 수임하니 승소율은 더 높아진다(56~57쪽).
 
문제의 본질은 법원에 대한 빈약한 신뢰인데, 자꾸 오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김범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괴물'을 없애려면 괴물이 살 수도 있어 보이는 음산하고 혼탁한 호수 물을 맑게 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면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혼탁한 호수는 햇빛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속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곤충이나 물고기도 거의 없어 오염물질을 정화할 능력이 전무하다. 일단 혼탁해지면 호수는 계속 혼탁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을 다시 맑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단 물이 맑아져 다양한 생물종이 공존하는 건강한 호수 생태계가 이루어지면, 스스로의 자정능력으로 맑은 물을 유지할 수 있다. 물을 맑고 투명하게 해 '괴물'을 추방하면, 앞으로 올 수도 있을 미래 괴물의 출현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밑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호수에 괴물이 숨을 곳은 없다(58쪽).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은 '세상은 원래 그래'라는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과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는지 진지하게 관찰해볼 계기를 제공한다.

◆ 쓰라린 상처도 같이 울면 힘이 된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다루고 있는 책 중 절반은 비과학책이다. 과학책 서평이 객관적인 '팩트'의 영역에서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면 비과학책 서평은 저자들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내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김상욱 교수는 병약한 몸, 자폐에 가까운 성격, 반복되는 실연, 치부 같은 가난, 가까운 이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 늘 울고 싶었던 유년기와 청년기의 좌절과 방황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77~84쪽).

송기원 교수는 늘 시간에 쫓기는 팍팍한 삶, 대상도 불분명한 끝도 없는 경쟁,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던 사건을 조곤조곤 이야기한다(99~101쪽).

황정아 책임연구원은 가난과 뿔뿔이 흩어진 가족, 가정폭력으로 인한 불안정한 감정의 트라우마를 언급한다(244~247쪽).

나를 포함한 빈곤층 아이들 대부분은 '회복탄력성'이 매우 낮다. 거절당하는 일에 무뎌지기가 힘이 들고, 어떤 일이든 한번 좌절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에 부친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다정한 가족들의 지지를 받고 성장한 아이들은 소소한 작은 실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담대해지기 쉽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론을 인용하자면, 나는 애초에 남들보다 한참 뒤에 있는 불공평한 출발선에 서 있었던 지독한 흙수저였던 셈이다.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내가 간절히 원했던 한 가지는 제발 출발선이라도 공정하길, 나에게 '기회의 평등함'이라도 주어지길. 그 한 가지였다. -황정아, 247쪽

여성 과학기술인이 20%도 채 안 되는 현실과 달리, 책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과학자들의 글도 마음을 울린다. 연구 분야마다 구체적인 수치는 차이가 있지만, 여성 과학자들은 조직에서 홍일점인 경우가 많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생일 때는 물론, 과학자로 우뚝 선 지금도, 일을 잘해내든 못해내든 항상 먼저 주목을 받는다. 이렇게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삶을 살아오면서 터득하게 되는 요령은 되도록 여성이라는 티를 내지 않는 것, 되도록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과학자라는 직업 자체가 이미 업무 강도가 상당한데 여성 과학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와 가사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끌어다 사용해도 일-가정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버겁기만 하고, 언제까지 이 위태로운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일상의 무거움이 짓눌러온다(234~236쪽).

저자들은 책을 통해 자신들이 맞닥뜨렸던 쓰라린 상처를 털어놓고,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보편적인 고민으로 확장해내고, 이를 다시 '과학'이라는 키워드 안으로 포섭해낸다.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세상이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니까.

<글: 출판사 제공>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