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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 가를 '대분기'···과학자 사유하며 행동해야"

인문·과학 권위자들, 6일 건명원서 모임 가져···김태유 서울대 교수 특강
4차산업혁명으로 판 깨져 '기회'···과학자 등 지식인 역할 강조
#1. 19세기 중반 일본은 요시다쇼인의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양성한 제자 90여명을 중심으로 화혼양재(和魂洋才)를 통한 근대화에 성공했다. 조선은 성균관, 향교 등 800여개의 교육 기관에서 수많은 유학자, 관료 등을 배출했으나 '위정척사(衛正斥邪)'로 대표되는 쇄국정책에 나선다. 정책적 차이로 일본은 지배(Ruler)층이 된 반면 조선은 피지배(Colony)층이 됐다.

#2. 국가 면적 약 4만 km2 의 소국인 네덜란드는 상업혁명을 통해 부유한 국가를 만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윌리엄 3세는 '명예혁명'을 통해 영국 국왕에 즉위했다. 이는 영국 의회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됐다. 훗날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전세계 문화, 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세계를 제패한 패권 국가들은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변환하는 시대흐름에서 변화를 통해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를 만들어냈고, 이는 현재까지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적 격차를 만드는 요소가 됐다. 

지난 6일 건명원서 열린 모임에서 인문·과학 분야 권위자들은 최근 4차산업혁명을 통해 기존 판이 깨지는 새로운 '대분기'가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과학자 등 지식인들이 함께 토론하고 사유하며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함께 했다. 

이날 모임에는 ▲김태유 서울대 교수 ▲문승현 GIST 총장 ▲박문호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대표 ▲오세정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오충근 예술감독 ▲이석봉 대덕넷 대표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정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 ▲최진석 건명원 원장(이상 이름순) 등이 참여했다.
 
건명원서 모임을 가진 인문·과학 권위자들의 모습.(왼쪽부터)오충근 예술감독, 문승현 GIST 총장, 오세정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최진석 건명원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 박문호 박자세 대표, <사진=대덕넷>건명원서 모임을 가진 인문·과학 권위자들의 모습.(왼쪽부터)오충근 예술감독, 문승현 GIST 총장, 오세정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최진석 건명원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 박문호 박자세 대표, <사진=대덕넷>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 아냐···"우리 스스로 사유하며 '답' 만들어야"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등 국가의 무능으로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우금치 전투를 살펴봐도 일본군은 무라타 소총과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했던 반면 조선은 화승총, 죽창을 보유했습니다. 유효사거리, 재장전 시간 등을 비교할 수 없이 격차가 커서 많은 백성들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했을까요? "
 
이날 모임에서 특강을 진행한 김태유 교수는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며 과학자 등 지식인들의 변화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저서 '패권의 비밀'을 기반으로 영국 등이 산업혁명을 통해 전세계를 주도하게 된 과정과 원동력을 설명했다. 또 이를 통해 한국이 해야 할 역할과 자세에 대한 화두를 제시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통해 1960년대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발전한 것은 처방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기존의 진단과 처방의 약효가 떨어져 이제는 '신약'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이 '2차 대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기회라고 분석했다. 이를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성공한 나라 또는 실패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가 지위나 경제적 격차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농업경제에서 '1차 대분기'를 통해 산업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4차산업혁명을 통해 지식경제 사회로의 '2차 대분기'가 올 수 있다.<자료=김태유 서울대 교수 제공>농업경제에서 '1차 대분기'를 통해 산업경제 시대가 도래했다. 4차산업혁명을 통해 지식경제 사회로의 '2차 대분기'가 올 수 있다.<자료=김태유 서울대 교수 제공>
하지만 '대분기'를 이끌 산업혁명은 누군가 만들어주거나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장에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며, 기존에 하던 일을 잘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독일 '철혈정책', 일본 '메이지 유신', 대만 '국민당 정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대국이었던 스페인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귀족들의 신분을 박탈했다. 반면 영국은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엘리트 계층이 상공업에 진출했는데 이는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국가 정책적 접근도 필요한 요소다. 전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디지털전환(Digital transformation), 인더스트리4.0(Industry 4.0), 소사이어티 5.0(Society 5.0) 등의 용어로 국가 정책적으로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나서고 있다.

김 교수는 ▲공무원을 전문가로 육성 ▲젊은 인재를 4차 산업혁명 전문가로 육성 ▲북극항로 개척 등 국가의 정책적 대응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 섬나라 영국도 할 수 있었다. 한국도 4차 산업혁명을 통해 변화할 능력을 충분히 갖췄다"면서 "2차 대분기는 경제·사회 격차를 해소할 기회이며, 우리 스스로가 기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방법을 찾으며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래는 특강 후, 토론 내용 중 일부 발췌.
최진석 건명원장: 한국인은 '탁월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왜 더 나아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일반인들은 리더, 과학자를 비롯한 지식인층 등 우월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또 폭력, 성장, 적극성을 부정적인 요소로 인식한다.

우리 사회 기풍이 문약하다. 지식인들도 모험을 하거나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지식을 수입만 하고, 생산하지 못한다. 이러한 풍조는 국가 발전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진입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생각과도 직결된다.

오세정 국회의원: 기존 엘리트 층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해 온 것에 대한 부정적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정치 측면에서도 한계를 많이 느낀다.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중요해지면서 국가는 후순위에 밀리는 경향이 있다.

오충근 예술감독: 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젊은 사람들은 교수보다는 연주에 나서야 하고, 50대에서 교수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에 맞춰 인재를 활용해야 한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결단 지능이 높은 노년층은 공무원 등으로 활용하고, 유동지능이 높은 젊은이들은 4차 산업혁명 현장에 투입하는 등 인재 재배치도 고려돼야 한다.

최진석 건명원장: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잘살아 보세'라는 철학이 있었다. 아젠다가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데 현재는 아젠다 없이 과제(project) 이야기만 한다. 국가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패권의 비밀'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김태유 서울대 교수가 '패권의 비밀'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박문호 박자세 대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신약'이 무엇인가. 우리는 개별 지식이 없어 의견만 많다. 인문학적 사실은 경험적 사실인 반면 자연과학은 감각 차원을 넘은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자연과학적 지식이 낮은데 이를 확충하며 '신약'을 찾아야 한다.

문승현 GIST 총장: 도전정신은 학생, 지식인 모두에게 없다. 우리는 결핍이 없는 사회다. 인위적인 결핍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결핍을 통해 도전정신을 갖게 하는 교육도 요구된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기존 산업혁명을 '북극성'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산업혁명은 '은하수'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기간 산업을 통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하나에만 매달려서는 성공할 수 없다. '뿌리'부터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최진석 건명원장: 패러다임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행운이 찾아왔다. 판이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도전한다면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 방법으로는 안된다. '은유'와 '연결'이 앞으로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결핍이나 고통도 수반돼야 한다. 학교 제도권에서 운동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인간은 결핍이 있을 때 자아발견, 자기확인이 가능하다. 운동을 통해 갖춰진 내면이 점점 부족해지는 것이 안타깝다.  

과거 네덜란드는 유대인을 받아들이며, 국가 단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연결을 했다. 개개인의 결핍을 유지하면서 호국 지성을 양성해야 한다.

박문호 박자세 대표: 인간 경험뿐만 아니라 자연·생명현상에서 답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산업혁명 등을 인간사회 측면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외형을 넓혀 인간 외 행성지구 측면에서 바라보며 생물학적 진화 등을 탐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충근 예술감독: 예술계에서는 클래식 음악보다 'KPOP'에 젊은이들이 몰린다. 거기에 답이 있다. 젊은이들이 4차 산업혁명 현장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해야 한다.

오세정 국회의원: 인센티브와 같은 유인만으로는 쉽지 않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욕망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도전정신으로 벤처에 뛰어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등 기성세대의 역할도 필요하다.  

최진석 건명원장: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들이 사회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삼고 해결하려는 동기와 의지도 절실히 요구된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 벤처 정책이 성공하려면 국가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의사, 공무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벤처에 뛰어들어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국가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존 대기업을 활용해 벤처 사관학교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현재 한국이 역사적으로 가장 부강한 상황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요소다. 

특강후에는 토론이 진행됐다.<사진=강민구 기자>특강후에는 토론이 진행됐다.<사진=강민구 기자>
 
한편, 인문·과학 대가들의 모임은 지난 3월 1일 처음 시작됐다.(기사링크) 다음 모임은 5월 17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의 최인아 책방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의 '한국의 하나의 철학이다' 서적을 함께 학습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은 일본인의 입장에서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와 '기(氣)'로 한국 사회의 심리를 분석했다. 조선시대 유학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진석 건명원장은 "급변하는 시기에 지식인들이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가를 반성하면서 일본 근대문화를 연 요시다쇼인 그룹 같은 지식인층이 한국에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면서 "지식인들이 분석, 비판, 평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방법을 통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도 '살롱(Salon)'이나 '루나소사이어티(Lunar Society)'와 같은 모임이 있어야 한다"면서 "지식인들이 함께 토론하고 사유하면서 국가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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