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 ⑱]학연생으로 신약 첫 발 황종연 화학연 박사
'단백질분해제' 개발 도전···"밤 잠 설치게 만든 연구 만났다"

 

자신의 실험대 앞에 서있는 황종연 박사. 황 박사는 "갈수록 관리 역할이 많아지고 있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필드에서 직접 실험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가 합성한 약물들이 실험대 위에 놓여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사진=한효정 기자>
자신의 실험대 앞에 서있는 황종연 박사. 황 박사는 "갈수록 관리 역할이 많아지고 있지만, 시간이 될 때마다 필드에서 직접 실험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가 합성한 약물들이 실험대 위에 놓여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사진=한효정 기자>
"졸업 후 어떤 대학원을 가야 할까?" 많은 이공계 졸업반 대학생들이 하는 고민이다. 18년 전, 26살 황종연 박사도 같은 고민을 했다.
 
그는 여러 화학분야 중 '신약'으로 목표를 좁혔다. 신약개발이 뭔지 잘 몰랐지만, 멋진 것 같다는 막연한 환상이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1년간 연구실에서 약물합성을 해본 경험도 그의 선택에 힘을 실어줬다.
 
목표를 세우고 그가 택한 길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대학교가 아닌 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는 '학생연구원(학연생)' 되기로 했다. 당시 학연생 프로그램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편견도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반 대학원 진학 대신, '우연히' 알게 된 한국화학연구원 학연생을 '과감히' 선택했다. 신약 연구를 제대로 배우려면 연구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06년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떠났던 황 박사는 정확히 7년만에 화학연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학생이 아닌 선임연구원이 되어 신개념 약물치료제 연구에 앞장서고 있다.
 
◆ 신약 트렌드 도전하며 기초 닦다
 
황 박사의 연구는 '화합물 라이브러리 만들기'에서 출발한다. 그 당시 다양한 약물 후보 물질을 합성하는 '조합화학'이 이슈였다. 그는 "이 때 1년에 1000개씩 무려 4000개 이상 화합물을 합성했다"며 "돌이켜보면 내 연구는 항상 트렌드를 따라갔다"고 회상했다.
 
트렌드 연구는 박사후과정 길에 오르면서도 이어졌다. 이번엔 '화학생물학'이었다. 화학생물학은 2000년대 중반 떠오른 화학과 생물학을 합친 새로운 학문이다. 황 박사는 세인트주드소아연구병원(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 연구실에 들어가 4년 반 동안 약물 합성·평가 연구에 집중했다.
 
위기도 있었다. 다른 연구자들이 하지 않는 '화학생물' 분야에서, 그것도 의약화학 영역에서 논문을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가 첫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2년 이상 걸렸다. 실적이 없으니 국내 취업은 꿈도 못 꿨다. 그는 "건물 9층에 올라 미시시피 강을 바라보며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바로 기업에 입사할 걸,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 이러고 있나'라며 나에게 하소연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때 그의 멘토 공영대 화학연 박사(현 동국대 교수)가 멀리서 그를 응원했다. "귀국에 서두르지 마라. 기회는 반드시 온다. 항상 준비 잘하고 있어라." 공 박사에게 받은 이메일에는 늘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황 박사는 잔소리처럼 이 말을 들으며 스승의 말대로 노력했다.
 
그러다 때를 만나 한국에 돌아왔고 국내 연구소 취직에서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다. 

◆다시 화학연··· 신개념 약물치료제 '단백질분해유도제' 도전
 

왼쪽은 하재두 화학연 의약바이오연구본부 박사. 화학연 정식 연구원이 되고 나서 만난 황 박사의 멘토다. 황 박사는 "하 박사님은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권위적이지 않으셔서 대화가 잘 통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왼쪽은 하재두 화학연 의약바이오연구본부 박사. 화학연 정식 연구원이 되고 나서 만난 황 박사의 멘토다. 황 박사는 "하 박사님은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젊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고 권위적이지 않으셔서 대화가 잘 통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났을 때, 황 박사는 가슴 뛰는 연구를 만났다. 시작은 이메일 한 통이었다.
 
"요새 이런 연구가 있다고 하네요?" 당시 전 의약바이오연구본부장이자 황 박사의 또 다른 운명의 멘토 하재두 박사가 팀원들에게 논문 링크를 공유했다. 2015년 미국에서 발표된 신개념 약물치료제 기술 '프로탁(PROteolysis TARgeting Chimeras)'을 동물 실험에서 증명한 첫 논문이었다.
 
프로탁은 공개되자마자 신약계의 '금광'에 비유되며 글로벌 제약계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기존 약이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 기능을 '억제'하는 반면, 이 기술을 적용한 약은 아예 단백질을 세포에서 분해해 '제거'할 수 있다.

새로운 개념이 이해가 안됐던 황 박사는 무심코 논문을 넘겼다. 그러다 며칠 뒤 잠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논문을 다시 보던 그는 잠이 확 달아났다.
 
"논문을 읽고 심장이 뛰었다.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하는 논문은 처음이었다. 정말 좋은 연구였다. 이 기술을 우리 팀이 해오던 항암제(저해제) 연구에 빨리 적용해보고 싶어 잠을 설쳤다."
 
황 박사는 다음날부터 직접 화합물을 합성해 두 달 만에 이 연구를 해도 되겠다는 검증을 마쳤다. 그는 "당시 프로탁은 국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는데 우리 팀이 진가를 알아보고 처음으로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연구팀은 프로탁 원리를 이용해 독자적으로 '단백질분해유도제'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 3년차에 접어든 현재, 연구팀의 성과를 알아본 국내외 제약사들이 연구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 중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관심을 가진 제약사 한 곳과 곧 공동연구가 시작된다. 

석사 2년차 때 화학연 실험실에서. <사진=황종연 박사>
석사 2년차 때 화학연 실험실에서. <사진=황종연 박사>
 
◆연구에 '억지'는 없다··· 논문 찾고 소통할 때 행복
 
황 박사는 "단백질분해유도제 연구는 멘토가 우연히 던진 논문에서 잡은 새로운 기회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우연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는 SNS 단체 채팅방에서 가장 '말이 많다'고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료와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황 박사는 "토요일 오전, 학원에 간 딸아이를 카페에서 기다리며 논문을 찾아보고 공유하고 소통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황 박사의 연구철학은 즐겁게 연구하기. 슬럼프나 스트레스도 별 일 아닌 듯 넘어간다. 그는 "대학원 시절, 연구실 확장 공사를 하는 와중에도 늦게까지 실험을 했는데 힘들지만 그게 좋았다"며 "절대로 억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늘 신뢰를 받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연구를 즐기다보니 독특한 습관도 생겼다. 그는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불 꺼진 실험실 불을 켜고 들어오고 불 켜진 실험실 불을 끄고 나가는 순간이 좋다"며 멋쩍게 웃었다.
 
황 박사 역시 다른 신약 연구자처럼 자신이 개발한 물질이 약이 되는 날을 꿈꾼다. 그는 "여전히 신약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신약이 가진 매력"이라고 말했다.
 
"신약 하나만 바라보고 노력했더니 마치 계획된 것처럼 지금까지 오게 됐다. 어디를 가든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단, 즐겁게 하자는 것이 내 신념이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도전한다. 젊은 과학자니까."

'젊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학연생과 화학연 입사라는 두 번의 기회를 잡았는데, 연구자로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은 더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며 '기회'라고 답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젊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지금까지 학연생과 화학연 입사라는 두 번의 기회를 잡았는데, 연구자로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한 번은 더 기회가 오지 않을까?"라며 '기회'라고 답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 황종연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화학연에서 서강대학교 학연생으로 5년 동안 석사-박사과정을 거쳤다. 졸업 후 미국 세인트주드소아연구병원(St. Jude Children's research hospital)에서 화학생물학을,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2년 동안 감염증 치료제를 연구했다. 2013년 화학연 의약바이오연구본부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 차세대의약연구센터에서 단백질분해유도제 연구 과제 실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덕넷은 젊은 과학자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추천할 젊은 과학자의 ▲이름 ▲소속(연락처 포함) ▲추천 사유를 적어 이메일(HelloDDnews@HelloDD.com)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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