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최재혁 표준연 역학표준센터장
올 11월 새로운 국제단위계 재정의 결의, 내년 5월부터 적용
보다 더 정밀한 측정 가능···첨단 산업계와 과학계 발전에 기여, 일상 생활엔 지장없어

최재혁 역학표준센터장은 "이번 국제단위계 재정의는 일상 생활엔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정밀한 측정을 요하는 첨단 과학산업계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사진=조은정 기자>
최재혁 역학표준센터장은 "이번 국제단위계 재정의는 일상 생활엔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정밀한 측정을 요하는 첨단 과학산업계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사진=조은정 기자>
"올해는 측정과학계에 역사적인 해입니다. 질량, 전류, 온도, 물질의 양 등 관련 4개 측정 단위가 한꺼번에 개정되거든요. 킬로그램은 무려 130년 만에 대변신을 예고하고 있을 정도죠. 단위 기준이 바뀐다는 것은 측정의 오차를 줄여 더 정밀한 측정을 가능하게 하죠. 정확함을 추구하는 과학자에게는 설렘 그 자체죠."
 
국제단위계 재정의를 앞둔 가운데 측정 전문 과학자가 바라본 단위 재정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최재혁 표준연 역학표준센터장은 "이번 단위 재정위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 표준, 명확한 정의이다. 원자와 전자 수준까지 적용이 가능하므로 극한 영역의 정밀측정을 구현해 첨단 과학산업계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제단위계는 1960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공식 채택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이번처럼 4개의 단위가 한꺼번에 재정의 된 사례는 없었다.
 
오는 11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는 질량의 기준인 킬로그램(kg), 전류의 암페어(A), 온도의 켈빈(K), 물질의 양인 몰(mol) 등 4개의 새로운 국제단위가 재정의 된다. 바뀐 정의는 내년 5월 20일 '세계 측정의 날'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그동안 일부 단위는 특정 물질의 성질이나 물리적 인공물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물의 삼중점으로 정의된 온도 단위인 켈빈은 물의 성분에 따라 바뀌는 약점이 있었어요. 백금과 이리듐 합금으로 만든 원기둥 모양의 국제킬로그램원기가 1 킬로그램의 기준이었죠. 하지만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변하지 않는 것은 없었습니다."
 
최 센터장에 따르면 인공물로 된 원기는 주변 환경에 따라 미세하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국제킬로그램원기는 제작 후 120여 년 동안 약 50 ㎍(마이크로그램) 정도 변했다.
 

그는 "단위 재정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변하지 않는 숫자를 단위의 기준으로 삼아 보다 더 정확하게 단위를 정의할 수 있다. 이는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 "일상에 지장 없지만, 첨단 과학산업계에는 긍정적 영향 끼쳐"

"그럼 내 몸무게도 변하는 건가요?"
"돼지고기 그램 수도 바뀌나요? 더 먹을 수 있어요?"
"앞으로 과학 교과서는 어떻게 바뀌나요? 시험 공부도 다시 해야 해요?"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고 있는 킬로그램, 암페어 등 단위가 바뀐다고 해도 위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최재혁 센터장은 "단위는 일상에서 몸무게 등 측정값 차이를 인식할 수 없는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재정의된다. 안심해도 된다"고 못박았다.
 
예를 들어 킬로그램 단위를 재정의 할 때 현재의 킬로그램 원기가 받는 중력과 똑같은 양의 전자기력을 발생시킨다. 사용자들과 기존 실험에 혼란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연속성'을 유지한 단위 재정의가 이뤄진다.
 
보다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해진 만큼 최고의 측정 정확도를 필요로 하는 연구개발실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기대된다. 바로 마이크로그램 혹은 나노그램 수준까지의 측정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가 해당한다.
 
최 센터장은 "단위의 재정의는 첨단 과학기술계와 산업계, 의료계 등 여러 영역에서 측정의 최소부터 최대 범위까지 매우 정밀한 수준에서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며 “극한 분야나 나노 세계에서 더 정확한 측정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아주 작은 질량의 변화 측정은 개인 맞춤형 투약이 늘어남에 따라 투약 용량을 더 정확하게 측정하고 투여할 수 있어 제약 산업계 발전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켈빈 단위 재정의는 기후변화를 모니터링하고 예측하는 분야에 혜택을 줄 수 있다. 더 높은 정확도로 아주 작은 온도 변화까지도 장기간에 걸쳐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최 센터장은 “화학이나 신소재 분야에서도 물질을 혼합할 때 보다 정밀한 농도로 실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단위 재정의가 곧바로 일상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측정과학의 발전은 결국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고 피력했다.

단위 재정의, 표준연 역할은 이제 시작

바뀐 국제단위계 정의는 내년 5월 20일 '세계측정의 날'부터 적용된다. <자료=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바뀐 국제단위계 정의는 내년 5월 20일 '세계측정의 날'부터 적용된다. <자료=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최재혁 역학표준센터장은 "이번 국제단위계 재정의는 일상 생활엔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정밀한 측정을 요하는 첨단 과학산업계에 혜택을 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표준연은 전 세계 국가측정표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단위 재정의에 기여를 해왔다.
 

표준연은 온도 단위인 켈빈 재정의의 발목을 잡았던 볼츠만 상수의 국제적 불일치 문제를 해결한 바 있다. 또 단전자 펌프를 이용해 암페어 단위 재정의에 기초한 전류 표준기를 개발하며, 전류 단위인 암페어 재정의에 대비하고 있다.
 

킬로그램 재정의와 관련해서는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있다. 킬로그램 재정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미국,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등 5개국 국가측정표준기관들과의 협업을 통해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동안 각 나라의 국가표준기관들은 자국의 킬로그램 원기를 국제킬로그램원기와 비교하기 위해 프랑스 국제도량형국에 정기적으로 보내야만 했다.
 

최 센터장은 "질량 단위가 재정의된다면 '키블저울을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로 구분될 것"이라며 "표준연이 키블저울을 완성한다면 앞으로 주변 국가들에게 질량의 1차 표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키블저울을 개발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과 중국이 있다. 그는 "기술력이 부족한 주변국들에게 표준연이 '물리상수와 표준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 남과 북 표준 과학을 교류하는데 있어서도 키블 저울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최 센터장은 "국제단위계가 재정의됐다고 해서 표준연의 역할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새로운 국제단위 표준 체계를 산업계에 보급하고, 그 혜택이 산업, 과학, 의료계에 파급돼 결국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게 하는 것이 표준연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표준연은 세계 측정의 날 을 맞아 지난 17일 ‘국제단위계, 그 멈추지 않는 진화 (Constant evolution of the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를 주제로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특히 올해 국제단위계 재정의가 의결되는 해인만큼, 측정 기술 관련 전문가와 기업인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 [알찬 과학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과 대덕넷이 공동으로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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