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지병으로 별세 22일 발인···95년부터 LG 수장, 그룹 이끌어
장기 R&D 지원, 인재사랑 '주목'···과학기술인도 추모 물결

"R&D는 LG가 일등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의 원천입니다. 날로 격화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선진 기업의 파상 공세와 후발 기업의 맹렬한 추격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은 R&D에 있습니다."(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개발성과보고회' 2008년 3월 12일) 

"단기간에 사업화될 제품을 위한 R&D뿐 아니라, 5, 10년 뒤를 내다보고 핵심·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장기 R&D활동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LG 경쟁력의 근간인 R&D 활동에 과감하고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연구개발성과보고회 2011년 3월 16일)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의 발인이 22일 오전 차분하게 가족장으로 진행됐다. 소탈했던 고인의 연구개발(R&D) 중심 경영과 인재경영이 오늘날 LG 성장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재조명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그의 장기적인 R&D 투자와 혜안에 존경을 표하며 추모하는 분위기다.

1995년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구 회장은 지속적인 R&D 투자로 신산업 육성, 원천기술 개발 등으로 미래를 준비하며 LG그룹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일궈냈다. 특히 구 회장은 10년 이상 배터리 분야 R&D에 투자하며  최고 기술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故 구 회장의 뚝심 있는 R&D 지원은 과학기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기인들은 "고인의 연구개발 의지와 집념, 열정, 인재경영은 산학연 등 과기계 모두에게 본보기가 된다"고 말했다.

'LG 테크노 컨퍼런스'를 찾은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의 모습.<사진=LG 그룹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LG 테크노 컨퍼런스'를 찾은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의 모습.<사진=LG 그룹 구본무 회장 홈페이지>
◆10년 이상 R&D 투자, 인재 양성···글로벌 LG 도약 기틀 마련

"주력사업 및 성장사업 성과와 연결되는 연구개발을 통해 R&D의 생산성을 높이고, 핵심·원천 기술 개발로 R&D가 미래 준비의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사업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맞추어 도전적인 연구개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반드시 성과로 연결 시켜야 합니다."(연구개발성과보고회 2017년 3월 8일)

故 구본무 회장의 연구개발 철학은 독보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을 점령한 LG 배터리 개발 과정에서 그대로 엿볼 수 있다.

1992년 영국 출장에서 이차전지의 가능성을 확인한 故 구 회장. 구 회장의 제안으로 1995년 본격 이차전지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배터리 기술 선두주자였던 일본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 양산에 성공한 노트북용 배터리가 리콜조치를 받으며 회사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적자 규모도 2000억원에 달했다.

급기야 임원진에서도 이차전지 연구개발을 중단하자며 투자를 반대했다. 구 회장은 미래 먹거리라는 확신 아래 임원 한명 한명을 설득하고 연구원 전원을 해외여행을 보내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이차전지 분야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2009년 유수 자동차 기업에서 배터리 공급을 요청해 왔다. LG 화학은 중대형 이차전지분야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당시 회사 관계자는 "이차전지 개발시기 두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구 회장이 뚝심 있게 투자하고 기다려주며 밀어줬다"면서 "리더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속해 지원하고 연구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기에 가능했다"며 리더의 연구개발 철학 중요성을 강조했다. 

R&D 중심경영은 구인회 LG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까지 핵심 키워드였다. 故 구 회장은 와병 중에도 연구개발 분야을 챙긴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4월 뇌종양이 발견되고 몇 차례의 수술을 받는 중에도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혁신을 주문했다.

"LG의 미래는 R&D에 달려 있다고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앞으로도 R&D에 대한 투자는 한층 강화하여 연구원들이 맘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테크노 컨퍼런스 2012년 4월 25일)
 
R&D 인력에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특히 부친인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각별한 '과학사랑'과 '인재보국'을 실천한 것으로 알려진다.  LG의 R&D투자와 연구인력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2013년 5조8000억원 연구인력 3만명, 2017년 6조 9000억원 연구인력 3만4000여명으로 증가 추세다. 

고인은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의존할 것은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을 이루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인재 경영에도 주력했다.

특히 LG 계열사가 집결해 인재들이 함께 교류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마곡 'LG 사이언스파크' 조성에도 힘을 쏟았다. LG 그룹이 지난 2014년부터 약 4년 동안 4조원을 투자해 조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고인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갑수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LG전자 등의 재무지표를 살펴보면 전문경영인 체제와 달리 고인이 경영에 나설 때 연구개발 투자액이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라면서 "고인의 연구개발 투자와 집념은 대덕특구에도 귀감이 된다"라고 말했다.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이공계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사진=LG 공식 블로그>
故 구본무 LG 그룹 회장은 이공계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사진=LG 공식 블로그>
◆대덕人들도 애도 물결···"정도경영, R&D 투자 귀감"

대덕의 과학기술인들도 고인에 대한 애도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LG화학연구원 출신 기업인들은 고인의 정도 경영, R&D 중심 경영이 기업을 경영하는데 큰 귀감이 됐다고 전했다.

김영덕 더웨이브톡 대표는 "IMF 외환위기 당시 리튬이온전지 양산화 파일롯 개발 성공에 기뻐하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연구원들의 해외 여행 공약을 지킨 고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라면서 "어려운 경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R&D 철학을 바탕으로 그룹을 이끄는 수장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유진산 파멥신 대표는 "LG는 리베이트 등이 없어 매출액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는 힘든 시기였지만 상도를 지키는 '정도 경영'으로 장기적으로 바른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업가가 되어 돌아보니 이 부분이 '눈물겨운 경영 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LG 출신 기업인들이 창업 후에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바른 길을 가야한다는 원칙과 사람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인본주의' 경영의 영향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매년 1번 대덕의 연구원을 찾을 때만 멀리서 뵈었지만 바른 경영의 중요성과 연구개발을 소홀히 하지 많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라면서 "첫 경영을 어른에게 배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故 구본무 회장은 지난 20일 9시 52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평소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장례 절차도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장으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유해는 화장 후 수목장으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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