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 고교생'의 유도무기 최고 연구자 변신 뒤에는?

[과학 청년, 부탁해 ⑳]홍윤기 ADD 박사
KAIST 대학원 석·박사 스승 '박철 교수' 연구자 모델 ·인생 선배로
선친의 지지·고교 담임의 코멘트·대학 은사의 신뢰 성장 계기
홍윤기 ADD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담아 '젊은 과학은 포기를 모른다'로 적었다. 사진은 ADD 문화관 내부.<사진=길애경 기자>홍윤기 ADD 박사는 포기하지 않았던 자신의 경험을 담아 '젊은 과학은 포기를 모른다'로 적었다. 사진은 ADD 문화관 내부.<사진=길애경 기자>

우리는 삶에서 터닝포인트(전환기)를 경험한다. 사람이나 사건, 사고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부모와 스승의 가르침, 선배와의 만남은 인생항로를 바꾸기도 한다.

올해 KAIST 조정훈 학술상을 받은 홍윤기 ADD(국방과학연구소) 박사. 국방과학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기까지 고교, 대학, 대학원마다 그를 신뢰해준 스승이 함께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늘 친구처럼 지지해준 아버지(지난해 작고)의 영향으로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다며 감사해 했다.

홍 박사가 받은 KAIST 조정훈 학술상은 2003년 5월 KAIST 로켓실험실에서 연구를 수행하던 중 사고로 숨진 故 조정훈 명예박사를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조 명예박사의 부친인 조동길 공주대학교 교수가 유족보상금과 사재를 합쳐 KAIST에 학술기금으로 기부한 4억7800만원을 기반으로 제정됐다.

조정훈 학술상은 매년 항공우주공학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업적을 이룬 젊은 과학자를 발굴해 시상한다.

홍 박사는 기술 수입이 불가능한 극초음속 비행체의 내열 구조와 추진기관 시험평가를 위한 지상시험장치 핵심구성품인 공기가열장치의 독자적인 설계와 해석 연구를 수행했다.

특히 동료들과 협업으로 기술 선진국만 보유한 공기가열장치 개발과 운용성능을 입증하며 공로를 인정 받았다.

홍 박사에게 조정훈 학술상은 의미가 남다르다. 그 역시 사고 당시 대학원 새내기로 같은 건물에서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KAIST 항공우주공학 전공 석사 과정에 입학했던  그는 같은 건물 다른 랩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실험 중 잠시 나와 있던 순간, 사고가 나면서 과정을 그대로 목격했다. 그 역시 한동안 길거리의 가스통만 봐도 가슴이 덜컥하며 무서워했던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연구성과를 인정 받았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이 상을 받으면서 '사람'의 중요성을 더욱 알게됐다. 그리고 항상 자신은 물론 팀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소감을 대신해 말했다.

◆스승이면서 인생 멘토로, KAIST 대학원 '박철 교수님'

홍 박사는 연구분야를 찾기까지 부모, 스승의 지지와 믿음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사진=길애경 기자>홍 박사는 연구분야를 찾기까지 부모, 스승의 지지와 믿음으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사진=길애경 기자>
홍 박사는 ADD에서 추진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비행기나 발사체 등에 꼭 필요한 기술이지만 해외에서 기술을 공개하지 않아 자체 개발해야 한다.

그가 지금의 분야를 가야할 길로 정한데는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박철 前 KAIST 초빙교수'의 영향이 컸다. 박 교수는 홍 박사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다.

"항공우주공학 전공이지만 물리적인 면까지 깊이있고 디테일하게 학문적으로 들어가며 연결되는 고리를 보여주셨어요. 교수님 수업을 통해 작은것부터 줄줄이 이어지며 명확해지고 큰 시스템을 볼 수 있게 되었죠. 어릴때는 막연하게 비행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구체화 됐어요."

박철 교수는 국내외서 항공우주분야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수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를 시작해 아폴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30여년의 연구활동 이후 일본 도호쿠대, 독일 슈투트가르트대, 미국 메사추세츠공대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2003년 KAIST 초빙교수(2016년 퇴임)로 부임했다.

홍 박사는 "교수님 연구실이 2층이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유일하게 불이켜진 방으로 유명했을정도로 연구 열정이 대단하셨다"면서 "주말에도 제자들과 같이 하실 정도로 항상 제자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시면서 경험을 공유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는 이어 "당시 70에 가까운 연세였는데 매일 수영으로 건강관리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스승이면서 연구자로서 역할을 보여 주셨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오랜기간 연구자로 선진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를 심어주었다. 그러면서 '항상 공부하고 배울 것'을 강조했다. 매주 오픈 세미나를 열어 각자 연구하는 분야를 설명하며 협력하는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장치개발 시작했지만 거듭된 실패, 연구철학 '포기하지 말자'

"교수님은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으셨어요. 반복되는 실패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한만큼 받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죠. 결혼식 주례사에서도 '공부하고 배우라'고 말씀하셨어요. 살면서 항상 실천하려고 노력중이고요.(웃음)"

그는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추진관련 장치개발을 해보기로 한다. 장치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거듭된 실패에 포기할까 생각도 하고 집에 가는 버스안에서 혼자 울기(?)도 했단다.

홍 박사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시작을 했다.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안일함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교수님에게 안되는것 말씀드렸는데 답을 이야기 해주시지 않았다. 1년정도 지나서 스스로 잘못을 알게되면서 포기하지 말자라는 나름의 연구철학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장치 개발을 위해 팀원간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다. 의견을 맞춰가는 과정은 그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혼자보다 팀이 협력할 때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 사전에 공부하며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함도 경험했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는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나 ADD 등 한정적이었다. 박사를 마치고 독일로 박사후 연구원을 다녀왔지만 그를 오라는 곳은 없었다.

"배고픈 시기였어요.(웃음)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 대신 일자리를 찾아 가고 싶지 않았어요. 아마 결혼한 상태라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어요.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꼭 하고 싶은 분야였던 ADD로 오게됐죠."

ADD에서도 그가 꼭 실천하는 일이 있다. 사전 준비와 오픈마인드로 팀과의 협력, 정리하는 일이다.
그런 노력덕분인지 연구소에 입소해 여러 시험장치를 개발에 성공했다. 몇몇 성과는 체계 개발에 적용돼 맡은 바 임무를 수행 중이다.

홍 박사는 "입소 초기 대기중에 존재하는 입자로 인해 비행체가 받는 영향력을 실험하기 위해 물과 얼음을 마하 3~4의 속도로 발사해 침식현상을 연구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현재 잘 적용되고 있어 보람이 크다"면서 "지금은 공기가열기를 개발하고 있는데 성공적으로 점화돼 불을 내뿜는 모습을 보던 순간 느꼈던 희열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픈하고 여럿이 논의해야 창의적으로 할수 있다는 사실을 교수님의 수업속에서 경험하고 연구소에서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면서 "정리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지식이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유행따라 하기보다 남들이 해보지 않은 연구 하고싶어"

홍윤기 박사는 우리나라 전반에 젊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사진=길애경> 홍윤기 박사는 우리나라 전반에 젊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사진=길애경>

그는 중학교 3학년때까지 사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보다 놀기 좋아한 남학생이었다. 당시 왜소한 체격의 그에게 부모는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수학과 물리가 좋아 과고를 가고 싶다고 하니 그제야 학원에 보내셨는데 너무 늦게 준비해 떨어지고 일반고에 갔어요. 고교시기에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야간자습 시간에 농구, 야구보러 다니고 땡땡이를 밥먹듯 치면서 담임선생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는 "고3때 담임선생님이 '너 정말 이렇게하면 안된다'며 심각하게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학교 성적은 그래도 상위권을 유지해 대학에 갈수 있었다"면서 "대학에 가서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니 교수님이 믿어주시며 실험실에 소개해 주셨다. 부모님과 선생님, 교수님의 믿음으로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어디가던, 무엇을 하던지 항상 친구처럼 믿어주셔서 큰 힘이 되었고 연구분야에서는 고집을 갖게 해준 바탕이 됐는데 지금은 안계셔서 허전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담담하게 고백했다.

끝으로 그는 젊은 과학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담아 '포기를 모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과기정책적으로 젊은 연구자를 위한 창의적인 연구, 도전적인 연구 환경이 마련되길 기대했다.

"대학원 시기 HRHR(high risk, high return)프로그램이 있었어요. ADD도 최근 도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예산이 확보된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도가 높은 분야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없는 분위기인게 사실이에요. 유행따라 연구하지 않고 로드맵을 통해 젊은 연구자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덕넷은 젊은 과학자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추천할 젊은 과학자의 ▲이름 ▲소속(연락처 포함) ▲추천 사유를 적어 이메일(HelloDDnews@HelloDD.com)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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