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 ㉑]박정훈 UNIST 생명공학과 교수
살아있는 뇌 관찰하는 광학 현미경 기술 개발···"파인만 저서 읽으며 물리학자 꿈꿔"

 연구 열정은 나이와는 무관한 것 같다는 박 교수는 젊은 과학을 묻는 질문에 "즐거운 도전"이라 답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연구 열정은 나이와는 무관한 것 같다는 박 교수는 젊은 과학을 묻는 질문에 "즐거운 도전"이라 답하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박은희 기자>
기상천외한 생각으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웃겼던 파인만은 어린 시절부터 유별난 아이였다. 자신만의 실험실을 꾸며 라디오를 분해하다 '생각으로 라디오를 고치는 소년'이라 불렸으며, 한꺼번에 접시를 나르는 방법을 개발해 실행해 옮기다 접시를 깨뜨려 야단을 맞기도 했다.

완두콩을 쉽게 자를 수 있는 장치를 만들다 손이 베이기도 했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수학공식을 풀어내 영특함을 인정받기도 했다. 양자전기역할 이론을 정립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다. 엉뚱함이 가득했던 파인만의 이야기는 '파인만 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호기심 가득한 파인만에 빠져 "나도 물리학자가 될 거야"를 외쳤던 한 소년은 파인만 씨와 약속이라도 한 듯 응용 물리학자가 됐다. 박정훈 UNIST 생명공학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파인만 씨는 항상 질문을 하고 말을 안 들었어요. 농담도 잘하고요.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했어요. 파인만 학자를 보며 이런 게 물리학이구나, 나도 물리학자가 돼 볼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박 교수의 사뭇 진지한 모습에 파인만 과학자와 안 닮은 거 아니냐고 물으니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것,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것은 닮은 것 같다"며 웃어 보인다.  
◆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연구가 즐겁다" 

빛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박 교수. 빛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빛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는 연구를 진행 중인 박 교수. 빛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은희 기자>
대학에 입학하면 놀아도 되는 줄 알았다는 박 교수는 군대 가기 전까지 학점이 2점대였다며 부끄러워했다. 학교를 다니며 막연하게 물리학자 꿈을 키웠고, 제대 후 제대로(?) 공부해 KAIST에서 물리학과 석·박사를 마쳤다.  

"평생 뭘 해서 먹고 살까 보다는 '이거 하면 재미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재미가 있으면 어려워도 하게 됐던 것 같고요. 연구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어요. 누가 했던 걸 하는 건 큰 의미가 없잖아요. 미지의 세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즐거움. 재미있지 않나요?"

그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찾는 즐거움이 '빛(광자)'에 있다. 박 교수가 개발한 '광학 현미경 기술'은 살아있는 뇌 속 깊숙이 분포돼 있는 신경세포를 정확히 초점을 맞춰 관찰할 수 있다. 

그는 멩 쿠이 미국 퍼듀대 교수팀과 공동으로 '다개구 보정과 공학 현미경'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넓은 영역의 생체조직 내부를 광학 현미경으로 실시간 관찰이 가능하다. 가령 살아있는 쥐의 뇌 속 신경세포와 혈관 등 생체 내부 깊숙한 곳을 고해상도로 확인할 수 있다. 

"논문을 살피다 재미있는 연구라 생각해 해당 교수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연락을 드렸죠. 이후 2년 동안 미국서 포닥을 했어요. 뇌연구 바이오 이미징에 대한 연구가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고 경험할 수 있었죠. 일반적으로 물리학은 기초학문이라 여겨지는데 그곳에서는 기초부터 응용 연구까지 모두 활발히 진행할 수 있었어요."

연구성과는 귀국 후 UNIST로 자리를 옮기고서야 최종 발표됐다. 박 교수는 "연구 대부분이 미국에서 이뤄졌지만 마무리는 대학에서 하게 됐다"며 "뇌 활동을 이해하려면 넓은 영역에 분포된 뇌세포 사이에서 역동적인 연결 관계를 직접 봐야 한다. 이번 기술로 뇌뿐 아니라 살아있는 생체조직 깊숙이 살아있는 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고해상도로 실시간 관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빛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와 같다. "빛을 정확히 다룰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연구가 무궁무진해요. 그게 빛의 매력이죠. 우리가 원하는 정보만을 효과적으로 뽑는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빛을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어야 가능한 연구죠."

"빛으로 모든 걸 보는 게 목표"라는 박 교수는 최근 빛을 활용한 비밀암호 연구도 진행 중이다. 가짜 영상 속에 진짜 내용을 숨겨 전달하는 연구로, 보내고 싶은 정보를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  
박 교수는 "3D 극장에서는 영사기 두 대를 통해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살짝 어긋한 영상이지만 특수 안경으로 보면 입체감 있게 볼 수 있다"며 "지금 연구 중인 비밀암호는 하나의 영사기에서 4개의 이미지가 나오게 된다. 이를 잘 조합하면 비밀암호와 같은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과학자의 자세?···"열정과 도전, 권위는 내려놓고"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형원, 황병재, 우태성 박사, 박정훈 교수, 정세진 대학원생. 교수와 제자 사이지만 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박은희 기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진형원, 황병재, 우태성 박사, 박정훈 교수, 정세진 대학원생. 교수와 제자 사이지만 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박은희 기자>
박 교수에게 과학자로 롤 모델을 물었다. 망설임 없이 지도교수였던 박용근 KAIST 교수를 꼽았다. 사실 박 교수는 박용근 교수가 추천한 젊은과학자이기도 하다. 

박 교수는 "박용근 교수님의 연구 열정, 성실함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기초부터 응용연구까지 도전적인 연구에 대한 성과를 내고 있지만 권위는 찾아 볼 수도 없다"며 "질문이나 의견은 언제나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니 학생들도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3년차 교수인 만큼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로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요즘 많이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대학원 시기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연구실 모든 졸업생들이 먼 미래에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대학원 생활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연구실 문화를 이끌어내고 싶어요."

포닥 생활 중에 지켜봤던 에릭 베치그(Eric Betzig) 과학자도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는 초고해상도 형광 현미경을 개발해 세포를 분자 수준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공로가 인정돼 201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박 교수는 "그는 물리학자였으나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노벨 화학상을 받고도 자기 자신은 화학을 전혀 모른다고(웃음) 말씀 하신 솔직한 분이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도 연구에 대한 열정은 20대 대학원생 보다 훨씬 크다"며 "명예와 지위를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연구에 매진하셨고, 도전을 일삼는 모습이 멋지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연구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며 젊은 과학자를 묻는 질문에도 "젊은 과학과 늙은(?) 과학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하며 "(젊은 과학은) 즐거운 도전"이라고 썼다.

그는 "앞으로 5년은 어떤 연구를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있다. 10년 후 연구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연구를 안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도 지금 생각한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면 문제를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거나 그동안 안주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가 생각한다"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살고 싶다"고 피력했다. 

인터뷰 말미 박 교수는 파인만 씨를 통해 물리학자를 꿈꿨듯 과학자를 희망하는 꿈나무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너무 구체적인 분야를 정해서 달려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세부적인 연구 분야를 그때 알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본인 스스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인생의 여러 갈림길마다 본인의 가치를 나침반 삼아 선택을 한다면 후회없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어느 분야를 선택하건 연구에는 정해진 끝이 없어요. 스스로 그 끝을 정하고 하는 거죠." 

◆ 박정훈 교수는 

2009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물리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미국 HHMI Janelia 연구소와 Purdue 대학에서 2년 동안 포닥으로 비침습적 뇌 이미징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현재 UNIST 생명공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광학 분야 연구를 활발히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덕넷은 젊은 과학자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추천할 젊은 과학자의 ▲이름 ▲소속(연락처 포함) ▲추천 사유를 적어 이메일(HelloDDnews@HelloDD.com)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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