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청년, 부탁해 ㉒]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각종 사회경험 쌓아···'운칠기삼, 무위자연' 철학 의미 강조

높을 최(崔). 높을 고(高). 어조사 야(也). 한글과 한자 뜻 모두 최고라는 의미다. 부친은 아들 둘의 이름을 '최고야', '최대한'이라고 지었다. 아들들은 자신의 이름에 만족해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 사람들은 '깔깔' 웃으며 즐거워했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 덕분에 쉽게 잊혀지지 않으며 이후 네트워크로 이어졌다.

한의학연의 '만능재주꾼' 최고야 박사. 그는 원내에서도 본초학(本草學)에 정통한 전문가로 꼽힌다. 본초학은 질병 치료에 쓰이는 식물계·동물계·광물계에서 얻은 한의학약 물질을 총합해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최 박사는 대형 과제의 연구책임자를 맡아 누구보다 분주하다. 그러면서도 과학대중화 활동을 적극 수행하며 한의학과 본초학의 가치를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며 연구자로서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무협지를 좋아했던 소년은 자신의 꿈을 쫓아 한의대에 진학했다. 이후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분야를 찾아 연구하고,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수행하며 내성적인 성격도 극복해 나갔다. 

그래서인지 그는 젊은 과학을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는 의미의 '학이시습((學而時習)'이라고 적었다. 최 박사의 철학 중 하나는 '운칠기삼(運七技三)'. 삶에서 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삶의 여정을 듣다보면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약표준표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고야 한의학연 박사.<사진=강민구 기자>
한약표준표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최고야 한의학연 박사.<사진=강민구 기자>
◆ 무협지 보며 '한의학' 연구자 꿈 키워···남들 안하는 것 찾아 본초학 전공

"중학교 시기 퇴마록부터 시작해 대도무문까지 무협지를 즐겨 읽었어요. 도서대여점에서 빌린 책을 며칠에 걸쳐 정독했죠. 당시 PC 통신에 접속해 사람들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수능 전날에도 긴장감을 풀기 위해 무협지를 읽었습니다.(웃음)"

한의학연 카페 한켠의 책장은 무협지, 만화책 등 최고야 박사가 가져다 놓은 책들로 가득하다. 최 박사는 학창시절 무협지를 보며 한의학 연구자로서 꿈을 키웠다. 책 속 '기', '경락' 등의 내용을 흥미롭게 생각했다.

문과 출신인 최 박사는 수학 보다 한문, 역사 등의 과목을 잘했다. 서예가였던 큰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문은 익숙했다. 고등학교 때 한문 교사로부터 동양철학의 정수가 주역에 들어있다고 듣고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이를 찾아서 읽을 정도였다. 무협지와 한문을 잘했던 배경으로 그는 진로를 한의예과로 선택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각종 동호회, 취미 활동에 참여했다. 드라마 동호회부터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노래방 동호회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노래방 동호회에서는 사람들과 만나 5시간 이상(?)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또 디지털 카메라를 90년대 후반에 구입해 등산하며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은 최 박사가 다소 내성적이었던 성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최 박사는 가능한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한의예과 졸업 당시 최 박사는 여느 동기들처럼 한의사 개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을 매일 만나는 것보다 수입이 적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연구를 하기를 희망했다. 석사학위 전공과목 선택도 마찬가지다. 동기가 경혈학 분야를 선택하자 본초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남들이 하지 않고, 당장 인기 없는 분야가 언젠가 빛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가 가고자하는 분야를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지도교수이자 멘토인 주영승 교수의 영향이 컸다. 주 교수는 30여년간 매일 5시에 기상해서 1시간씩 운동하는 등 규칙적인 삶으로 최 박사를 비롯해 학생들에게 귀감이 됐다.

본초학은 대중에게는 쉽지 않은 개념이다. 약초가 보다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본초학에는 한방에서 활용되는 각종 약용 자원이 포함돼 있다. 한약재를 감별하는 일이 한자를 잘 알고 좋아했던 최 박사에게는 좋은 선택이 됐다.

본초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직후 최 박사는 한의학연 전문연구요원을 거쳐 한의학연에 입사했다. 이후 동물실험을 보조하며 한약재 항염증 효과 연구, 노화 억제 소재 개발, 한약품질검사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최 박사는 한약표준표본관에서 표본을 제작하면서 본인의 전공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가 관련 연구를 맡는데는 희소성이 있는 본초학을 전공했다는 점이 반영됐다.

이에 최 박사는 한의학 꿈나무들의 진로 질문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당장 금전적인 보상이 적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길이 열릴 수 있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인재를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본초학 전문가가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원만한 길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라면서 "최근에는 대형 과제 연구책임자를 맡고, 해당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과학은 '학이시습((學而時習)'"<사진=강민구 기자>
"젊은 과학은 '학이시습((學而時習)'"<사진=강민구 기자>
◆ 연구 '무위자연'으로···하고 싶은 일 하다보면 성과 나와

최 박사의 연구 방식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어떤 일의 성패는 지시나 강요가 아니라 자율성과 책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실제 과제 수행도 마찬가지다. 최 박사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연구진들이 스스로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연구 주제 선택도 마찬가지다. 최 박사는 '마인드맵' 방식으로 연구한다. 생각의 흐름을 쫓아 연구를 수행하다보면 처음에는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언젠가 수행했던 연구가 필히 연결되어 활용될 수 있게 된다. 

신진 연구자로서 그는 생각의 폭을 넓히기에 집중한다. 그는 "신진연구자는 연구과제를 제안하고, 이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에 성취감을 얻는다"면서 "연구자의 상황상 하고 싶은 연구보다 상관관계가 없는 연구를 해야 할 경우도 존재한다.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고 생각의 폭의 확장시키는 방식이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를 하면서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생기면 뚝딱 만들어낸다. 독학으로 터득한 수준급의 프로그래밍 기술이 뒷받침돼 있다. 주변 한의원에서 공동탕전실 홈페이지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한약기원사전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연구자들이 야외에서 식물을 채집하고 수첩에 적는 과정인 야장을 개선해 채집 순간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표본정보공유시스템도 만들었다.

앱으로 한약표준표본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앱으로 한약표준표본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한약 표본정보공유시스템.<사진=강민구 기자>
한약 표본정보공유시스템.<사진=강민구 기자>
최 박사는 소통 의지도 확고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본초탐사대, 한의학 아카데미 등 과학대중화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한의학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또 수행하고 있는 과제 소속 한의사들을 일일히 찾아가며 한의학연을 알리고, 대화와 토론의 자리도 만들고 있다.

그는 "출연연 연구자라면 국민에게 기여해야 한다"면서 "스스로 한글 논문 작성만을 고집하는데 연구자들만이 검색하는 논문이 아니라 한의학을 직접 경험하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의학이 대중에게 더 밀접히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 박사의 앞으로의 목표는 문헌, 도표 등의 한약 정보를 수집, 정리해 디지털 데이터로 구축하는 것. 최근 남북 화해 분위기에 맞춰 언젠가 북한 약용자원도 확인하고 싶다는 원대한 꿈도 갖고 있다.

그는 "국내 약용 자원을 정리하는 작업하고 있다"면서 "송, 당나라 등 본초 원전을 볼 수 있는 전공자가 드문데 지식정보를 정리하는 한편 약재 감별 기준 등을 데이터로 구축해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가까운 미래에 기회가 된다면 북한지역의 약용자원을 연구하고 싶다"면서 "북한에는 수만종의 토착 생물자원이 있어 학계의 가치도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고야 한의학연 선임연구원은
전남 해남 출생이다. 우석대 한의예과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문연구요원을 거쳐 한의학연에 입사했다. 현재 전공한 본초학을 바탕으로 한약표준표본 연구, 한약재 감별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젊은 과학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젊은 과학자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속속 진입하며 자유로운 사고와 도전적인 마인드로 대한민국의 남다른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대덕넷은 어려운 연구 환경 속에서도 뜨거운 연구 열정을 펼쳐가는 과학 청년 50명을 발굴해 인터뷰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대덕넷은 '과학 청년 부탁해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구성원은 과학기술계 산·학·연·관 전문가 10여명입니다. 전문가분들께 과학자 50명 선정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과 조언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덕넷은 젊은 과학자 추천을 받고 있습니다. 추천할 젊은 과학자의 ▲이름 ▲소속(연락처 포함) ▲추천 사유를 적어 이메일(HelloDDnews@HelloDD.com)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집자의 편지]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