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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편입 안하냐고? KAIST서 받은 혜택 나라·사회로"

글: 정성준 KAIST 학부생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읽고
"개별연구, 의대 편입 공부 대신 베트남서 열대종 다양성 실습"
정성준 KAIST 학생은 열대종 다양성 실습을 위해 베트남 학생들과 정글에서 곤충을 채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사진 오른쪽이 정 군.<사진=정성준 학생>정성준 KAIST 학생은 열대종 다양성 실습을 위해 베트남 학생들과 정글에서 곤충을 채집하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다. 사진 오른쪽이 정 군.<사진=정성준 학생>

열대우림 지역 베트남 해발 950m 고산지대. 여름 방학을 맞아 친구들은 인턴을 가거나 개별 연구, 의대와 약대 편입 시험으로 분주할때 베트남으로 날아왔다.

기말고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하노이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열대종 다양성 실습(Tropical Biodiversity)'에 꼭 참석하기 위해서다. 베트남의 열대 우림에서 일주일간 곤충, 파충류, 양서류 등을 직접 채집하고 분류하는 실습을 진행한다. KAIST 생명과학과와 연계해 우리학교 학생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중간중간 강의도 있지만, 직접 필드에 나가 식생을 분석하고, 조사하는게 대부분이다.

방금 전만 해도 정글 속 개울에서 거머리를 떨쳐가며 곤충들을 잡아왔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학생은 한 명도 없고, 다들 진지하고 밝은 표정으로 채집에 임한다. KAIST에서는 나를 포함한 두 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하노이 대학의 생물학과 200여명의 학생 중,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반에 배정됐다. 베트남 학생들과 베트남 교수님의 지도아래 생태 실습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명과학 분야 중에서도 분류학과 생태학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싶기 때문에 이 실습은 꼭 참여하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열대종 다양성 실습은 기말고사 일정과 겹쳐있었다. 꼭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에 베트남 Nguyen 교수님과 학과 교수님에게 사정을 설명드렸다. 다행히 교수님의 배려로 기말고사도 미리 보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하루하루 일정은 정말 힘들긴 하다. 하지만 미래 연구 분야를 현장에서 경험할 수 있어 마냥 기쁘고, 재미있기만 하다. 

주위 사람들은 나와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어떤 친구들은 "야, 그 시간에 전공 책이나 더 읽고, 시간 나면 의대 준비나 하지, 뭣 하려고 답도 없는 분류학 같은 걸 하고 있냐"고 말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맞는 말이다. '전화기(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아니면 굶어 죽는다는 말은 꽤 오래 전부터 있었고, 생명과학과 학생들의 상위 절반은 의대로 편입하는 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과학 하는 학생들은 '페퍼로니 피자만도 못하다'는 표현도 있는데, 페퍼로니 피자는 4인 가족을 부양할 수 있지만, 자연 과학자들은 나중에 4인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굳은 의지로 순수 과학분야에 몸담은 사람들에게는 김이 빠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단순히 개인의 성공과 영달을 위한 삶이라면, 취업 잘 되고, 돈 잘 버는 분야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KAIST 학생들이다. 미래의 공학자를 꿈꾸며 이 학교에 들어왔고, 앞으로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입학한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대학원은 단순히 병역 면제의 수단이 아닌, 연구를 통한 진리 탐구와, 우수한 과학기술로 국가의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다.

몇 십 년 전, 과학의 불모지를 개척한 우리 선배 과학자들 덕분에 우리는 국가의 전략적 자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서 편하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강원도 정선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때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고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에 입학했다. 나라의 지원을 받으며 우수한 교육을 받았고, 해외 연수와 다양한 연구 체험의 기회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나라에서 대통령과학장학금을 받으며 KAIST에서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KAIST에 온 학생들은 정말 많을 것이다. 우리가 이런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계기는 무엇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에 의해 국토는 피폐해졌고, 왕조는 무너져서 국민과 국토를 수호할 수 없었다. 일제의 지배와 탄압이 겹치면서 국민들의 긍지는 아예 바닥나 버렸다.

선배 과학자들이 과학으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생각에 해외에서 힘겹게 공부한 뒤,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국가의 발전과 재건을 위해 연구에 집중했다.

선배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택한 연구는 산업 발전과 연관된 공학 분야였다. 자동차의 엔진을 만들고, 원자로를 만드는 일, 제철소를 설계하고 철을 생산하는 일 등 직접적으로 산업을 일으키고 국가를 부흥시키는 분야에 집중했다.

KIST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의 취지도 이와 비슷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연구가 짧은 시간에 명확한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 연구에 집중됐다. KIST가 설립된 직후에 이휘소 박사가 최형섭 소장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아직은 기초과학분야에 많은 연구비를 많이 줄 수 없으니, 자리를 잡으면 그 때 영입하겠다는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아쉽긴 하지만 당시에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국가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종합연구소로서, 이미 알려진 기초 과학지식을 응용한 연구를 진행해 빠른 성과를 내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연구한 기초과학을 응용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원천 기술을 외국에서 가져와서는 안된다. 기초과학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원천기술이 될 수 있는 분야를 더 연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지원도 당연 필요하겠지만, 이공계에 몸담을 우리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초과학이 아주 중요하다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지금까지 기초과학은 배고픈 학문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이제는 기초과학이 뒷받침되는 공학적 응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과학입국 기술자립'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과학으로 나라를 세우고, 기술으로 자립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술 자립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발견한 기초과학적 원리에서, 새로운 응용분야를 발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반도체 제조 기술은 재료공학과 물리학, 화학의 발전을 통해 더 성능 좋은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 아주 기초적인 분야일수록 오히려 활용 범위가 더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연과학의 소중함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 과제 수주시에도, 우리가 기초과학을 통해서도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스스로 홍보해야 한다.

선배 과학자들이 공학과 연구를 통해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듯이, 우리도 기초과학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 스스로도 가치가 높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KAIST 학생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투자를 받아가며 공부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과학고등학교를 거쳐 KAIST로 이어지는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비 없이, 적은 기숙사비와 생활비만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과 공학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선배 과학자들이 국가의 과학 발전을 위해 마련한 기틀이 있었기에 가능해졌다.

따라서, 개인의 성공을 위해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국가와 사회에 환원하려는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페퍼로니 피자'라는 농담을 듣지만, 우리의 목표는 4인 가족이 아닌 4000만 인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두들 의대를 준비할 때 내가 의대 준비 대신 베트남에서 열대 곤충을 분류하는 이유가 아닐까. 

최형섭 소장의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 회고록을 통해 과학인들이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의 경쟁력을 끌어올린 사례나, 전쟁에서의 기술 우위가 승전의 요인이 된 사례 등. 나 역시 진정으로 나라와 사회에 봉사하고 싶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던 선배 공학자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불이 꺼지지 않는 KAIST의 연구실을 보면서 나도 하루 빨리 연구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태학과 분류학이 지금 당장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생태학을 통해서 인간과 자연이 더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고, 분류학 연구를 통해 새로운 생물 자원을 찾아낼 수 도 있다. 앞으로도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가장 다양한 응용을 이끌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다. 

끝으로 자연과학을 하는 학생들이 서로 소통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이 살기 어려운 시기라고 해도 서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정글로 곤충 채집을 떠나는 모습.<사진=정성준 학생>정글로 곤충 채집을 떠나는 모습.<사진=정성준 학생>

베트남 학생들과 곤충 채집 후 단체사진.<사진=정성준 학생>베트남 학생들과 곤충 채집 후 단체사진.<사진=정성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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