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GIST 연구팀, 광학 이론 확장해 '수중 투명망토' 가능성 보여
최원재 표준연 박사 "음향 연구하다 기초연구 도전···재미와 보람 느껴"

최원재 표준연 박사는 안전측정센터에서 초음파 등을 이용한 '비파괴 평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최원재 표준연 박사는 안전측정센터에서 초음파 등을 이용한 '비파괴 평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2000년대 후반,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투명망토 기술이 현실에 처음으로 등장하자 과학계의 관심이 '메타물질'로 쏠렸다.
 
메타물질은 기존에 알려진 특성을 초월하거나 반하는 특성을 보이는 구조를 가진 물질이다. 빛의 굴절을 극단적으로 제어하는 구조를 한 투명망토가 대표적인 예다. 
 
최원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박상열) 안전측정센터 박사도 메타물질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연구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가 연구하는 '음파'와 투명망토를 다루는 '광학'은 다른 영역으로 연구대상으로 삼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머릿속 연구과제로만 남겨 둘 수 없었던 최 박사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 2년 연구 끝에 물속에서 소리를 반사하지 않고 그대로 투과시키는 '굴절률이 0인 메타물질 구조'를 밝혀냈다. 쉽게 말해 물속에서 음파탐지를 피해 사물을 숨길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찾아냈다.
 
최 박사는 "측정기술을 연구하는 안전측정센터에서 메타물질 연구는 유별나지만, 그동안 해오던 연구에 다른 분야를 연결해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했더니 전에 없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 '생각 뒤집기'로 난제 풀다
 
연구팀은 용접에 사용하는 구리막대 여러 개를 잘라서 실험에 사용했다. 수학 계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음파 굴절률을 0으로 만드는 구리막대 배치 구조를 찾아냈다. <사진=한효정 기자>
연구팀은 용접에 사용하는 구리막대 여러 개를 잘라서 실험에 사용했다. 수학 계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음파 굴절률을 0으로 만드는 구리막대 배치 구조를 찾아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번 연구는 음향 분야에 적용된 광학 이론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이를 위해 최 박사는 광학 공부는 물론이고, 실험에 앞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광학 관련 가설에 따르면, 굴절률이 0이 되는 음향을 구현하려면 물속에 있는 물질이 '물'보다 소리 전달속도가 느려야 한다. 그러나 물보다 소리를 느리게 전달하는 공기를 넣는 작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렸다. 최 박사는 "지금까지 나온 가설과 반대로, 소리를 빠르게 전달하는 '단단한' 물질을 선택했다"며 "굉장히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실험에 사용한 물질은 용접에 사용하는 구리막대. 여러 구리막대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음파가 통과될지 튕길지가 결정된다.
 
연구팀은 굴절률이 0(영)이 되는 구조를 찾기 위해 수학 계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거쳤고 수중실험까지 성공했다. 구리로 만든 메타물질이 평면파를 받았을 때 파동을 반사하지 않고, 물질 끝단에서 똑같은 모양의 평면파를 내보냈다.
 
실험에 성공한 것은 기뻤지만, '왜 느린 물질이 아닌 빠른 물질인 구리로 실험에 성공했는지'가 의문이었다. 처음에 연구팀은 결과를 이론에 억지로 맞추려고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간 끝에 찾은 결론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최 박사는 "두 이론은 접점이 있었고 느린 물질과 빠른 물질 모두 제로 굴절률을 만들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히 가능한 일인데, 기존 이론에 갇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구리를 택한 것도 구리로 실험에 성공한 원인을 증명하는 일도 '생각 뒤집기' 덕분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 전공 분야 아니지만···시뮬레이션과 실험 '협업'으로 성공
 
최 박사가 전공이 아닌 분야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GIST 연구팀과의 대화였다. 그는 "2016년 왕세명 GIST 교수팀과 이야기를 나누다 두 기관이 역할을 나누면 메타물질 연구를 추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팀을 꾸렸다"고 회상했다.

그동안 최 박사는 메타물질과 같은 기초기술이 아닌, 산업에서 사용할 실용기술에 주력해왔다. 그는 2014년부터 표준연 안전측정센터에서 초음파 등을 이용해 시설물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내부 결함을 측정하는 '비파괴 평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최 박사와 함께 현재엽 표준연 의료융합센터 박사(당시 GIST 박사과정생)가 연구를 기획하고 이끌었다. 현 박사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최적화 설계를, 최 박사를 포함한 표준연 연구팀(박춘수·김미소 박사)은 실험과 메타물질 구현을 맡았다. 
 
최 박사는 "대학 연구팀은 시뮬레이션 위주로 연구를 해와서 실제 수중실험에 대해 부족한 점이 있었고, 표준연은 그 반대였다"며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실험결과를 논의하면서 혼자 생각하지 못했던 결론에 도달한 점이 의미 있다"고 밝혔다.

(왼쪽부터)이번 연구를 이끈 최원재 박사와 현재엽 박사가 구리막대를 배치한 구조물을 물속에 넣고 수중실험을 하는 모습. 구조물은 평면파를 받았을 때 파동을 반사하지 않고, 물질 끝단에서 똑같은 모양의 평면파를 내보냈다. <사진=표준연 제공>
(왼쪽부터)이번 연구를 이끈 최원재 박사와 현재엽 박사가 구리막대를 배치한 구조물을 물속에 넣고 수중실험을 하는 모습. 구조물은 평면파를 받았을 때 파동을 반사하지 않고, 물질 끝단에서 똑같은 모양의 평면파를 내보냈다. <사진=표준연 제공>
 
◆ 메타물질로 파동 모아 '전기' 만드는 기술 연구 중
 
최 박사는 이번 성과를 에너지 하베스팅(energy harvesting)에 적용할 계획이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진동 등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기술이다. 

그는 "메타물질 끝단 구조를 오목렌즈로 변형하면 파동이 에너지 하베스터에 모인다. 이 기술은 전기뿐만 아니라 에너지를 모으는 다양한 곳에 사용될 수 있다"며 "현재 물질 끝단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지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이 만든 메타물질 구조는 평면파발생기(plane wave generator)로도 활용될 수 있다. 평면파발생기는 음향 센서를 정확히 평가할 때 사용된다. 최 박사는 "연구자가 이 물질을 사용하면, 먼 거리에 파동 생성 장치를 여러 대 설치하지 않고도 완벽한 평면파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직 이 물질을 투명잠수함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메타물질 안에 물체를 위치시켜 실험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최 박사는 "처음 도전하는 연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결과가 좋게 나와 뿌듯하고 연구 과정도 즐거웠다"며 "오랜 시간이 지나야 연구가 실현되겠지만, 미래에 도움이 될 기초 연구를 할 수 있어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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