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호 박사, 양자 현상 이용한 나노 소자로 미세 힘 측정
전자 상태 측정하는 '위상 큐비트' 연구 돌입

왼쪽은 서준호 박사가 최근 실험에 사용한 나노역학 소자다. 소자의 칩 가운데(검정부분)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구조는 오른쪽과 같다. <사진=서준호 박사 제공>
왼쪽은 서준호 박사가 최근 실험에 사용한 나노역학 소자다. 소자의 칩 가운데(검정부분)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구조는 오른쪽과 같다. <사진=서준호 박사 제공>
서준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 박사가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칩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칩 중심에는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수백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크기의 나노역학 소자(素子)가 붙어있다.

동물 세포보다 1000분의 1 정도 작은 이 소자는 양자역학 현상을 이용해 미세한 힘을 측정하는 센서다.
 
서 박사는 2004년부터 10년간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나노역학 소자를 연구했다. 표준연에서 나노역학 소자 연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구원에 지원해, 2014년부터 이 분야 기반을 다지는 데 함께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나노역학 소자 연구가 활발했지만, 국내에서는 드물었다. 나노역학 소자가 무엇이고 왜 연구가 필요한지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필요했다.

서 박사는 "지난 4년 동안 연구를 알리고 협업 기회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제 적어도 표준연에서는 나노역학 소자를 실험할 기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연구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늘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에 서 박사 연구팀은 지난 4월 '2018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에 선정, '양자 전자역학시스템 기반 마요라나 큐비트 인터페이스 연구'에 돌입했다.

서준호 박사가 나노역학 소자를 실험하는 극저온 장비 옆에 섰다. 눈에 안 보이는 소자를 측정하는 장비는 실험실 절반을 차지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서준호 박사가 나노역학 소자를 실험하는 극저온 장비 옆에 섰다. 눈에 안 보이는 소자를 측정하는 장비는 실험실 절반을 차지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 "더 정확한 측정하려면 양자역학 개념 필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물체도 원자 수준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움직인다. 이 현상이 양자역학 효과 중 하나인 '영점운동'이다. 나노 역학 소자가 움직이는 한계는 원자핵 크기인 10-17 m 정도다. 

서 박사는 "모든 세상은 원자로 구성됐기 때문에 물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측정하려면 양자역학 한계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며 "나노역학 소자에 작은 힘이 가해졌을 때 소자가 진동하는 움직임을 측정해 힘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 박사의 연구는 나노역학 소자를 만들어 양자역학 효과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영점운동 한계를 넘어 더 정확한 측정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만든 소자에서 미시 세계인 양자역학 현상을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 연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서 박사는 고진공·극저온 환경을 만드는 장비에 소자를 연결해 실험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서 박사는 고진공·극저온 환경을 만드는 장비에 소자를 연결해 실험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나노역학 소자는 양자역학 효과가 나타나도록 작고 빠르게 진동하는 형태로 설계된다. 설계된 모양을 전자빔으로 깎는 식각공정을 거치면 소자가 완성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전기 신호를 통해 소자에 가해진 힘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은 절대 영도에 가까운 영하 약 273℃와 고진공 상태에서 진행된다.
 
나노역학 소자는 힘뿐만 아니라 질량과 가속도 등 다른 물리량도 측정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큐비트 인터페이스 연구에서는 '정보'를 측정한다.
 
서 박사는 "칠판과 분필이 없으면 글씨를 못 쓰듯이 정보도 부호화(인코딩)하는 물질과 이를 읽고 쓰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며 "이 연구에서는 양자현상을 나타내는 나노역학 소자가 이 도구에 해당한다"고 소개했다.
  
이 나노역학 소자 근처에는 '큐비트'라는 다른 소자가 자리 잡고 있다. 큐비트에 있는 전자의 상태가 곧 양자역학적 정보를 담는다. 큐비트 전자의 상태에 따라 두 소자 사이 힘이 변하고 이 힘을 측정해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는 한 논문의 가설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서 박사는 가설이 실현 가능한지 확인하고 어떻게 소자를 만들지 연구한다.
 
그는 "양자 정보처럼 측정·제어하기 어려운 것을 나노역학 소자 기술로 해결하는 사례를 찾을 때 보람을 느낀다"며 "이 기술을 적용할 흥미로운 활용처를 계속 발굴할 것"이라고 밝혔다.

◆ "양자 나노역학 소자, 미래 활용 가능성 충분"
 
"할 때마다 성공하는 실험은 남이 한 실험의 반복에 불과합니다. 미래를 위한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해야죠. 양자 기술을 측정 과학에 적용해 10년 뒤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요."

현재 마이크로 역학 소자(MEMS)는 스마트폰 가속도 센서로 쓰인다. 더 작은 나노 역학 소자를 응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서 박사가 만든 소자도 기초 단계로 당장 사용되기 어렵지만, 서 박사는 기술의 가치를 믿고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양자역학을 적용한 소자가 유용한 성질을 보이면, 미래에 활용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나노역학 소자와 현재 널리 쓰이는 전자 소자가 여러 기술을 공유한다는 점도 활용 가능성에 힘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서 박사는 이번 연구에 협업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처럼 규모가 크고 새로운 연구는 혼자서 할 수 없다"며 "여러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며 창의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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