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분석 데이터 찾는다···연구·밤샘도 즐겁게"

[과학 청년 부탁해 ㉜] 장재혁 기초지원연 전자현미경연구부 박사
"군에서 사회 배우고 미국 랩에서 자유로운 연구문화 익혀"
"논문보다 자신의 연구무기를, 대기업 혜택 뱉어내고 출연연으로"
난이도로 악명높았던 1997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전의 모 고등학교에서 전교 20등 정도 성적을 유지했던 그는 인서울(서울 주요대학에 입학)이 목표였다.

수능 당일, 평소보다 떨리고 긴장됐다. 수험생에게 인기였던 OO청심환을 챙겨오지 못한 일이 후회되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받아든 수능성적표는 참담했다. 스스로 실망감도 컸다.

암담한 성적표에 '재수하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친의 반대로 이야기도 꺼내지 못했다. 어디라도 대학에 가야했다. 점수에 따라 선택된 곳은 대전산업대(현재 한밭대학교). 학과는 그래도 관심을 뒀던 재료공학과로 정했다.

장재혁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연구부 선임연구원. 유치원생부터 2살까지 고만고만 세아이의 아빠로, 연구원으로 힘들법도 하지만 그는 늘 유쾌하게 일한다. 좌절을 경험했을거라고 짐작이 안될 정도로 일을 즐긴다.

하지만 20여년전 그의 대학생활은 방황으로 시작됐다. 학교에 빠지는 날도 많았다. 그나마 낙이라면 컴퓨터 동아리에서 프로그램을 배우는 일. 1년의 방황 후 남자 대학생들이 수순처럼 받아들였던 병역의무를 위해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 전 '한글 600타 이상' 훈련병을 뽑았다. 그는 600타 이상인지 재본적 없지만 앞뒤 재지 않고 컴퓨터를 했다는 자신감에 손을 번쩍 들었다. 장재혁 선임연구원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주도적인 삶의 첫발을 내딛은 순간이다.

장재혁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그의 인생 모토는 삶도 연구도 즐겁게. 대기업의 많은 혜택을 뱉어내고 세상에 없는 분석결과 연구를 위해 2016년 출연연으로 옮겼다.<사진=길애경 기자>  장재혁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그의 인생 모토는 삶도 연구도 즐겁게. 대기업의 많은 혜택을 뱉어내고 세상에 없는 분석결과 연구를 위해 2016년 출연연으로 옮겼다.<사진=길애경 기자>

◆군에서 배운 사회, 비행기표만 사서 호주로

"군에서 별 두개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를 알게됐어요. 영어공부의 필요성도 느꼈고요. 제대 후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모아 호주행 비행기표만 구입해 떠났지요."

장재혁 박사는 군 생활 중에 사회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배치 받아 가니 내무실 평균 연령이 26세로 석사생들이 대부분이었다"면서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간 나로서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게됐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제대 후 영어 학원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호주행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3개월간 현지 회화학원에 다니면서 일자리를 찾았다. 다행히 한국인이 사장으로 있는 사무실 밀집지역 푸트코트 주방에 일자리를 얻었다. 점심시간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줄서기 고객을 상대하며 현장 영어는 급속도로 늘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놀랐어요. 샌드위치바였는데 12시만되면 줄이 어마어마했어요. 한국에서는 거의 보지 못한 풍경이라 문화적 충격도 컸지요. 그들을 상대하다보니 영어 실력이 빠르게 늘고 단골도 생기고 재미있었어요."

◆대학원 진학으로 본격 학습, 연구는 작사작곡 "재미있었다"

"복학 후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재료공학을 하면서 재료자체보다 전자현미경을 통한 재료 분석에 흥미를 갖게됐어요. 마치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작사작곡처럼 연구가 재미있었죠. "

장재혁 박사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교때보다 공부량이 많더라(웃음). 연습문제까지 다 해야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해온 경험들이 견딜 수 있는 기반이 됐다"면서 "국내 반도체 대기업과 박막증착 과제를 같이하면서 전자현미경을 통한 이미지 분석이 재미있었다. 박사 1년차부터는 이미지 분석쪽에 집중했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후 연구원은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주사전자현미경 그룹에서 했다. 당시 주사전자현미경의 1인자로 꼽혔던 스테판 페니쿡(Stephen J. Pennycook) 교수의 랩이었다.

"첫날 무척 긴장하고 갔어요. 세계적인 그룹이라 신랄한 토론이 이뤄질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리더인 페니쿡 교수는 스텝과 포닥들의 이야기만 듣는 방식이었어요. 틀려도 다 들어주고 포인트를 짚어주며 다시해보라고 코멘트하는 정도였어요."

장 박사는 "개인적으로 연구책임자(PI)도 지적하는일 없이 기다려주고 재촉하지 않았다. 그들과 일하면서 자유로운 연구문화를 경험했다"면서 "4년간 있었는데 자유스러운 분위기였고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결과를 가져가도 리더들이 이를 인정하고 받아주는 문화는 연구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즐겁게 연구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했다"고 강조했다.

물론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비를 돌아가면서 사용해야 했기에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밤 시간을 주로 활용했다. 근태관리를 따로 하지 않아 자신이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이용, 최대한 즐겁게 연구에 집중했다.

◆학회가면 2~3회 발표는 기본, 힘들었지만 연구 자신감 업~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전자현미경 연구 1인자 페니쿡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생 과정을 마쳤다. 사진은 같이 연구했던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 지금도 연락하며 공동연구와 협력 중이다.<사진=길애경 기자>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전자현미경 연구 1인자 페니쿡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 연구생 과정을 마쳤다. 사진은 같이 연구했던 동료들이 남긴 메시지. 지금도 연락하며 공동연구와 협력 중이다.<사진=길애경 기자>

"전자현미경으로 시편을 보고 분석하는 연구자들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시편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일때죠. 전자빔에 의해 시편이 손상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이 변화를 촬영해 보니 변화 패턴이 있었어요. PI에게 연구결과를 보여주니 학회에서 다른 연구자에게 소개도하고 발표시간에 꼭 오라고 알리기도 했어요. 연구를 지속하는 힘이 됐어요. 감사했죠."

장 박사는 지난해 산화물 원자구조 변화를 실시간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투과전자현미경을 활용한 구조 연구는 전자빔으로 물질을 투과해 분석하면 실험과정에서 시료가 손상됐다.

그는 마이크로초의 짧은 시간 동안 전자빔을 쪼이면 산화물이 훼손되지 않고 환원 과정을 유도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연료전지 성능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장 박사의 연구성과는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가 박사후 과정 중에 시도했던 산화물 변화과정 촬영이 가능성을 보이며 연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연구결과를 본 PI가 학회에서 발표를 무척 많이 하게했다. 한번 가면 2~3개씩 했는데 처음에는 잠을 거의 못잘정도로 준비하는 부담이 무척 컸다"면서 "영어권에 맞는 발표가 되도록 초기에는 PI가 하나하나 코멘트 해주는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하게 됐다. 학회는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고 발표하는지 배울 수 있는 무대가 됐다"면서 "학회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보를 공유하는 시작점이다. 그들과 지금도 교류하며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서 받은 혜택 다 물어내고 출연연으로

장 박사는 귀국 후 국내 대기업에 1년정도 근무했다. 급여나 복지 등 지금 출연연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지만 하고 싶은 연구를 위해 다 포기하고 나왔다.

"해외파로서 이주비용, 아파트, 보너스 등 혜택이 많았어요. 장비 역시 막강했죠. 그런데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았어요. 1년 고민끝에 다 물어내고 나왔어요. 손해가 컸지요(웃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결론은 하고 싶은 연구를 하자는 데 있었어요."

장 박사는 2016년 5월 기초지원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업 근무시기보다 급여도 반토막났다. 장 박사는 "아주 가끔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올해 말께 들어올 투과전자현미경 최신모델에 기대가 높다. 원자마다 화학분석이 가능하고 바이오 샘플, 뇌질환 신경세포 등 이전에 없던 데이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남다른 항로를 달려온 장 박사에게 후배를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연구 자신감'이다.

그는 "한국 과학계 문화상 이공계 족보제가 있어 어려움이 있지만 박사 후 자신만의 연구 관심이 분명해야 한다. 논문 몇편 더 쓰기보다 나만의 무기를 가져야 한다"면서 "6년간 했으니 잘할 수 있다. 학회에 가서 당당히 발표하고 자신을 홍보하면서 스스로 몸값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연구는 혼자하기 어렵다. 혼자 잘할 수 있는게 아니라 서로 알아야 할 것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출연연에 외국인 연구자도 많이 온다.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다보면 융합연구, 공동연구 기회가 만들어 진다. 먼저 나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과학을 '즐거운 자신감'이라고 적었다.

한편 장 박사는 12월내에 투과전자현미경 설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장비 셋업 후 오프닝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페니쿡 교수를 비롯해 각국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그의 연구 동료를 초청, 글로벌 네트워크도 확고히 할 계획이다.

장재혁 박사는 한밭대학교에서 학사, 서울대학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박사후 연구원은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에서 했으며 삼성에서 1년여정도 근무 후 2016년 기초지원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인생모토는 즐겁게. 연구도 즐겁게, 밤샘도 즐겁게 하고자 한다.

장 박사는 젊은 과학을 '즐거운 자신감'이라고 적었다. 후배들에게도 자신만의 연구 무기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사진=길애경 기자>장 박사는 젊은 과학을 '즐거운 자신감'이라고 적었다. 후배들에게도 자신만의 연구 무기와 자신감을 가지라고 조언한다.<사진=길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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