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 연말까지 출연연 역할에 맞는 PBS 개선방향 요청···내년께 개선안 예정
연구현장 "누가 찬성하고 반대하는가의 관점 아닌 문제 해결을 고민해야"

PBS제도(연구과제중심제도) 개편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7월초까지 연구 현장의 의견을 듣고 7월말이나 8월 중순까지 개선안을 내놓겠다며 현장의견 수렴에 나선바 있다.

하지만 현장과 정부간의 인식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정부는 다시 원점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에 역할 정립과 PBS 개선 방향을 요청한 상황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이하 혁신본부)에 의하면 각 출연연의 역할에 따른 PBS 개선 방향을 연말까지 받을 예정이다. 이후 현장의 의견을 통해 출연연마다 맞춤형 PBS개선안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내년 이후에나 PBS 개선안이 나올 수 있을 전망이다.

PBS제도는 출연연의 인력과 인건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선의의 경쟁으로 연구 역량 향상, 연구책임자 권한 강화, 예산집행 투명성 제고를 위해 1996년 현장에 적용됐다.

20년 넘게 PBS 제도가 운영되면서 본래 취지와 달리 과도한 과제 수주 경쟁으로 연구 몰입도 저해, 축적되지 않는 과학기술, 연구자간 소통부재 등 연구현장의 사기저하 문제가 커지며 국가연구개발 역량 하락으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PBS 제도 문제가 거론될때마다 정부는 연구회 체제 발족, 출연금 확대, 협동연구 지원 등 개선안을 내 놓았다. 이번 정부도 올해 초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PBS 제도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하고 TF팀 운영에 들어갔지만 현장과 정부의 입장차는 크게 좁혀지지 않은 양상이다.

◆연구 현장 "연구 몰입 저해와 기술역량 하락이 큰 문제"

PBS 개편안 발표가 늦어지며 현장의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현장 연구자의 가장 큰 우려는 연구 몰입환경 저해에 기술 역량 추락이다.

특히 자율차,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 등 첨단 기술 개발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여전히 제도에 얽매여 우왕좌왕하는 양상이라는 지적이 다수다.

A 중견연구자는 "실제 개발할 기술에 집중하기 보다 인건비 확보를 위해 다수의 과제를 수주하다보니 연구 몰입도는 당연히 떨어진다"면서 "연구자가 각기 다른 기술개발 단계 과제에 투입되면 한 과제에 몰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형 기술 성과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이과제 저과제로 인건비를 벌면 먹고 사는데는 문제 없지만 국가 과학기술 역량 추락, 사회적 기여는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주변국가는 집중 투자로 AI, 자율차 등 기술개발을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부 문제로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신진연구자인 B박사는 "3년 과제인 경우 후속 과제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연구를 지속하고 싶어도 중단하고 다른 과제에 참여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컨퍼런스에 가면 과거 참여과제에서 2~3년만 더 연구했으면 전문성과 기술축적이 가능했더라. 다음해에 무슨 연구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그냥 팔리는 연구, 과제를 위한 연구를 할 때도 있어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출연연 예산 출연금과 정부수탁 늘고 있어 인건비 100% 보장 가능"

연구 현장에서는 정부예산에서 인건비 100% 보장이나 PBS 폐지도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출연연의 연구과제 수탁이 민간에서 정부로 집중돼 출연연 예산의 대부분이 정부에서 지급되는 구조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부 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 25개 출연연 총 예산 4조8926억원 중 출연금 1조9033억원, 정부수탁 예산 2조1920억원, 기타수입 7971억원으로 겉으로 확인되는 정부 예산이 84%에 이른다.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추세다.

출연연 인건비 재원 비중 역시 출연금 51.9%, 정부수탁 39.0%, 민간수탁 9.1%다. ETRI,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를 제외한 인건비 재원 비중도 출연금 58.1%, 정부수탁 31.6%, 민간수탁 10.3%로 정부와 민간이 9대1 구조다.

PBS 제도 도입 이전(1989년 기준)의 출연연 인건비 재원은 정부와 민간이 5대 5정도 였다. 제도 도입 이후 출연연의 인건비 재원은 출연금, 정부수탁, 민간수탁 비중이 6대 3대 1 수준으로 정부과제가 많아지고 있다. 때문에 연구 현장에서는 인건비 보장을 통해 연구 안정성과 몰입성을 지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출연연 역할이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연구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인건비 확보, 평가 등의 문제는 현장 문제를 크게 반영하지 못하고 정부 중심의 일부 정책 개선으로 문제가 계속 되고 있다"면서 "각 부처의 이기주의적 관점이 아닌 정부 차원의 인식과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PBS 개선 복잡, 현장 개선안 받아 맞춤형으로" 예정

정부에서도 PBS 제도 개선 필요성은 공감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몇몇 출연연은 과도한 과제 수주로 연구 몰입도를 저해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요구하는 PBS 폐지, 100% 인건비 지원에는 찬성하지 않는 입장이다.

현장에서 정부에 제시된 PBS 개선안은 3가지다. 인건비 100% 지원안과  출연연의 특성에 따른 인건비 차등 지급안, 출연금의 블록펀딩 지급으로 비목간 전용을 자유롭게 하자는 안 등이다.

14일 열린 '국가 R&D 혁신방안 대전지역 설명회'에 참석한 김성수 혁신본부 과학기술정책과 과장에 의하면 인건비 100% 지원안은 불가능하다.

김성수 과장은 "100% 인건비 지원은 출연연 출범 목적과 달리 국가연구소가 되는 것"이라면서 "자율성 등을 위해 출연연이 설립됐는데 국가연구소로 바꾸는 것은 역할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출연연마다 인건비 차등 지급안도 기관 특성이 있어 산업, 공공, 기초로 구분해 일괄 적용이 어려운게 현실이다.

김 과장은 "인건비 수준이 일정부분 개선됐어도 PBS 문제는 지속되고 있어 인건비 문제는 아니라는 분석으로 볼 수 있다"면서 "또 설문 결과 50대 50정도로 PBS 폐지 의견이 갈리고 있어 현장에서 모두가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산업(60%), 공공(70%), 기초(80%) 일괄 구분보다 ETRI와 원자력연 등 출연금 인건비 비중이 현저히 낮은 기관은 전체 수익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기관별로 PBS 개편 방향을 받고 맞춤형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대식 본부장은 설명회 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PBS제도는 단순히 인건비의 문제로 볼 수 없고 여러 부처가 얽히면서 쉽게 풀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기술 분야별로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관의 미션을 재정립하고 맞춤형 개편안, 평가제도 등이 같이 개선되면서 선순환 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출연연의 한 중견 과학자는 "지금까지 우리는 PBS 제도로 연구현장이 어떻게 피폐 돼 왔는지 봐 왔고 알고 있다"면서 "지금은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찬성하고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연구개발 역량 수준을 높이고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연구자 모두가 문제를 어떻게 바꿀까, 해결할까를 논의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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