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물리학과 교수, 낮엔 연구 밤엔 예술 활동···로봇 조각, 골동품 수집, 전시 등
성심당 창립 이야기 배경으로 책 출간···글과 그림 손수 작업

뚜띠의 모험이 출간된 다음 날,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성심당 DCC점 2층에서 만났다. 이 교수 앞에 있는 것은 뚜띠 빵과 세라믹 인형. <사진=한효정 기자>
뚜띠의 모험이 출간된 다음 날,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를 성심당 DCC점 2층에서 만났다. 이 교수 앞에 있는 것은 뚜띠 빵과 세라믹 인형. <사진=한효정 기자>
"물리학자와 빵집이 만나 만든 책과 전시. 이 엉뚱한 만남이야말로 융합이 아닐까요? 이번 프로젝트가 청소년들에게 융합의 한 방법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앞으로 대전에서 재밌는 융합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이기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최근 펴낸 동화책 '뚜띠의 모험'이 서로 다른 두 분야의 '합작품'임을 강조했다.
 
마이크로파를 연구하는 이 교수는 그의 작업실 '창성동 실험실'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등 다양한 예술·교류 활동을 한다.
 
그가 직접 쓰고 그린 '뚜띠의 모험'은 작년 말 이곳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시작됐다. 이 교수는 연사로 초대한 김미진 성심당 이사에게 성심당의 60년 역사와 나눔 정신을 듣고 동화를 구상했다.
 
'뚜띠의 모험'은 우주에 사는 과학자 뚜띠가 지구에 불시착해 한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두 주인공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마을에서 빵을 만들어 팔았다. 어느 날 빵집에 불이 나 모든 게 타버리자 뚜띠는 우주에서 가져온 눈으로 빵을 만들어 빵집을 살린다.

이 교수는 책 서문에서 "한 조각 따뜻한 빵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는 동안 현실을 잊고 행복했다"고 밝혔다.

성심당 1층 한 편에는 기존에 있던 책상과 의자 대신 팝업 스토어가 자리 잡았다. 전시는 내달 4일까지. <사진=한효정 기자>
성심당 1층 한 편에는 기존에 있던 책상과 의자 대신 팝업 스토어가 자리 잡았다. 전시는 내달 4일까지. <사진=한효정 기자>
올해 여름 시작된 빠나나박사·성심당·이유출판의 합작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됐다. 빠나나박사는 이 교수의 필명이다. 이 교수는 2개월 만에 작업을 마쳤고 책은 이달 10일 출간됐다.

이들은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을 맞아 성심당 DCC점 1층에 '성심당x빠나나박사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이곳에는 뚜띠를 본 떠 만든 뚜띠 빵·파운드케이크·쿠키와 뚜띠 그림·엽서·세라믹 인형 등이 전시됐다. 
 
이 교수는 "협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전에 올 때마다 성심당 빵을 사가던 고객일 뿐이었다"면서 "대전의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은 아마추어 예술가인 내게 대단한 사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성심당도 이 교수와의 협업을 반겼다. 김 이사는 "작년 9월 대덕연구단지 인근에 새 점포를 낸 후 빵과 과학을 이을 방법을 고민 중이었는데 마침 이 교수님을 만났다"며 "고객들이 전시에서 뚜띠 빵과 그림을 보며 과학을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소개해준 유정미 이유출판 대표는 "과학과 빵이 과연 잘 어울릴지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이 교수님과 성심당의 호흡은 정말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뚜띠의 모험 책(왼쪽)과 엽서(오른쪽). <사진=한효정 기자>
뚜띠의 모험 책(왼쪽)과 엽서(오른쪽). <사진=한효정 기자>
◆ 취미로 꾸준히 그림 그려···"연구와 예술, 두 우주는 서로 영향 줘"
 
이 교수의 출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두 딸을 위해 낸 동화책 '박치기 깍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2권을 출간했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 꾸준히 그림을 그렸어요. 그저 재밌어서 하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제가 행복하려고 그리기 때문에 그림의 완성도를 따지지는 않아요. 아마추어와 유희 정신으로 그리죠."
 
그림을 취미로 삼다 보니 그는 일상에서 사물과 현상을 유심히 살핀다. 사진, 그림, 도구들을 관찰해 머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상상력을 더해 그린다.
 
이 교수는 그리기 외에도 골동품 수집, 로봇 조형물 제작, 연애 칼럼 연재 등 독특한 활동을 해 '딴짓' 잘하는 교수로 소개되곤 한다. 2009년 귀국한 후 연구와 '딴짓'을 이어오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름이 알려졌다.
 
이기진 교수가 뚜띠의 모험에 사인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기진 교수가 뚜띠의 모험에 사인을 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이 교수의 예술 작업은 자투리 시간에 이뤄진다. 그는 "내 삶의 핵심은 물리 연구와 교육, 그다음이 예술"이라며 "본업인 연구에 자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8시간은 학교 연구실에서 신개념 '메모리 소자' 개발에 몰두한다. 이 소자는 전류와 전압으로 작동하는 기존 메모리 소자와 달리 마이크로파로 구동된다. 이 연구는 인공지능이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려면 새로운 메모리 소자가 필요하다는 가정에서 시작됐다.
 
연구팀은 마이크로파 주파수로 조절되는 소자를 개발해 지난 7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여러 번 실패를 거쳐 최근에서야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퇴근 후에는 작업실에서 사색하거나 작품을 만들며 보낸다.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되도록 낮에 만나고 그 외에는 혼자 지내는 시간을 만들자는 원칙이 있다. 가끔 주말에는 작업실에 놀러 온 젊은 예술가들과 맥주를 마신다.
 
이 교수는 "작업실에 있을 때 몸은 연구실과 떨어져 있지만, 연구에 관련된 생각이 나기 마련"이라며 "내 안에 두 개의 우주가 얼기설기 엮여 있다가 연구 아이디어든 작품이든 뭔가를 만들어 내곤 한다. 연구와 예술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면 좋겠다"며 "끊임없이 배우다 보면 다양한 분야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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