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억원 슈퍼컴 '누리온' 개통식, 노조 집회로 '어수선'

세계 11위 성능 갖춰···70억 인구 420년 계산 1시간만에
베타서비스 진행···12월부터 정식서비스로 산학연 연구자 지원
'누리온'이라는 명칭에는 온 국민이 다함께 누리는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누리온'이라는 명칭에는 온 국민이 다함께 누리는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KISTI 복합지원동 2층 전산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 468m2(140평)의 공간이 초고성능 컴퓨터로 채워져 있다. 높이 2m, 1.2m의 시스템(Rack)이 16대씩 8열로 군집해 있고, 옆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팬 동작 소리가 크게 들린다.  메인시스템과 함께 저장장치(Storage), 테이프 라이브러리도 보인다. 

시스템은 평균 성인 남자 키보다 높다. 한 편에는 세계 순위 증명서도 부착돼 있다. 총 128대 시스템이 병렬로 구성되어 기록한 성능은 25.7 페타플롭스. PC(개인용컴퓨터) 약 2만대에 해당하고, 70억명 지구 인구가 420년 계산량을 단 한 시간만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는 초당 25.7경번 연산할 수 있는 기록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서 시스템 위를 살펴보니 하늘색 케이블이 정돈되어 있다. 케이블 총 길이는 132km로, 서울에서 세종까지 거리다. 케이블은 엉클어지지 않도록 한군데 모아 잘 정리·정돈됐다. 연구진의 손길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종합상황실에서는 연구자들이 데스크톱 모니터 화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고, 전방의 대형 스크린에는 각종 그래프와 수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국가 슈퍼컴퓨터가 한단계 발전했다.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10위권의 성능을 갖춘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Nurion)'이 공개된 것. 누리온은 앞으로 국내 산·학·연의 연구활동을 지원하며 미래기술과 국가 사회 현안 해결 연구를 지원하게 된다.  

KISTI(원장 최희윤)는 7일 대전 본원에서 '누리온 개통식 및 도입 3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당초 기념식 후 투어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쟁취 집회로 행사장이 어수선해지면서 30분 가량 지연됐다.

슈퍼컴퓨터는 전세계 500위권 안에 드는 고성능 컴퓨터를 지칭한다. 이와 관련된 인증서.<사진=강민구 기자>슈퍼컴퓨터는 전세계 500위권 안에 드는 고성능 컴퓨터를 지칭한다. 이와 관련된 인증서.<사진=강민구 기자>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사진=강민구 기자>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사진=강민구 기자>

◆누리온, 12월 초부터 정식 서비스···거대문제 해결, 국가·사회 현안 해결에 활용

누리온은 과학기술·산업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1차 국가초성능컴퓨팅 유성 기본계획'에 따라 총 904억원을 투입해 구축한 국가 컴퓨팅 시스템이다. 

명칭은 순우리말인 누리(세상, 세계, 함께 누리다)와 온(전부의, 모두의) 합성어로,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리는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라는 뜻을 담았다.

이 시스템은 우주 기원과 물질 생성의 해명, 암세포 전이 과정에 대한 이해 등 기존에 한계가 있었던 기초·원천 연구 분야 초거대문제 해결과 지진·홍수 대응, 식량생산성 향상 등 국가·사회 현안 해결에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빅데이터 처리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수요가 높은 SW 등 맞춤형 환경을 제공하고 클라우드 기술을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 컴퓨팅 분야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중소기업, 개인연구자도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케이블이 정리·정돈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케이블이 정리·정돈되어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계획안에 의하면 누리온은 산업체 기술 개발과 연구개발에 활용할 수 있다. 항공용 가스터빈, 산업용 축류압축기, 헬리콥터 블레이드, 풍력블레이드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또 암세포의 선택적 파괴 약물 개발이나 심해 광물 자원 탐사, 심해저 생물 연구, 잠수함 개발을 지원할 수 있다.  

이 밖에 자폐증, 정신질환, 우울증과 같은 뇌질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통한 기작 연구, 새로운 기능을 갖는 나노분자와 신물질 설계, 고해상도 모델을 이용해 객관적이고 정량화된 군 작전을 지원할 수 있다.  

누리온 베타서비스 사용자로 참여하고 있는 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은하 생성, 진화 연구를 위한 세계 최대급 우주론적 유체역학 수치실험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천문연, 고등과학원 등 국내 연구기관이 함께 이 연구를 주도할 수 있는 배경에는 많은 데이터를 분석·처리할 수 있는 누리온이 있다"고 설명했다. 

누리온은 지난 달 22일부터 시작된 베타 서비스를 거쳐 오는 12월 3일부터 정식서비스를 시작한다. 활용을 원하는 연구자는 향후 '초고성능컴퓨터 활용 과제 공모' 절차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베타서비스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종합제어실에 표시된다.<사진=강민구 기자>베타서비스 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들이 실시간으로 종합제어실에 표시된다.<사진=강민구 기자>

각종 그래프, 수치가 화면에 표시된다.<사진=강민구 기자>각종 그래프, 수치가 화면에 표시된다.<사진=강민구 기자>

◆지난 1988년부터 슈퍼컴 도입···국가·사회 현안에도 활용 가능

슈퍼컴퓨터(초고성능컴퓨터)는 대용량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분석·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일반 고성능컴퓨터보다 연산속도가 수천 배 이상 빨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다.

통상 세계 500위안에 드는 고성능 컴퓨터를 지칭한다. 매년 6월 유럽에서 열리는 ISC(International Supercomputing Conference)와 11월 미국에서 열리는 SC(Supercomputing Conference)에서 성능 순위를 발표한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슈퍼컴퓨터를 과학·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자원으로 보고, 우수 슈퍼컴퓨터를 경쟁적으로 개발·도입하고 국가 차원의 활용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988년 1호기 도입을 시작으로 지난 2008년 4호기까지 도입했다. 그동안 국산 자동차 설계·제작, 액체로켓 엔진 시뮬레이션, 세계 최대 규모 우주진화 과정 연구 등 산학연 연구개발에 활용했다. 

KISTI 분석 결과, 4호기는 지난 2011년부터 1만여명 이상의 연구자와 500여개 이상의 기업이 활용해 1000여편 이상의 SCI 논문(3대 과학저널 17편)을 유발하고 기업의 신제품 개발 비용(78%)과 시간(61%)을 절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광수 UNIST 교수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전자기억 소자를 개발하고, 미래 메모리 시장 선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파력 발전 스타트업인 인진도 '슈퍼컴퓨팅 모델링&시뮬레이션 기술개발 및 활용 지원'으로 바닷물이 사방에서 유입되는 부유체를 개발하고, 시스템효율을 30% 증가시켰다.

4호기는 앞으로 NFEC(국가연구시설장비진흥센터)의 장비이전 절차에 따라 기증기관으로 이전될 예정이다. 청운대, 전남대, 부산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GIST, 배재대, 포항금속소재산업진흥원, 전북대 등에서 활용한다.   

이날 기념식에서 최희윤 KISTI 원장은 "올해는 국내에 슈퍼컴퓨터를 도입해 서비스를 시작한지 30년이 되며, 세계 10위권 수준인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이 서비스되는 뜻 깊은 해"라면서 "누리온이라는 토양 위에 국내 과학기술의 씨를 뿌려 온 국민이 혜택 받는 과학기술 열매를 맺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약 9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슈퍼컴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기를 바란다"면서 "다음 6호기 개통식 때는 국산 기술개발 원년을 기념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개발도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은 "인간의 지식이나 노동력 대신 데이터가 부를 창출하는 데이터경제 시대 진입에 따라 슈퍼컴퓨터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5호기의 활용 분야를 넓히고 경쟁력확보에 필요한 분야나 사회현안 과제를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의 집회로 30분 가량 지연됐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이날 행사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의 집회로 30분 가량 지연됐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

행사에서 핸드프린팅 기념식도 진행됐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행사에서 핸드프린팅 기념식도 진행됐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

외국인 연구자들이 KISTI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외국인 연구자들이 KISTI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사진=김인한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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