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청년, 부탁해 ㊸]강정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광석에서 금속 추출 연구
"신공정 개발해 '희소금속'을 널리 쓰이는 금속으로 만들겠다"

강정신 박사가 얼굴 크기만 한 흰색 마그네사이트 광석(오른손)과 반짝이는 마그네슘 금속을 양손에 들었다. <사진=한효정 기자>
강정신 박사가 얼굴 크기만 한 흰색 마그네사이트 광석(오른손)과 반짝이는 마그네슘 금속을 양손에 들었다. <사진=한효정 기자>
"저는 북한산 돌을 연구해요." 전화 인터뷰에서 강정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가 말한 '북한산'은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사이에 있는 산이 아니라, 돌의 고향이 '북한'이란 뜻이었다.
 
지난 12일 지질자원연 미래지구연구동에서 만난 강 박사는 연구를 설명하기에 앞서 실험실로 이동하더니 돌부터 보여줬다. 그가 보여준 돌은 2004년 남북 교류가 있었던 시절, 북한 룡양광산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실려 온 북한산 마그네사이트(MgCO₃)다. 물론 연구용으로 공식 절차를 통해 반입됐다.
 
북한에는 국내에 드문 고품질 마그네사이트가 다량 매장돼 있다. 여기서 수입된 마그네사이트는 강 박사와 연구팀의 손을 거쳐 자동차·IT 부품 등을 만드는 금속 자원으로 탈바꿈한다.
 
강 박사는 묵직한 광석을 유용한 금속으로 제조하는 금속 제련 공정 전문가다. 공정 단계를 간단히 줄이고 오염 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새로운 공정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질자원연에서 연구한 지 올해로 5년 차. 3년 전부터는 DMR 융합연구단에서 북한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기술을 개발 중이다.
 
◆ "지식 한계 느껴"···서른 살 석사과정 시작, 동경대 박사까지
 
강 박사의 첫 직장은 포스코 광양 제철소 냉연공장이었다. 대학교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끝에 금속에 대한 흥미를 살려 포스코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자동차 강판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는 "작업복에 검댕을 묻히며 일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며 "주 업무는 공정과 품질 개선이었다"고 말했다. 제조 현장 최전선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그는 포스코 연구원들의 강판 개발 연구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찾았다.
 
"엔지니어의 삶도 재밌었어요. 그런데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공정 문제는 이미 다 해결됐었죠. 남아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풀려면 제가 맡은 일부만 개선할 게 아니라 전체 공정과 근본적인 원인을 봐야 했습니다. 그때 지식의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공부를 더 하기로 했어요."

2013년 동경대 실험실에서. <사진=강정신 박사 제공>
2013년 동경대 실험실에서. <사진=강정신 박사 제공>
그는 모교로 돌아와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석사 후반에는 일본 동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뽑혔다. 국제 논문에서 이름만 보던 금속 제련 석학을 지도교수로 삼는 행운도 얻었다. 동경대에서 3년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남들보다 늦은 30세에 대학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박사 졸업까지 늦으면 안 된다는 불안과 압박을 늘 안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실험-논문-발표 거의 이 세 가지에만 몰두했어요. 내 뒤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했죠."
 
그는 석사 과정에서 했던 타이타늄 제련 연구를 일본에서도 이어갔다. 연구와 더불어 지도교수에게 열역학을 배웠고 이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공정을 개발하는 훈련도 받았다.
 
강 박사는 원래 박사를 졸업한 후에 동경대에 남아 연구 교수를 하기로 했었다. 지질자원연으로 방향을 돌린 계기는 우연히 참석한 지질자원연 주관의 한일 심포지엄이었다. 그는 "이 행사에서 우리 연구원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며 "이후 취업 사이트에서 지질연 채용공고를 봤고 마침 전공 분야를 뽑아서 지원했다"고 지난 과정을 되짚었다.
 
◆ "금속 제련, 어려워서 더 재밌다"
 

왼쪽 사진은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광석이 용해·정제·건조·탈수·전기분해 등을 거쳐 고순도 마그네슘 금속으로 변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오른쪽은 공정 최종 산물인 마그네슘 금속. <사진=한효정 기자>
왼쪽 사진은 북한산 마그네사이트 광석이 용해·정제·건조·탈수·전기분해 등을 거쳐 고순도 마그네슘 금속으로 변하는 단계를 보여준다. 오른쪽은 공정 최종 산물인 마그네슘 금속. <사진=한효정 기자>
  

강 박사는 마그네사이트에서 마그네슘(Mg) 금속을 제조하는 공정을 주로 연구한다.
 
그는 실험실 책상에 흰 가루와 액체가 담긴 병들을 순서대로 놓으며 "마그네사이트 광석이 염산에 용해되고 정제·건조·탈수·전기분해 과정을 거치면 이렇게 반짝이는 금속이 된다"고 설명했다.
 
마그네슘 금속은 가볍다는 장점이 있어 다양한 곳에 쓰일 수 있다. 그러나 개발된 공정은 아직 상용 수준이 아니며 생산 주도권을 중국이 쥐고 있다. 강 박사는 "중국은 노동력을 기반으로 시장을 장악했다"면서 "우리는 기술력으로 경쟁해야 했다"고 말했다.
 
강 박사는 실증화를 고려한 제련법과 환경친화적 신 제련법, 두 가지 공정을 개발했다. 친환경 신제련 공정에서는 염소(Cl₂)가스 대신 산소(O₂)가 나온다는 장점이 있다. 공정법도 전자에 비해 간단하다.
 
그는 "연구단에서 1단계 기초 연구를 끝내고 2단계에 진입한다면 공정을 실증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한과의 과학기술 협력에 대해서는 "여건이 갖춰지고 허락된다면 북한의 지하자원과 남한의 기술력이 합쳐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강정신 박사의 지도교수는 타이타늄을 알리기 위해 만나는 사람에게 타이타늄 숟가락을 선물한다. 강 박사도 그를 따라 숟가락을 가져 왔다. 산화 타이타늄은 독성이 없어 종이와 화장품 등 흰 색을 내는 대부분의 물질에 들어간다. <사진=한효정 기자>
강정신 박사의 지도교수는 타이타늄을 알리기 위해 만나는 사람에게 타이타늄 숟가락을 선물한다. 강 박사도 그를 따라 숟가락을 가져 왔다. 산화 타이타늄은 독성이 없어 종이와 화장품 등 흰 색을 내는 대부분의 물질에 들어간다. <사진=한효정 기자>
강 박사의 또 다른 연구는 타이타늄 광석에서 타이타늄(Ti) 추출하기.

연구를 설명하기 전, 그는 미리 준비해 온 숟가락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모양과 크기가 같은 은색 숟가락 중 하나는 스테인리스로, 다른 하나는 타이타늄 금속으로 만들어졌다.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타이타늄 숟가락이 가벼웠다.
 
"타이타늄은 잘 알려지지 않은 금속인데 가볍고 부식이 적으며 자원도 많아요. 문제는 제련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죠. 그래서 연구가 더 재밌습니다."
 
그는 최근 버려지는 '탈질 폐촉매(SCR)'에서 고순도 산화타이타늄을 제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타이타늄으로 구성된 탈질 촉매는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질소 산화물 가스(NOx)를 질소(N₂)로 바꿀 때 사용된다.

◆ 세계 석학들과 토론·교류 강조···지도교수 영향 받아
 
강 박사가 연구만큼 중요시하는 것은 세계 연구자와의 교류다. 이달 초에도 대한금속재료학회 구성원들과 3일간 일본 레어메탈(희소금속) 워크숍(RMW)에 참석해 일본 전문가들과 기술을 공유했다.
 
강 박사는 국제 레어메탈 워크숍과 미국금속학회 등도 매년 빠지지 않고 찾는다. 그는 "여기서 발표되는 기술은 수준이 높고 배울 점이 많다"며 "석학들과 토론하면서 내 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리려는 자극도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활동 대부분은 박사과정 지도교수의 영향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둘은 이메일로 연구 현황을 주고받는다. 1년에 2~3번은 강 박사가 일본을 찾아가 신기술에 관해 논의하기도 한다.
 
"선생님은 제게 학문적 아버지십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이 있어요. 그때마다 자신의 분야에서 언제나 있는 힘껏 열정을 다해 연구하시는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어렵더라도 타협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최고 수준을 내자고 다짐해요."
 
강 박사의 목표는 자원이 부족하거나 공정 기술이 없는 '희소(Rare)' 금속을 철과 알루미늄처럼 널리 쓰이는 '일반(Common)' 금속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연구가 연구로만 머물지 않도록, 독창적이면서도 중소기업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성을 갖춘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토루 오카베(Toru Okabe) 동경대 지도교수(왼쪽)와 함께 제주도 한 식당에서. 토루 교수는 올해 열린 대한금속재료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연사로 초청됐다. <사진=강정신 박사 제공>
토루 오카베(Toru Okabe) 동경대 지도교수(왼쪽)와 함께 제주도 한 식당에서. 토루 교수는 올해 열린 대한금속재료학회 춘계학술대회에 연사로 초청됐다. <사진=강정신 박사 제공>

강 박사는 "연구를 하다보면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타협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최고 수준을 내자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강 박사는 "연구를 하다보면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하며 타협하거나 주저앉지 말고 최고 수준을 내자는 다짐을 한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 강정신 박사는
 
서울대에서 재료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후 포스코 광양 제철소에서 2년 반 동안 냉연부 엔지니어로 일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서른 살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서울대에서 석사 학위를, 동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한 해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입사, 현재 DMR 융합연구단에서 마그네슘 금속 제련 공정 기술 등을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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