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부·연구회 12일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토론회' 개최
패널 한목소리 "출연연별 특성 맞는 예산·정책 구축해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12일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출연연별 산업·기술 특성에 맞는 예산 편성과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사진=김인한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12일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출연연별 산업·기술 특성에 맞는 예산 편성과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사진=김인한 기자>
"연구 주기와 정치 주기는 분리돼야 합니다. PBS가 도입된 1996년과 지금은 시대가 다른 만큼 시대에 맞는 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장기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면 연구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윤지웅 경희대학교 교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Project Base System)의 개선을 요구하는 현장 연구원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12일 서울 AT센터에서 '출연연 PBS제도 발전방안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올해 안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PBS 근본개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열렸다.

토론의 좌장은 이승복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교수가 맡았고, 패널로는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정환삼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 부회장 ▲윤지웅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김낙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박사 ▲엄미정 STEPI 연구위원 ▲한성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기관지원팀장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이 참여했다.

연구현장에서는 지속적으로 PBS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PBS는 연구자의 인건비를 정부 출연금으로 일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연구원이 연구 과제를 직접 외부에서 수주해야 하는 제도다.

경쟁을 통해 연구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연구 수주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본연의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단위로 연구를 수주해야 하기 때문에 연구 연속성이 떨어지고 연구성과의 완성도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과제 수주를 위해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며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결국 과학기술 경쟁력을 하락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PBS 개선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다. 송재준 연구회 미래전략부장은 현행 PBS를 프로그램 중심 체제로 전환하자고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출연연 수행 사업 중 핵심적 임무는 중장기 프로그램으로 운용하고, 단기 미션은 기존의 프로젝트로 운영하자는 것"며 "이를 통해 연구자는 연구 전문성을 축적하고, 기관은 전략적인 중장기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사례를 들며 출연연 설립 취지에 맞는 대형·장기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에너지부 국가연구소 사업 구조는 대부분 대형 과제"라며 "대형·장기적 연구를 통해 우수한 인재들이 힘을 모아 역량을 쌓아간다"고 주장했다. 

박상열 표준연 원장은 "연구비는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출연연이 국가 혁신성장의 주 동력원이 돼 달라는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선 PBS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향후 5~10년 내 출연연의 존재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과기부, 출연연, 연구회 등 기관이 힘을 모아 공동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요자 관점에서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R&R)을 도출한 결과가 국내 산업·기술 특성에 맞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낙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박사는 "신산업 등 정부의 관심이 높은 분야로 출연연 연구개발이 집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 기반 산업 분야에서 필요한 기술이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독일은 정권·정책에 따라 연구 분야가 변하지 않는다. 보통 10년 이상 연구를 하기 때문에 성과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출연연 기술개발 목표 설정은 주요 목표만 설정하고 연구개발 결과, 기술과 수요 변화를 고려해 외부 전문가 집단과 합의를 통해 매년 방향과 목표를 조정하고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 설립 배경, 존재 이유를 파악하고 PBS가 도입된 배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윤지웅 교수는 "20여년 전 출연연에 왜 PBS를 도입했는지 비판적 검토를 하고, 그에 맞는 개선안이 도출돼야 한다"면서 "R&D 사업을 정부 위탁사업으로 할 것인지, 출연연 고유사업으로 할 것인지 기준과 공감대를 만들고 PBS 개선방향을 설정해야 시스템적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연구회에서 제안한 R&D 사업의 프로그램화에 대한 기본 방향은 동의하나 프로그램-프로젝트의 관료적 계층화에 끝나지 않길 바란다"면서 "모든 유형의 R&D사업이 프로그램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환삼 연총 부회장은 "좋은 취지로 도입된 제도도 긴 안목없이 중간에 일방적으로 수정되면서 나중에 취지는 실종되고 제도만 남아 연구 장애가 되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면서 "기획부터 단계별로 합리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이 담겨지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한성일 과기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출연연 주도로 추진하는 PBS 운영방식'으로 PBS를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한 팀장은 "역할과 책임 기반의 출연연별 특성화된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며 "PBS 개편안 마련을 위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명확한 데이터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출연연이 주도적으로 PBS 개선안을 만들어 정부와 지속적인 개선을 이뤄가야 한다는 취지다.

토론회에 참석한 한 ETRI 연구원은 "인건비·기관 운영비·기초 운영비까지 경쟁해서 수주해야 하는 과도한 경쟁형 PBS를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국가에 필요한 장기적 연구를 수행해 출연연 본연의 역할을 하기 위해선 기본적 재원이 조달돼야 하는데 현재 그 재원이 ETRI에는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진 연구자들은 2년 만에 과제가 없어져서 연구 분야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연구의 연속성을 떨어뜨리는 현행 PBS는 폐지되거나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ETRI 연구자 모임'과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연총),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PBS 폐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ETRI에서는 ▲현행 PBS 폐지 ▲과학기술 전문가 주도의 국가 R&D 시스템 구축 ▲ETRI 정부 출연금 비율 70% 이상으로 확대 ▲자율과 책임의 연구환경 보장 등 4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에 직원 2222명 중 과반수가 넘는 1345명의 직원이 서명했다. 

현장 연구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PBS하에서는 단기 성과주의와 과도한 과제수주 경쟁을 부추겨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출연연 본연의 임무 수행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현 정부가 제시하는 혁신방안 조차도 PBS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미봉책만 제시하는 것으로 역대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아래는 ETRI 연구자 모임 성명서 전문.
 

성명서

"연구자·국민 중심"의 국가R&D 혁신방안에 대한 요구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 정책수립과 기획, 평가 과정에서 민주적 거버넌스를 도입해 연구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 운영할 것을 천명하고, 출연연을 자율과 책임이 강화된 체제로 전환하여 과제 중심의 지원방식인 PBS에 대비되는 연구자 중심 연구지원 제도를 강화할 것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무총리를 의장으로 하며 과학기술 혁신과 관련된 범부처 협의, 조정 기능을 담당하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10년 만에 부활시켜 연구관리제도와 시스템을 연구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연구성과 창출을 위한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또한 R&D 투자의 전략성과 효과성 제고를 위한 국가R&D 혁신방안으로 10대 정책과제를 발표하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연구자 주도의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을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역대 정부 주도의 국가R&D 정책 및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혁신은 결국 과도한 관료적 통제 및 간섭으로 귀결되어 오히려 연구역량을 추락시키고 연구환경을 황폐화시켰다. 현 정부가 제시하는 혁신방안 조차도 PBS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미봉책만 제시하는 것으로 역대 정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PBS하에서는 단기 성과주의와 과도한 과제수주 경쟁을 부추겨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출연연 본연의 임무 수행을 할 수 없고, 특히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의 정보통신기술을 선도해야할 ETRI는 PBS의 폐해로 인하여, "이게 연구소냐?" 라는 참담함을 토로할 정도로 위기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촛불혁명의 국민적 여망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국가R&D 혁신은 이전 정부와는 달리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연구자 스스로가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연구에 매진한다"라는 연구개발 본연의 원칙 위에 진행할 것을 촉구하며, ETRI 연구자모임은 국가R&D 혁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 첫째, 현 PBS를 폐지하라

과도한 경쟁형 PBS 중심의 출연연 예산 구조를 재편하라. 단기 성과 중심의 과도한 경쟁형 PBS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출연연과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가로 막는 과학기술계의 적폐다. 

◆ 둘째, 과학기술 전문가 주도의 국가R&D 시스템을 구축하라

과학기술 전문가 집단이 국가과학기술 정책 수립, 예산 편성 및 배분, 조정 및 평가를 주도하는 국가R&D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라. 

◆ 셋째, ETRI 출연금을 70% 이상으로 확대하라

정보통신 강국의 기반을 구축했다는 ETRI의 정부출연금 비율은 1994년 이래 25개 정부출연연구소 가운데 압도적 최하위이다. 먼저 2020년 일몰을 논의 중인 ETRI 지원금 사업 예산을 출연금으로 전환하라.

◆ 넷째, 자율과 책임의 연구환경을 보장하라

연구자 기본연구비와 기관 고유사업비를 보장하고, 연구현장의 자율성 확대와 책임성 강화를 위해 평의원회 구성을 보장하라.

2018년 10월
ETRI 연구자 모임

왼쪽부터 김낙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박사, 엄미정 STEPI 연구위원, 윤지웅 경희대학교 교수, 이승복 서울대학교 교수,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신용현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 한성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기관지원팀장,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 정환삼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 부회장. <사진=김인한 기자>
왼쪽부터 김낙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박사, 엄미정 STEPI 연구위원, 윤지웅 경희대학교 교수, 이승복 서울대학교 교수, 박상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한선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정책본부장, 신용현 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이창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장, 한성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기관지원팀장,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 정환삼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 부회장. <사진=김인한 기자>

이날 토론회에 앞서 'ETRI 연구자 모임'과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연총),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PBS 폐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ETRI에서는 4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에 직원 2222명 중 과반수가 넘는 1345명의 직원들이 서명했다. 오른쪽은 서명부. <사진=김인한 기자>
이날 토론회에 앞서 'ETRI 연구자 모임'과 '연구발전협의회 총연합회'(연총),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PBS 폐지를 위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ETRI에서는 4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성명서에 직원 2222명 중 과반수가 넘는 1345명의 직원들이 서명했다. 오른쪽은 서명부.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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