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최진석 5일 KAIST 학술문화관 찾아 '추상과 득도' 주제 특강
93세 고령자, 뉴질랜드 외국인 등 전국 각계각층 참가자 180명 성황
특강 이후 그룹토의 이어져···깨달음 공유하며 '시대의 사명' 찾아

 

최진석 철학자가 새해 벽두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180여 명의 지식인에게 '지식생산국·공적태도·미지의 길 개척' 등을 당부했다.<사진=대덕넷>
최진석 철학자가 새해 벽두 대덕연구단지를 찾아 180여 명의 지식인에게 '지식생산국·공적태도·미지의 길 개척' 등을 당부했다.<사진=대덕넷>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곳, 존재하지 않는 곳, 해석되지 않는 곳으로 향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해를 '새로운 해'가 아니라 '새롭게 되는 해'로 정의하자. 새롭게 된다는 것은 가보지 않은 추상의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실천하는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前 건명원 원장) 과학동네를 찾아 지식인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대덕넷과 대덕연구단지 자발적인 커뮤니티 연합체인 DASI(다시),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는 5일 KAIST 학술문화관에서 지식인 180여 명을 초청해 '롤러코스터 시대 삶의 중심 찾기' 주제로 특강을 개최했다.

이번 특강은 93세 고령자부터 뉴질랜드 외국인까지 전국 각계각층에서 찾았다. 사전·현장접수 등이 조기에 마감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특히 특강 이후 참가자들이 그룹별로 둘러앉아 토의 시간을 가졌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잠시, 예정된 그룹토의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서로의 깨달음을 공유하는 열기가 멈추지 않았다.

특강 초청 강사로 나선 최진석 명예교수는 새해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역할로 '지식생산국·공적태도·미지의 길' 등의 변화를 꼽았다.

먼저 한국은 '지식생산국'이 아닌 '지식수입국'이라는 것. 지식을 수입한다는 것은 삶의 전략과 방법을 수입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식을 수입하는 '종속적' 움직임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독립적' 활동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가 분석한 우리나라 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종속성'. 즉 따라하기다. 조선시대 때부터 각인된 종속성이 현재까지 삶을 지배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고 선례를 따지거나 벤치마킹에 익숙한 것이 이와 같은 이유라는 것.

그는 "선례를 찾거나 벤치마킹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선례를 만들기 위해 선례를 찾는 것과, 따라하기 위해 선례를 찾는 것은 명확히 다르다"라며 "우리는 지식을 수입하는 레벨은 최상위 수준이다. 이제는 지식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지식생산국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지낼 당시 대학 인근 서점 개수는 39개였다. 북경대 주변은 300개가 넘는 '도서섬'을 이루고 있었다"라며 "반면 연대·이대·서강대·홍익대 등 9만 명이 통행하는 신촌 로터리에는 서점이 1개뿐이다. 지식수입국의 현실과 연결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지식인은 세상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는 사람"
 

 

최진석 명예교수가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년부터 건축가, 연구단지 연구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참석자들이 질문했다.<사진=대덕넷>
최진석 명예교수가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년부터 건축가, 연구단지 연구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참석자들이 질문했다.<사진=대덕넷>
최 명예교수는 지식인의 역할로 '공적태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혁명하는 사람들이 혁명 되지 않은 채 혁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추상적인 삶은 공적태도와 밀접하다. 추상의 중요성을 안다는 것은 공적태도를 취하는 것과 같다"라며 "지식인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를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추상화 능력을 갖춘 지식인은 '자신을 벗어난 사람'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사적 제한성에 갇힌 사람은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지 못한다"라며 "반면 자신을 벗어난 사람은 사회의 병을 발견하고 병을 해결하기 위해 덤빈다. 개인들이 사회의 문제에 앞장서면, 분명히 국가도 변한다"고 확신했다.

이어 그는 "추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용기가 생기지 않고 두려움이 생기는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등을 부단히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 '추상의 세계에 도전'

"인간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서,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보이는 것을 통제하는 존재다. 미지의 세계에 멀리 가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 된다. 지식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추상의 세계에 도전해보자."

 

최 명예교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대덕넷>
최 명예교수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대덕넷>
최 명예교수는 추상의 세계 가운데 하나로 '신화'를 꼽았다. 서양은 현재까지도 끝이 없는 상상력의 그리스로마신화에 살고 있다.

반면 동양의 신화는 황당무계함이 없다는 것.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독립적인 삶, 자유의 삶 등은 모두 신화를 쓰는 일이다. 우리들만의 신화를 쓰느냐, 다른 사람의 신화를 채우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라며 "신화를 읽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화를 쓰는 지식인이 되겠다는 각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한국에서 발생하는 '후진국형 재난'으로도 설명된다. 재난은 '안전·준비·훈련'의 부족으로 발생한다. 이들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빈번하게 재난이 발생한다. 

최 명예교수는 안전·준비·훈련의 공통된 특징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일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난은 보이지 않는 것을 준비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응하는 능력이 배양되지 않았기 때문에 후진국형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무서워한다. 황당무계한 신화를 쓰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라며 "겁많은 사람은 제자리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반면 용감한 사람은 안 보이는 곳으로 진출한다. 우리도 해석되지 않은 곳, 위험한 곳, 이상한 곳 등으로 나아가는 모험을 해야 할 때"라고 피력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과학기술인들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멀리 가야 한다"라며 "격이 높은 사람은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워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새로워진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된다는 것과 같다"고 확신했다.

◆ 득도(得道), 작은 승리를 경험하라

"동양에서는 추상의 가장 높은 단계의 원리를 '도'라고 한다. 도를 얻었다는 것은 가장 먼 곳에 가 있다는 것과 같다. 도는 무명이며 무형이다. 도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도의 작용력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최 명예교수가 득도를 위해 작은 승리를 경험하라고 조언하고 있다.<사진=대덕넷>
최 명예교수가 득도를 위해 작은 승리를 경험하라고 조언하고 있다.<사진=대덕넷>
최 명예교수는 득도를 위한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주문했다. 예를들어 한 학생이 학교 시험에서 컨닝을 하면 전교 1등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 학생은 '정의'와 '성적'의 기로에 서 있다. 추상의 정도로 보면 '정의'가 상위계층이다.

그는 "애매한 상황에서 추상적인 것을 선택하면서 득도로 나아가는 작은 승리를 경험해야 한다"라며 "삶에서 더욱 추상된 것의 선택은 득도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다. 작은 일에서 승리의 경험을 해야 한다. 성적을 선택했다면 결코 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추상 능력이 모든 삶과 과학에도 관련됨을 설명하며 그는 "추상하는 과정은 모험이고 용기다. 새로워지는 과정이다.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더욱 추상화된다는 것"이라며 "추상하는 도전들과 득도의 승리들을 자신에게 경험시켜 주자. 추상된 개인이 모여 번영된 국가를 만든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눈에 만져지는 것은 '감각'이고, 눈에 안 보이는 세계는 '사유'라고 정리했다. 감각적으로 만드는 것은 '기능'이고, 사유에서 만드는 것은 '기술'이다. 감각에서 쾌락을 만드는 것은 '예능'이고, 사유의 높이에서 만드는 것은 '예술'이다.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의 삶을 설명하며 그는 "선진국의 삶은 추상·사유·기술·예술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라며 "중진국의 삶은 현상·감각·기능·예능 속에서 산다. 지적이라는 것은 '세계를 높낮이'로 본다는 것이다. 문명의 통제력과 지적인 활동에 익숙한 지식인으로 거듭나 세계를 높낮이로 바라보자"고 말했다.

특히 이날 특강에서 대덕벤처 빅픽처랩이 설계한 과학동네 새로운 실험 '블록체인 커뮤니티 토큰'이 참가자들에게 발행됐다. 참가자들은 커뮤니티 토큰 온라인 플랫폼에 다양한 소감 등을 공유하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사소한 것에서 개인이나 조직에게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해 지금 가장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라며 "부단히 훈련된 지성으로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겠다"고 소회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인생을 살아왔다. 자신을 부족하고 왜소한 존재로 인식해 왔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라며 "이번 특강을 통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에서 강연을 찾은 찰스코스텔로는 "누군가의 꿈을 대행해주는 삶이 아니라 나만의 꿈을 집행하는 삶을 추구하고 싶다"라며 "1인칭의 관점에서 삶을 마주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오는 12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실천하는 철학 최진석 교수와 함께하는 새해 설계' 2부 행사가 열린다. 행사 신청은 이곳을 통해 가능하며, 2부 특강은 7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이날 특강을 마치고 최 명예교수의 저서인 '탁월한 사유의 시선' 서적의 사인회까지 이어졌다.<사진=대덕넷>
이날 특강을 마치고 최 명예교수의 저서인 '탁월한 사유의 시선' 서적의 사인회까지 이어졌다.<사진=대덕넷>

 

참가자들이 그룹토의에서 서로의 소감을 공유하고 있다.<사진=대덕넷>
참가자들이 그룹토의에서 서로의 소감을 공유하고 있다.<사진=대덕넷>

 

특강을 마친 청중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대덕넷>
특강을 마친 청중들이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사진=대덕넷>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