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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매출 '헤모힘'도 20년 진통 겪었다

대전과총 제3회 과학기술포럼, 연구소기업 1호로 사업화 성공한 '헤모힘' 사례 강연
기술사업 전례 없어 20년간 숱한 어려움···현재 연구소기업 704호 '상전벽해'
"임상시험을 대덕연구단지에 알렸는데, 지원자가 몇명 왔느냐···단 3명이었습니다. 그중에 한명도 나중에 취소했죠."
 
헤모힘을 개발한 조성기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사진=윤병철 기자>헤모힘을 개발한 조성기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 <사진=윤병철 기자>
누적 매출 1조원 달성이 임박한 건강기능식품 '헤모힘'도 기술사업화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었다. 지난 22일 라온호텔에서 열린 대전과총 제3회 과학기술포럼에서 헤모힘 탄생의 주역인 조성기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는 기술사업화의 숨은 과정을 밝혔다.
 
헤모힘은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콜마가 출자한 연구소기업 1호 작품이다. 97년 개발부터 시중 판매까지 10년, 이후 코스닥 상장까지 8년이 걸렸다. 전례가 없던 생약 혼합 연구에 관련 학회가 반발했고, 규제를 넘어서는데 어려움이 컸다. 어렵게 출시했지만 판매가 미약해 신생 네트워크 판매망에 올릴 때 내부 갈등을, 판매 후 각지에서 오는 불만 쇄도에 애먹기도 했다.
 
그 모든 어려움은 헤모힘의 성공신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조성기 박사는 기술사업화 수익금은 최대 120억원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돈 버는 과학자의 모델이 된 조 박사는 20년 전 헤모힘의 시초를 개발하려고 할 때, 간호사인 아내로부터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는 핀잔을 들었다.
 
효능은 입증했지만, 임상도 설립도 쉽지 않았던 연구소기업 1호
 
방사선은 강도에 따라 세포에 영향을 줘, 암 치료에 쓰인다. 방사선 치료는 정상 세포도 파괴해 보완치료가 필요했다. 97년 당시 조 박사는 면역과 조혈, 방어 기능을 갖는 복합 조형물을 생약에서 찾기로 했다.
 
"연구하느라 바빠서 당분간 집에 못 들어간다"고 선포할 정도로 그가 작심하고 찾아낸 생약은 천궁, 당귀, 백작약. 당시 한방계에선 "우리도 모르는 조합"이라며 조 박사의 연구를 우려했다. 그는 방사선 융합기술을 사용해 각 약재의 '3:3:3' 조합으로 독성이 없는 신물질이 됨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각 성분의 구조식도 모두 규명하고, 쥐에게 한달 동안 방사선을 쪼이면서 개발한 약을 주니 높은 생존율을 보이는 실험 결과를 확인했다. 환자 임상도 마치고 2001년 조성물의 국내출원에 성공했다. 상용화를 시도할 차례였다.
 
그러나 2004년 건강기능식품법이 발효돼 다른 조건 값으로 모든 실험을 다시 해야 했다. 쥐 실험을 마치고 인체 실험에 앞서 임상 지원자를 분야 언론을 통해 찾았다. 당시 지원자는 3명. 그 중 한명은 과학자였는데 참가를 취소했다.
 
조 박사는 치료의 당위성을 아는 원자력계에 알려 68명의 임상 참가자를 간신히 모집했다. 소개에 소개를 거쳐 지원한 부천의 한 지원자는 백혈구 수치가 거의 백혈병 수준이었지만, 헤모힘을 7개월 복용하고 정상 수치를 찾았다. 그렇게 인체 실험을 마치고 2003년 헤모힘을 출원했다.
 
동시에 한국원자력연구원(당시 소장 장인순·이하 원자력연)은 연구소기업 설립에 진통을 겪었다. 2000년대 초 출연연은 정부로부터 기능의 다변화를 요구받았다. 그렇지만 막상 사업화를 진행하려고 보니 관련 제도는 없었고 규제는 높았으며 인식은 부정적이었다.
 
공장 설립도 알콜 공정으로 폐수 금지 규제에 막혀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전례가 없다고 연구소기업을 부정적으로 대했다. 원자력과 면역이라는 조합도 제도 관계자들에게 생경했다. 원자력연에서는 모든 임상을 책임진다고 보증까지 했다.
 
이렇게 3년의 민간사와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 2004년, 원자력연은 한국콜마와 공동출자기업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연구소기업은 '선바이오텍'으로 시작해 '콜마비엔에이치(대표 김치봉)'가 됐다. 
 
연구소기업 704호 시대 "연구-기업-시장 영역 조정할 환경 아직 미완"
 
대전과총 3회 과학기술포럼에서 연구소기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진=윤병철 기자>대전과총 3회 과학기술포럼에서 연구소기업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진=윤병철 기자>

출자사를 통해 판매를 시작한 헤모힘은 연구소에서 개발한 면역증강 건강기능식품으로 당시 이슈를 낳았다. 그러나 매출이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출자금 10억원이 1년 새 바닥이 났다. 새로운 투자와 판로를 찾아야 할 위기였다.
 
김치봉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는 조 박사에게 "네트워크 마케팅에 유통해 판로를 뚫겠다"고 말했다. 이 방식에 긍정적이지 않았던 조 박사는 김 대표와 갈등을 겪다 동의했다. 그의 우려와 달리 유통사 '애터미(대표 박한길)'는 효과적인 판매망으로 헤모힘을 스타 상품으로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효능을 주목받기 시작한 헤모힘은 국내 특허에 이어 2005년 미국 특허를 등록하고, 2006년 식약처로부터 건강기능식품 인정을 받았다. 동시에 콜마비앤에이치는 정부로부터 '제1호 연구소기업'에 지정됐다. 매출은 급격하게 일어나 2015년 코스닥 상장기업도 됐다.
 
판매 후에도 조 박사는 물론 심지어 당시 원자력연 수장이었던 장인순 전 원장까지 각종 소비자 불만에 시달렸다.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요구였지만, 연구개발만 해 온 과학자가 사업화의 책임감도 고스란히 감당한 기간이었다.
 
판매 초기 애터미는 헤모힘과 더불어 원자력연 방사선 융합기술로 만든 기능성 천연물 화장품 ' 애터미'를 동반해 판매했다. 조 박사는 "돌아보면 소비자에게 친숙한 기능성 화장품으로 접근해 건강식품을 제안하는 판매 순서가 주효했다. 지금은 헤모힘이 화장품보다 매출이 월등하다"며 기술사업화에서 마케팅의 역할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는 "개발자와 기업, 소비자의 생각은 다 다르며, 현재 연구소기업 붐에도 각 입장을 조정할 역할과 책임 구분이 아직 미약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당시 연구소기업을 주도한 장인순 전 원장은 헤모힘의 효능을 몸소 확인한 주민 덕분에 지역 반대에 막혔던 정읍 연구소를 세울 수 있던 사례를 밝혔다. 그는 "연구소기업이 2016년 1조 600억원을 벌어 원자력연에 1700억원을 배당하자, 정부가 연구소기업 창출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제 704호나 되는 연구소기업의 입장이 과거와 다르다"는 의견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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