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새로운 언어 획득, 불의 사용과 함께 인류문명 진화 지탱

언어 획득과 인지혁명
 
전회의 내용은 크기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호모속이 탄생하고 불의 사용 등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하기 시작한 생물학적 현상을 알아봤다. 또 하나는 인류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났고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문화의 형성이 시작되는 역사적 현상을 살피고자 했다. 이번에는 허구를 생산하는 언어의 획득, 인류 협력의 규모증대와 다양성 등을 중심으로 하라라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로 한다.

사피엔스가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의 획득은 인지혁명의 증기기관이었다. 증기기관이 압도적인 기계의 힘을 이용하는 신산업과 사회 시스템을 연쇄적으로 만들어내는 엔진이 된 것처럼, 새로운 언어 획득은 인류가 동물과 판이한 여정을 개척하며,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피엔스의 새로운 언어는 상상의 질서를 믿는 능력을 증폭하여 사회적 질서로 재창조하는 마법의 장치가 되었다.

인지혁명 이전의 원시 사피엔스의 언어는 무척 단순했다. 새의 울음소리, 벌의 날개짓, 개미의 냄새, 영장류의 목소리 등에 의한 의사소통처럼, 소리, 울음, 동작, 신호 등 각각 독립적이라서 기껏해야 "조심해! 도망가! 먹이가 있어! 이리와!" 등이 고작이었다. 영장류와도 크게 다름없는 단순한 의사소통이었다.

하라리는 호모속 중 사피엔스만이 인지혁명에 의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을 갖게 된 점에 특히 주목한다. 바로 이 허구를 만드는 힘의 원동력은 새로운 언어에 의한 복잡한 사고와 의사소통에서 비롯되었다. 하라리는 기존언어와는 다른 사피엔스의 새로운 언어의 특징과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우리의 언어가 놀라울 정도로 유연해졌다. 그들은 제한된 개수의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각기 다른 개수의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사자 한 마리를 보았어.'(사피엔스, p.46)

이젠 들소를 사냥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단순한 소리와 신호에 구애받지 않고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등 육하원칙이 갖추어진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수단으로 본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들소나 사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것이다.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사피엔스, p.47)

사피엔스의 새로운 언어 획득은 불의 사용과 함께 인류문명 진화를 지탱하여 온 수레의 두 바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과 SNS 등 강력한 정보전달과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의한 고도의 정보처리도 사피엔스의 새로운 언어의 획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결과 우리는 한층 정교한 계획을 디자인하고 고차원의 실행력과 구상력을 발휘한다. 동시에 글로벌 규모의 응집력으로 다양한 가상사회를 만들어 내는 힘을 얻었다. 디지털 언어에 의한 새로운 국면의 인지혁명이다.
    
◆ 궁극의 언어 소통세계 '판도라 생태계'

2009년에 개봉된 영화 '아바타'의 무대는 2154년으로 22세기 지구 미래의 이야기이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첨단 컴퓨터 그래픽(CG)을 통해 생생하게 감정까지 전달하는 3D에 빠져들어, 기계들이 인간의 미묘한 심리적감정적 변화까지도 이해하고 표현하는 감성기술에 경탄했다.

그러나 필자는 거대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의 행성 판도라의 언어 네트위킹의 치밀함에 경악했다. 판도라는 생체식물신경망(Bio-botanical Neural Network)이라는 생명의 그물로 엮어져 있다. 판도라에서는 광대한 언어 네트위킹 플랫폼으로 나비(Navi)족, 식물과 동물 그리고 에이와(Eywa)가 모두 상호작용한다. 판도라를 구성하는 천지만물 간의 지능언어에 의한 궁극의 소통 생태계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승화되어 있다.

판도라의 오미티카야 부족은 소리의 나무(Tree of Voice)의 뿌리와 큐(Queue)를 연결함으로써 조상들이나 에이와와 소통한다. 한 그루가 주변의 1천 그루를 단위로 뿌리의 전기화학적 작용으로 서로 교신하면서 인간의 생체신경망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비족은 판도라의 모든 것과 서로 조화를 존중하면서 판도라 전체를 감싸고 있는 신경네트워크인 '에이와'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판도라는 언어에 의한 무한 상상력의 세계이다.

궁극의 소통세계로서의 '판도라' 언어 생태계.<그림= 하현주>
궁극의 소통세계로서의 '판도라' 언어 생태계.<그림= 하현주>
나비족의 땋은 머리카락 속에 숨어 있는 신경계인 큐는 USB처럼 소리의 나무에 접속하여 나무의 생각을 전달받고 조상의 메시지를 다운로드 받는다. 미래의 환상적인 단말이라고 할까? 인간과 나비족의 잡종인 아바타는 인간의 의식으로 나비족의 몸을 갖고, 다양한 동물(이크란, 토루크)들과 네트워킹하면서 상호 교신 한다.

인류의 육성에 의한 애널로그 언어의 표출이 '인지혁명의 제1물결', 오늘날 디지털에 의한 새로운 차원의 정보 소통수단의 획득이 '인지혁명의 제2물결'이라고 한다면, 영화 판도라의 소통세계는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인지혁명의 제3물결'이 될 수 있다. 

◆ 상상의 위력과 협력 가능 지평선

인지혁명에 의한 언어 획득은 사피엔스에게 상상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했다. 정보의 전달력의 확장은 협력할 수 있는 규모의 크기와 사회적 행태의 다양성을 가져왔다. 하라리도 인용하고 있듯 전문가들은 50마리 정도의 침팬지 사회와 50명 정도의 인간사회는 생물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침팬지 사회에서 우두머리 수컷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질서와 인간사회의 그것과는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인지혁명 이전의 인류의 고대 선조들은 수십 만 년 또는 더 오랫동안 침팬지와 비슷한 수준 혹은 조금 더 발전된 수렵채집 공동체 생활을 하였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전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지혁명을 거친 사피엔스는 정보의 전달과 상당한 축적이 진행되면서 생물학적 구속의 한계를 벗어난다. 복잡한 언어를 통하여 집단내의 뒷담화와 허구의 공유로 생면부지의 상대와도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 신화, 사회제도, 국가 등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허구를 공유함으로써 인간은 복잡한 행동을 계획하고, 규모가 큰 집단이 체계적으로 응집력을 갖기 시작한다.

사진은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가 김홍도의 작품이다. 빨래터 아낙네들은 어떤 뒷담화를 나누고 있을까? 집안일 대소사는 물론 전날 밤 부부싸움까지 서로 간에 모조리 털어놓으며, 기쁜 일, 슬픈 일 인생의 희노애락을 허물없이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조상의 내력과 귀신 이야기까지, 이웃 동네 부잣집 맏아들 혼처 소식, 가보지는 않았지만, 언뜻 들어 본 적이 한양의 풍경과 본 적도 없는 나라님 이야기까지 그녀들의 뒷담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아낙네들의 뒷담화를 숨죽이며 엿듣는 어느 한량 선비의 모습도 익살스럽다. 그의 마음속에는 천길만길 춘정을 불태우며,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있으리라. 하라리가 주창하는 인지혁명의 진수는 사피엔스가 획득한 새로운 언어와 여기에서 촉발되는 상상 세계의 심오함 일터다. 그것은 침팬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인지혁명으로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가 있었고, 또 새로운 미래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론 물리학계 기반의 독보적인 미래학자인 미치오 카쿠는 그의 책 '마음의 미래'에서 시공간 의식이론(space-time theory of consciousness)을 활용해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물은 주로 공간 및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에서 이 세계의 모형을 만들어내는 반면, 인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과거와 미래)까지 고려하여 모형을 만들어낸다.'(마음의 미래, p.77)  

미치오 카쿠는 침팬지와 같은 사회적 동물의 의식과 인간의 의식을 확연히 구분한다. 침팬지도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형을 만들 때 공간과 함께 다른 개체까지 고려하는 수준의 의식을 갖는다. 동료들끼리 뭉치고 적을 방어하며 우두머리에게 복종하는 등 무리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행동은 매우 복잡한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간의 의식은 고차원의 미래예측 모형을 만들어 상황에 대처한다. 인간은 동물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자문한다. 내일 그리고 1년 후, 10년 후 심지어 백 년 후도 생각한다.

◆ 최초의 풍요사회 vs. 절멸적 잔인사회

사피엔스를 주인공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또는 제3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상상 시나리오는 실로 무수한 가지 엮기가 가능할 것이다. 하라리는 수렵사회가 최초의 풍요사회(The Original Affluent Society)였을 것이라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북부 이스라엘에서 12,000년 전의 무덤 속에는 50세 정도의 여자와 강아지가 들어 있고, 강아지는 여자의 머리맡에 묻혀있다. 그녀의 왼손은 개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감정적 유대관계를 소중히 하는 풍요사회를 누렸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또한 수렵채집인들의 삶의 방식은 그들의 후손인 농부 등에 비해 훨씬 안락하고 보람 있는 삶을 영위했을 것으로 본다.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 정도만 일하고, 사흘에 한 번 정도 사냥을 하였기 때문에 농부처럼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식단 또한 각종 베리와 버섯, 점심에는 과일 및 달팽이, 저녁에는 토끼 스테이크를 먹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피엔스, p.84-86) 하지만 수렵채집인의 삶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사려심 깊은 천재 사피엔스의 감정이입이 많이 개입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하라리는 인지혁명의 결과 사피엔스는 기술과 조직 방법을 터득하면서 아프로아시아를 벗어나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전제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사피엔스, p.34)을 보면, 4만5000년 전에는 호주 그리고 1만6000년 전에는 미대륙으로 진격한다.

특히 호주침략이라는 최초의 대양횡단은 잔인한 포유동물 절멸 프로젝트라고 비판한다. 호주 해안에 발을 들인 순간 먹이사슬의 최상층부로 올라선 정복자들은 생태계에 재앙을 초래하는 잔인한 동물 절멸 업자로 돌변했다고 사피엔스의 원죄를 고발한다.

'사피엔스는 키 2미터인 캥거류, 유대목 사자, 무게 2.5톤에 이르는 디프로토돈 등을 닥치는 대로 절멸해갔다. 호주에서 오랫동안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은 인간이 상륙한 지 몇 천년 지나지 않아 사실상 모두 사라졌다. 몸무게 50킬로그램이 넘는 호주의 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다.'(사피엔스, p.104~105)

하라리는 지금이라도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이라는 현생 인류의 불명예를 속죄하는 일은 바다의 대형동물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준엄한 미션을 부여한다. 그들은 오늘날 인간의 산업공해와 해양자원 남용 등으로 멸종의 기로에 있기 때문이다. 인지혁명으로 풍요사회를 일군 사피엔스는 닥치는 대로 형제를 살해하고, 대형동물을 멸종시키는 대홍수를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긴 안목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망하고 여기서 가능성의 선택지를 넓히는 일이라고 일갈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정착한 수렵채집인들은 어떤 유형이었을까? 아프로아시아의 변방에 있는 한반도에 당도한 그들은 용맹한 유목민이거나 온순한 농경민이었을 것이다. 고산준령을 넘고 넘어 아프로아시아 육괴의 끝자락을 찾아온 그들이 아닌가? 사피엔스 중에서 프론티어 정신에 넘치는 우리들의 고고선조이었을 것이라고 포용하는 마음을 한껏 발휘하여 보자.    

◆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