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만이 인지혁명으로 길러진 허구에 역동성 부여, 문명 축적"

◆ '사피엔스' 전체 개괄도를 그려본다

하라리의 역사관은 궁극의 객관주의이다. 그는 특정 국가나 지역, 인종, 종교, 이데올로기에 구속받지 않는다. 자유분방하게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고루 시선을 던진다. 역사학자이면서도 지리생물학, 유전공학 등 관련 학문을 두루 섭렵하여 광대무변의 공간을 누비고 다닌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국면에서 '우리는 잘 모른다'고 이실직고(以實直告)한다.

인류 7만년 분의 대서사인 '사피엔스'를 이해하는 원점은 인지혁명이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의 돌연변이(genetic mutations)가 사피엔스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We’re not sure)"고 말한다. 그 우연이란 어느 날 사바나를 거닐고 있던 수렵채집인 무리가 날벼락을 맞아 전신에 강한 전류가 흘러 뇌세포의 연결망에 충격이 주어진 탓일까?

약 9000년 전 수렵채집인들이 남긴 아르헨티나의 '손 동굴'의 손도장은 고대 수렵채집 사회의 유물 중 우리의 마음을 가장 크기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 what it means)'고 고백한다. '사피엔스'에 곳곳에 모른다는 표현을 만난다. 하라리의 진수는 잘 모른다는 것을 숨김없이 담백하게 인정하는 태도에 있다. 그 이상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상황이 절박해질 때마다 그는 상상력의 무한설계로 새로운 장면을 극적으로 열어간다.

사피엔스 개괄도.<그림=하윤주>
사피엔스 개괄도.<그림=하윤주>
그림은 '사피엔스'의 전체 개괄도이다. 600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하나의 도형으로 구도화하는 것은 쉽지도 않거니와 자칫 저자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빗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독자들의 이해를 돋구기 위해 개괄도를 준비하고 싶었다. 그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함의를 품고 있다.

'인지혁명으로 인류가 공통으로 숭배하는 '상상의 질서'로 통합의 힘을 증대하여 왔다. 농업혁명으로 돈, 종교, 제국이라는 인류의 보편 질서를 구축했다. 과학혁명으로 인류의 상상적 질서는 우주적 차원으로 확산된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인본주의가 함께 빚어낸 과학이라는 마법의 칼은 '자연선택을 지적설계'로 대체하는 우주의 패러다임을 정조준하고 있다. 특이점이다. 135억년전 우주가 개벽을 한 사건의 지평선을 '빅뱅 1.0'이라고 한다면, 지적설계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조작하려는 현생인류의 특이점을 향한 우주적 모험은 '빅뱅 2.0'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피엔스의 성공과 행복은 다른 동물의 희생과 환경파괴를 불러왔다. 지적 설계의 신시대!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일까?"

하라리는 인류의 역사에 대한 각성을 잊지 않는다. 사피엔스가 풀어야 할 가장 근원적이고 심오한 과제를 다음과 같이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섬찟하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대처해야 할 거대 담론이다.  

상기 거대의제에 대해 하라리는 "인간은 허구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한다. 중요한 것은 허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허구를 이용할 것"을 주문한다. '사피엔스'는 웅장한 시공간에 인류를 주인공으로 그려낸 초거대 점묘화이자 지성의 교향악이다. 멀리서 봐야 더 선명하게 보이고, 영혼의 점을 촘촘하게 수놓을 때 영롱하게 울려 퍼지기 때문이다.

◆ 하라리의 상상적 질서 세계의 모형을 범주화한다

'사피엔스'의 밑바닥을 관통하는 핵심개념은 인류의 세계는 3가지 사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 주관적 사실, 공동주관적 사실이다. 생물종 중에서 또 인류 중에서 사피엔스만이 인지혁명으로 길러진 가공의 허구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주관적 사실을 자유롭게 구사함으로써 인류문명을 축적하여 왔다.

허구는 객관적 세계와 가공적 세계를 연결하고 융합하여 보이지 않는 인간질서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다. 객관적 세계는 현실 환경 그 자체다. 자연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물이다. 중력과 같이 우리들이 믿고 있는 것, 느끼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자연적 실체다. 산, 바다, 하늘 등이다. 객관적 세계는 공간(space)이 있고, 그 공간 속에는 물질(mass)이 있다. 공간과 물질은 시간(time)과 함께 존재한다.

주관적 세계는 객관적 세계에 허구가 입혀진 확장된 내면 공간이고 사건을 탄생시키는 상상엔진이다. 객관적 세계와 가공의 세계는 함께 존재하기도 하고 서로 포용도 한다. 주관적 세계는 객관적 사실과는 상관없이 내 개인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느끼는 것이다. 눈을 뜨고 보고 있는 나와 당신의 뇌 속에 투영되어 맺히는 형상이다. 감각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세계이다. 주관적 세계는 유연한 확장성과 배타성을 모두 갖고 있다.
 

객관적 세계·주관적 세계·공동 주관적 세계의 범주화 모형도.<이미지=하원규 박사>
객관적 세계·주관적 세계·공동 주관적 세계의 범주화 모형도.<이미지=하원규 박사>
공동주관적인 세계는 수많은 사람의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고 확대 재생산되는 상상적 질서이다. 국가, 화폐, 기업, 인본주의, 신 등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개념은 모두 공동주관적 사실에 해당한다. 공동주관적 세계는 엄청난 위력을 발산하면서 인류의 흥망성쇠를 가름한다.

'사피엔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컨셉은 두 가지로 압축된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은 상상에서 질서를 생산하고 서로 신뢰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만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인간만이 공동주관적인 사실, 즉 허구를 파악하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다른 동물은 상상하지 않는다. 허구도 믿지 않는다.

꿀벌도 많은 개체가 협력하여 집을 짓고 여왕을 지킨다. 하지만 본능적인 행동일 뿐 적극적이고 유연한 협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코끼리도 나름대로 유연하게 협력적인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가족이나 소수의 동료들 간의 협력에 머무른다. 이에 반해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수립하여 고차원의 이념과 비전을 품고 서로 힘을 합친다. 때로는 수억 명 규모로 한 마음으로 감동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독재적 통치 권력과 공동주관적 세계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객관적 세계에 스며들게 되면, 인간의 영혼은 허무하게 짓밟히기도 한다. 국가 혹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숭배를 강요하는 리바이어던이 될 수 있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출간한 책으로, 원제는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이다. 여기서 리바이어던은 페니키아 신화에 등장하는 사나운 바다 괴물로 '레비아탄'이라고도 명명된다.
 

리바이어던 표지.<사진= 하원규 박사>
리바이어던 표지.<사진= 하원규 박사>
리바이어던의 표지에는 시민이 뭉쳐서 만들어낸 거대한 인간형의 존재가 산 너머에서 도시를 굽어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홉스가 국가를 '인조인간', 즉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인간적인 존재로 기술한 것을 형상한 것이다. 그에 비해 리바이어던이 들고 있는 왕홀과 검 및 그 머리는 하나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리바이어던이 시민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만이 아니라, 단순한 시민의 집합체와는 구분되는 독자적 성질을 갖고 있으며, 왕홀과 검으로 상징되는 공권력과 머리로 상징되는 정치적 지도를 인민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 상상적 허구는 '리바이어던'이 될 수 있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지배질서를 의미한다.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과 같이 강력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을 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사람은 그 누구도 공격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만, 또한 모든 사람은 아무리 약한 사람에게도 공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약하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전쟁과 침략과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리고 각 개인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강력한 정부를 원하게 된다고 상정한다.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과도 같은 강력한 정부는 자신이 만든 지배질서를 위반하는 자에게 무차별적인 보복을 행사할 수 있다. 약한 자를 공격하는 강한 자도 처벌할 수 있으며, 강한 자에게 보복하는 약한 자도 처벌할 수 있다. 이로써 만인은 리바이어던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만인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토마스 홉스가 설파한 정부의 존재 이유였다.

사피엔스만이 지닌 허구의 생산과 공유하는 능력. 그것은 사피엔스의 성공조건이 되었지만, 때로는 '리바이어던'을 탄생시킬 수 있다. 지구 차원의 공동주관적 현실 구상 능력은 사피엔스 번영의 원동력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흔쾌히 동의하는 공동의 비전과 목표를 항해 힘을 결집하여 장엄한 성취를 일궈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구는 객관적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허구적 질서는 만질 수도 냄새도 맡을 수 없는 환상적 실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구는 언제든지 지배질서를 정당화는 이데올로기가 되고, 리바이어던의 모습으로 보복의 거버넌스로 작동하게 할 수도 있다. 지배자의 통치이념을 수단화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추동하면서 정신세계를 유혹할 수 있다. 야금야금 물리적 현실과의 차이와 경계를 허물어 간다. 이윽고 객관적 현실을 삼키면서 수단과 도구로 동원된 가상적 비전과 이념을 추종하게 된다.

거대한 힘을 획득한 사피엔스의 미래는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21세기는 지금까지 어떤 시대에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강력한 허구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잉태할 수 있다. 이러한 가상적 이념과 교리가 바이오 테크놀로지와 컴퓨터 알고리즘의 도움을 받으면, 인류는 역사상 최고의 과학의 힘, 기술의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사이 통제불능의 리바이어던이 되어 우리들 신체의 형태와 뇌와 마음의 프레임을 규정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느끼는 가상세계를 창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적 허구에 의한 질서 강화의 양면성.<이미지=하원규 박사>
상상적 허구에 의한 질서 강화의 양면성.<이미지=하원규 박사>
허구라는 구조체는 인류문명의 본질을 통찰하게 할 만큼 강력하다. 동시에 우리가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험한 구조체이기도 하다. 하라리가 우리의 남북 상황을 상징적으로 지적한 것은 많은 함의를 품는다. "과학기술로 한쪽은 핵으로 무장한 독재국가가 되었고, 한쪽은 IT강국이 되었다"는 그의 웅변은 날카롭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생명공학 기술 등이 정치, 사회, 문화와 교접하게 되면 통일로 가는 한반도의 상황은 어떻게 펼쳐질까?

수많은 시나리오를 디자인할 수 있겠지만 자꾸만 무서운 시나리오가 클로즈 업 된다. 초감시 체제, 대량통제국가, 대량살상 무기···. 조지오웰의 '1984년' 등. 그리고 키워드 너머에는 완벽한 자율주행 도시, 궁극의 디지털 정부, 초지능형 교육 시스템, 고효율적 의료 체제.

AI와 빅데이터는 인간의 능력, 적성, 신용 나아가서 선악이나 신체까지도 평가하고 선별할 수 있게 되고 있다. AI알고리즘과 생명기술의 가능성은 피가 통하지 않는 숫자와 프로그램을 냉정하고도 담담하게 처리하는 방향으로 강화될 수 있다. 반면에 인간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현하게 하고 사회 시스템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다, 상상적 허구에 대한 두 갈래 질서를 극단적으로 강화함과 동시에 상반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과학혁명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상사적 허구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인간성을 숭배하는 인본주의 종교를 만들어냈다. 그것도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를 초인으로 진화하도록 고무하는 진화론적 인본주의까지 등장시켰다. 또한 20세기 한 때 우리의 현실세계를 점령하여 위력을 떨치기도 했다.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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