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4개월여의 공백 끝에 신임 원자력연 원장이 임명됐다. 일각에서는 탈원전 정책이 원자력연 원장 임명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었다.

신임 원장인 박원석 박사는 정통 원자력연구자로서 수소생산용 초고온가스로, 사용후연료처리용 소듐냉각고속로 개발 등, 첨단 기술개발의 선봉에 섰었다. 이런 경력을 볼 때 난제 기술에 도전한 추진력으로 지금의 상황을 돌파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한다.

원자력 연구 환경은 매우 어렵다. 탈원전 하에서 새로운 원자력 연구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원전 해체, 안전 등으로 한정하는 것도 미래 먹거리의 기반을 만들어야 하는 국책연구기관의 책무로는 부족하다. 원자력연의 주력 분야인 원자로 개발, 핵주기 개발이 모두 위기에 처해있다.

원자력 연구에 대한 감시의 눈길은 그 어느 때보다 많다. 과거에 관행적으로 처리하던 연구과정은 물론 연구결과에 대한 관리와 검증에도 갈수록 엄격한 잣대가 제시되고 있다. 연구비 역시 탈원전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공하는 출연금과 원자력연구개발기금에서 수탁을 받는 연구비가 연구 재원인데, 연구개발기금은 원자력 발전량에 비례하게 되어 있다. 탈원전으로 원자력발전이 감소하면 기금 역시 감소하게 된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지 않는 연구는 쇠퇴한다. 신임 원장은 취임사에서 원자력 기반 융합연구를 연구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전에는 원자력에너지의 실용화가 주된 연구였다면, 향후에는 ICT, 생명, 재료 등 연구 분야를 확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의 원자력연구기관도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프랑스 원자력청은 대체에너지 개발을 연구 영역에 포함하고 기후변화, 생명공학 연구 등도 수행하고 있다.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는 민수용 원자력기술개발에 중점을 둔 연구소이다. 비등수로의 원형로가 여기서 개발되었다. 아르곤 국립연구소도 원자력뿐 아니라, 가속기, 고에너지 물리, 계산과학 등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기계, 화학, 생명공학, 에너지 등 특화된 연구소 체계로 되어 있어 원자력연구원만의 고유성에 부합하는 영역을 개척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에너지 중심의 연구에서 다양한 융합연구로 방향 제시는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원자력에너지의 돌파구를 위해서 전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은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게임체인저' 기술에도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모듈형 초소형 원자로, 사고저항성연료, 가상원자로 기술개발이다. 연구비는 줄어드는데 다양한 융합연구와 게임체인저 기술개발 등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재원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이를 타개하려면 해야 할 일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먼저 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례로 경수로 연구는 이제 산업체가 맡아도 된다. 새로운 분야를 하려면 놓아줄 수 있는 일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연구소로서 인재의 보고였다. 52시간 근로제 하에서 밤낮으로 연구에 매진하는 연구자는 갈수록 보기 힘들 것 같다. 거대과학이라는 원자력 연구의 특성상 연구가 거대화되고 장기화 됨에 따라 연구자들이 매너리즘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 되기도 한다.

탈원전 상황이 연구 의욕을 떨어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취임사에 신임 원장이 연구생산성 향상을 지목한 것은 이러한 점을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과감한 인재 영입과 신진 연구자 배양을 통한 조직 활성화가 필요할 것이다. 조직이 움츠러들수록 새로운 수혈이 중요하다. 연구는 결국 연구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호기보다 위기에서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다. 무엇보다도 위기 상황에서는 실패라는 것이 없다. 비록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탓이 리더에게 가지 않는다. 상황에 기대어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 실패이다. 박원석 원장은 난관마다 추진력으로 돌파해온 이력의 소유자이다. 기술개발로 탈원전을 극복하는 원자력연을 기대해 본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사진=정동욱 교수 제공>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사진=정동욱 교수 제공>
◆정동욱 교수는?
정동욱 교수는 서울대, KAIST, MIT에서 원자력공학 학·석·박사 학위를 차례로 받았다. 한국수력원자력에서 APR 1400 설계개발 사업팀장을 지내고 2010년 한국연구재단 원자력 단장, 2017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에너지환경전문위원장을 역임했다. 2012년부터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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