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침대', 혈관수술 '로봇'···과학하는 의사의 도전

고진 인하대병원 교수, 12일 바이오헬스 모임서 융합 연구 공유
"과학자, 의료계서 필요한 기술 알아야···접근 권한 없어 문제"
바이오 스타트업 자문, 3D 프린팅 강연, 자율주행차와 로봇 연구 등···. 고진 교수의 활동 영역만 놓고 보면 그를 연구원이나 이공계 교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의 본업은 인하대병원 혈관·이식 전문의. 젊은 날 꿈꿨던 과학자를 여전히 마음에 품고 의학과 과학을 잇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고 교수가 지난 12일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열린 대덕특구 혁신네트워크 바이오헬스 모임에서 지난 10년간 펼친 과학·의학 융합 연구를 공유했다. 이날 참석한 생명과학 교수와 금융투자자 등이 그의 이색 연구에 주목했다. 

고진 인하대병원 교수는 혈관 전문의이자 스타트업 '더웨이브톡(THE WAVE TALK)'과 '모라이'의 의학 자문가다. <사진=한효정 기자> 고진 인하대병원 교수는 혈관 전문의이자 스타트업 '더웨이브톡(THE WAVE TALK)'과 '모라이'의 의학 자문가다. <사진=한효정 기자>

고 교수는 자신을 "수술하는 블루칼라 의사"라고 소개했다. 환자 치료와 동시에 의학·과학 현장에서 기술을 개발한다는 의미다. 외래 진료 외의 시간은 연구원·스타트업 방문, 과학동아리 자문, 연구, 강연 등으로 바쁘게 채워진다. 그와 정식 계약을 맺은 스타트업은 15개, 학생을 자문해주는 곳까지 포함하면 함께 일하는 회사는 60여개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는 환자용 '자율주행 침대'. 침실처럼 편안한 '자율주행차' 개념을 뒤집어 '침대'를 도보로 내보낸다는 아이디어다. 고 교수와 AI 기반 프로그래밍 개발 스타트업 '모라이', 침대회사 등이 합작해 키트를 개발 중이다. 

고 교수는 "자율주행차는 레드오션이지만 자율주행 침대는 새로운 시장"이라며 "이 침대는 병원에서 침대 이송 인력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침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투석 환자 등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연구에는 실내 주행 기술뿐만 아니라, 이송 침대에서 벌어지는 의학적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노이즈 지형 모델 및 편집 기술'을 활용한 동맥경화 예측 모델 연구가 시작됐다. 노이즈 지형 모델 및 편집 기술은 인공위성으로 지형의 높이 지도를 제작해, 침식·풍화 등으로 지형이 어떻게 변할지 가상 실험·예측하는 모델이다.

고 교수는 이를 혈관에 그대로 적용했다. 원통형 혈관을 세로로 잘라 펼치면 평면이 되는데, 혈관 벽에 쌓인 지방은 '산맥'처럼 튀어나온 형태가 된다. 그는 "가상 실험을 통해 혈압·당뇨병·혈당·고지혈증 등의 경과를 1년 정도 미리 보는 모델을 만드는 연구"라며 "현재 협력자를 찾는 단계"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고 교수는 손으로 꿰매기 어려운 혈관을 수술하는 로봇, 혈전이 심장을 막아 급사하는 사고를 예방하는 키트를 연구하고 있다. 3D 프린팅으로 복강 내시경을 디자인하고 실제 돼지에 실험해 3D 프린팅의 의료 활용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스타트업 'THE WAVE TALK'과는 세균 검출 센서를 개발 중이다. 그는 이 스타트업의 의학 자문위원으로서 해외 펀딩에도 참여해 투자자들에게 해당 기술의 중요성과 임상실험 결과를 설명한다. 고 교수는 "기업이 임상까지 진입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10년 간 의사과 과학자를 오가면서 고 교수가 느낀 것은 의사와 과학자의 간격이 크다는 점이다. 그는 "의사는 과학을 잘 모른채 현재에 안주하고, 과학자는 의학계에서 정작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채 현재와 과거 상황으로 기술의 사업성을 판단한다. 과학자가 의료 산업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고 교수는 마지막으로 "유니콘 기업이 되려면 '맨파워'가 가장 중요하다"며 "앞으로 과학을 기반으로 의학의 미래를 설계하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람들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Q. 스타트업 자문가 외에 어떤 일을 하는지?
A. 스타트업 컨퍼런스에서 강연을 하고, UNIST와 KAIST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 이들의 아이디어를 의학에 접목시키는 일도 합니다. 

Q. 관심 있는 분야는?
A.
입체 공학과 레고를 좋아해요. 의대 인턴을 할 때는 쉬는 시간마다 을지로에 가서 금형을 배웠어요. 의료 장치를 만들고 싶은데 가장 기본이 되는 배경지식이 금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계속 배우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Q. 공학 공부하는 의사 모임(COACT)에서도 활동하고 계신데?
A. 군의관 때 과학고 출신들과 의료 기술에 필요한 공학 기술을 공부하자고 만들었어요. 당시 모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서 원아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아빠이자 의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비콘 페어링'이라는 아이와 엄마를 연결하는 유비쿼터스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어요.

Q. 대전에 자주 오면서 느낀점은?
A. 대박 날 것 같은 아이템들이 많은 매력적인 곳이에요. 반면 의학 분야가 바이오만큼 강하지 않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젊고 능력있는 전문가들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렵죠. 교류를 원하신다면 판교를 추천합니다. 2년 정도 강연을 다녀 보니 성장 속도가 빠르고 청중 수준도 높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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