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표준연 박사, 반도체 누설전류 예측 '임계 거칠기' 신개념 제안
"미국 반도체 기업과 협업···현장 검증 완료, 바로 적용할 수 있어"

"반도체 성능 개선에는 꼭 필요하지만, 빠르게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이 시간을 내서 연구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틈새 기술'이랄까요?" 신채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구조측정센터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이렇게 소개했다.
 
신 박사가 찾은 틈새 기술은 박막의 '거칠기'. 그는 지난달 4일, 반도체 공정 중 생기는 누설전류를 예측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임계 거칠기'를 발표했다. 그동안 반도체 불량 파악을 위해 측정하던 박막의 '두께'에서 시선을 돌려 박막의 '표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다.
 
신개념이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임계 거칠기를 실제 반도체 공정에서 평가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그는 "반도체 기업이 사용하는 설비에 연구 결과를 적용해 공정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줬다"며 "반도체 산업 어디든 바로 적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신 박사의 현장 밀착형 연구는 기업에서 쌓은 경험을 발판으로 시작됐다. 그는 국내 대기업 양산·포토 설비 분야에서 약 6년간 일했다. 현장 속사정을 꿰뚫고 있다 보니 연구 주제를 고를 때도 쓸모 있을지를 가장 먼저 따져본다. 이번 연구도 그랬다. 신 박사는 "거칠기가 반도체 공정에서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신채호 박사는 나노물리학을 전공했다. 2015년 삼성전자에서 표준연으로 자리를 옮겨 반도체용 핵심 부품 소재 평가 플랫폼, 차세대 반도체 소자용 공정 등을 개발했다. 신 박사 뒤에 보이는 장비는 표준연에서 만든 원자힘현미경(AFM)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신채호 박사는 나노물리학을 전공했다. 2015년 삼성전자에서 표준연으로 자리를 옮겨 반도체용 핵심 부품 소재 평가 플랫폼, 차세대 반도체 소자용 공정 등을 개발했다. 신 박사 뒤에 보이는 장비는 표준연에서 만든 원자힘현미경(AFM)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 박막 얼마나 거칠면 문제되나?···'임계 거칠기' 정의하다

'거칠기'는 반도체 박막 표면의 거친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이 개념은 최근 박막 두께가 얇아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예전에는 박막 두 장을 겹쳐도, 박막이 두툼해서 거칠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께 3 nm(나노미터)인 초박막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래쪽 박막이 거칠면 위쪽 박막에 영향을 줘 공정 중 전류가 새는 일이 발생한다.
 
신 박사는 반도체 박막 하부층의 거친 정도가 상부층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지점을 밝혀내고 이를 '임계 거칠기'라고 정의했다. 이 결과를 얻기 위해 거칠기가 다른 박막을 만들어 누설전류를 측정하고, 표준연에서 개발한 '원자힘현미경(AFM·Atomic Force Microscope)'으로 박막의 거칠기를 분석했다.
 
원자힘현미경은 바늘 같은 탐침(팁)이 시료를 훑어가며 얻은 신호를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비다. 원자힘현미경 내부에 박막을 넣으면 위에 달린 탐침이 박막에 닿으면서 그 형태를 컴퓨터로 전달한다.
 
신 박사는 "카메라나 광학 장비가 사진을 찍어서 눈으로 거칠기를 본다면, 원자힘현미경은 표면을 만지는 것과 다름없어서 거칠기를 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연의 원자힘현미경은 해외 반도체 기업을 이번 연구의 협력자로 섭외할 때도 큰 도움을 줬다. 신 박사는 "원자힘현미경의 성능은 기계마다 다른데, 표준연의 원자힘현미경은 작은 거칠기도 구분하는 신뢰도가 높은 장비라는 점을 내세웠다"고 말했다.

원자힘현미경(왼쪽) 안에 시료를 넣으면 위에 부착된 탐침(오른쪽)이 시료를 훑어가며 거칠기를 측정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원자힘현미경(왼쪽) 안에 시료를 넣으면 위에 부착된 탐침(오른쪽)이 시료를 훑어가며 거칠기를 측정한다. <사진=한효정 기자>
실험 후반부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루커(BRUKER)'에서 진행됐다. 신 박사와 브루커 연구팀은 기업이 사용하는 반도체 장비에 임계 거칠기를 적용했고, 임계 거칠기를 반도체 품질관리 기준 중 하나로 쓸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신 박사는 연구 과정을 돌아보며 "정말로 쓸 수 있는 기술을 만든다는 목표를 이루려면 기업과의 협업이 꼭 필요했다"며 "반도체 공정에서 사용하는 수십 억 원에 달하는 장비로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은 연구에 많은 비중을 두지 못하고, 보안 때문에 공동연구를 하기 어렵다"며 "기회가 된다면 현장에서 문제가 생긴 소자 샘플들을 얻어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브루커 외에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김정환 박사가 연구 기획에 함께했다. 소자 제작과 실험에는 당시 서울대 학생연구원이었던 문승현 박사(현재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소속)가 참여했다.
 
지금까지 반도체 연구만 줄곧 해왔던 신 박사는 앞으로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그는 "원자힘현미경으로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며 "세포와 에너지 측정, 패턴 만들기, 에너지 하베스팅 등 색다른 연구를 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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