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듣는다③] 최남석 전 LG화학 기술연구원장새로운 분야 선점 철칙으로 운영···국내 '유전공학' 뿌리 내려"열린 연구소 능력 위주 인사정책 연구자 자긍심" 강조

지난 10일 현 정부의 출범 2주년을 맞았다. 한국의 현실은 산업, 경제, 일자리, 성장 동력 등 여러 지표에서 빨간불이 켜지며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무엇보다 과학선진국들이 인공지능, 자율차, 우주탐사 등 미래 과학기술 선점을 위해 질주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과학기술 기반의 미래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며 방향성을 잃고 있는 상태다. 본지는 과학계 원로와의 인터뷰(또는 가상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 연구자와 정부의 역할을 들어 보았다.<편집자 편지>

'Mr. What's new?'
최남석 前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을 대신하는 별명이다. 그는 원장 재임 시기 매일 아침 연구소를 순회하며 만나는 구성원마다 "What's new?"라고 인사를 건넸다. 연구소에 재임했던 15년간 한결같았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 'What's new?'는 그의 별명이 됐다.

그는 왜 이처럼 같은 인사를 반복했을까. 단순히 잘 지내냐는 안부였을까? 아니다. 하룻밤 사이라도 재밌는 연구 결과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묻는 말이었다. 그는 이 짧은 말을 통해 연구원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추구해야 함을 늘 자극했다. 
 

 

최남석 전 원장은 부지런히 배우고 도전하는 직원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대했다. 또,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도 가르쳤다. 자신 역시 새로운 분야를 찾아 공부했다. <사진=대덕넷DB>
최남석 전 원장은 부지런히 배우고 도전하는 직원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안주하는 사람에게는 엄격하게 대했다. 또,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의지도 가르쳤다. 자신 역시 새로운 분야를 찾아 공부했다. <사진=대덕넷DB>
후배들은 이 한마디에 매일 긴장됐다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점차 'What's new'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최 박사가 당부한 도전 정신은 농약·화학제품·화장품 등을 만들던 전통 화학 회사인 LG화학이 생명과학·소재·정밀화학 등 신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의 부드럽지만 촌철살인의 질문이 구성원을 항상 깨어있게 만드는 촉매가 된 셈이다.

'원로에게 듣는다' 3편은 최남석 前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의 회고록 '비행기에는 백미러가 없다'를 통해 민간 연구소가 선진국형 연구 체제를 갖추는 데 기여한 성장 동력과 연구소 운영 철학을 살펴본다.

◆ "어떻게 월드 클래스 연구소 만들지 고민"···시대 흐름 읽다

최 원장의 운영 철학은 분명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분야를 지속해서 개척하고 선점해 나가는 것이다. LG 측의 든든한 신뢰 아래 15년간 기술연구원장 직을 수행한 점도 그가 소신 있게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그는 "기업 연구소는 최소한 10년 후에 기업이 먹고살 것을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 아래, 가야 할 분야를 고민하고 개척했다. 다른 기업보다 먼저 새로운 분야를 선점해야 한다는 철칙으로 연구소를 이끌었다"고 강조했다.

1995년 LG화학 부사장 겸 기술연구원장 직을 퇴임하며 발표한 고별사에서도 최 원장은 "'어떻게 하면 우리 연구소를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연구소로 만들까'라는 변하지 않는 신념 하나로 연구소를 운영해 왔다"며 "항상 미래지향적 사고로 연구소를 운영하려 노력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 대해 한 점의 후회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시기를 3단계로 나누고 '연구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해 추진했다. 제1기에 모방형 R&D 전략으로 기본 체제를 잡아가며 기존 공정을 개선, 제2기에는 독자적인 연구를 구축, 제3기에는 연구소를 국제적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 미래를 준비해 나갔다.

최 원장이 염두에 둔 연구소 장기계획 중 하나는 '유전공학'. 당시 우리나라는 유전공학 정보는 물론이고 전문 인력이 부족한 신약 불모지였다. 고분자화학을 전공한 최 박사도 유전공학 연구를 책임지는 게 막막했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유전공학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국내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 집약 산업으로서 제3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유망 산업이었죠. 기술 장벽이 생기기 전에 유전공학 기술을 따라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동 중앙에 있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문구 옆에 선 최남석 전 원장. 이 문구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이라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소망이다. <사진=대덕넷DB>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동 중앙에 있는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문구 옆에 선 최남석 전 원장. 이 문구는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이라는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소망이다. <사진=대덕넷DB>
해외에서 박사를 영입하고 장비 구축과 연구 방법 정립 등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유전공학 연구가 LG에 뿌리를 내렸다. 1981년도 유전공학연구부 설치를 시작으로 유전공학 전문연구동 준공, 해외 현지연구소 LBC 설치, 하이테크 리서치 파크 건설 등은 국내 유전공학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그룹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했다고 전한다. 리더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없었던 길을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의미다.

"선진국의 연구 동향을 파악해 산업화 가능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고 경영자(구자경 회장)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결정한 덕분에 실행할 수 있었어요. 그 다음은 모두가 역사였지요."

당시 국내 제약회사들이 복제약으로 돈을 벌 때 LG화학은 유전공학 연구를 통해 글로벌 신약 개발을 꿈꿨다. 곧 세계 최초 성과가 잇따랐다. 상품화한 유전공학적 암 질환 치료제 감마 인터페론 개발, 한국형 C형 간염 바이러스 염기서열 규명, 인간 성장호르몬 유트로핀 개발, 제4세대 세파계 항생제 개발 등이다. 

◆ 능력에 따른 인력 배치···멀리 보며 해외 박사학위 지원도

연구소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인재양성에도 주력하며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었다. 최 원장이 설명하는 인재 발굴 소신은 ▲채용에는 소장을 비롯한 최고 간부 전원이 참석한다 ▲핵심 연구원은 직접 뽑는다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제한한다 ▲문화적 리더를 찾는다 등이다. 그는 연구원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여러 제도를 도입했다.

1992년 최 원장이 연구소에서 처음 시도한 '연구위원 직제'는 연구원을 일반 임원과 동등하게 대우하되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관리 업무를 배제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2008년 LG화학 기술연구원에 공식적으로 도입됐다.

특히 그가 강력하게 추진했던 것은 석사 연구원의 해외 박사학위 취득 지원제도다. 이를 실행하려면 비용이 따랐지만, 교육 역시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2005년부터 LG화학 기술연구원을 이끈 유진녕 원장과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등 파견 1호 박사들은 학위를 받고 돌아와 연구소의 핵심 인재로 활약했다.

최 원장은 직급에 상관없이 조직의 리더를 뽑는 '그룹 리더 제도'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능력만 있으면 직급이 낮은 사람이 리더가 되어 연구개발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 "세계 인재 맞이하는 열린 연구소로···자긍심 가져라"

LG화학은 2000년에 세계 30대 화학회사 진입, 창사 100주년이 되는 2047년에는 세계 10대 화학회사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최 원장은 이 계획을 달성하기에 당시 사업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 몇 가지 제언을 했다.

민간연구소는 물론 정부출연연구기관, 국내 벤처 기업도 그의 제언에 주목해 볼만 하다. LG화학은 2018년 세계 화학회사 10위에 선정되며 목표를 30년이나 앞당겼으니 말이다. 

최 원장이 세계 수준의 연구소로 성장하기 위해 강조한 것은 해외 연구인력 확보다. 그는 "지금까지 추진해 온 유학 특혜 시책을 계속 시행하고 외국 연구 인력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며 "특기와 실력이 있으면 국적, 인종, 성의 차별 없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열린 연구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도 강조했다. 그는 "연구의 최대 적이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가 팽배한 조직, 상사에게 의존하는 조직,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많은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능력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세 번째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연구자 모두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일할 것을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생 원동력인 '캔 두 스피릿(Can Do Spirit)'을 소개한다. 

"나의 생활철학은 '하면 된다'였다. 요즘 젊은 세대는 '캔 두 스피릿'을 1970년대 개발독재 시절의 낡고 고루한 사고라고 치부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순전히 내 힘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서 운명을 개척하고 조국에 돌아와서는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민간 연구소에 유전공학 연구의 씨를 뿌렸다. '캔 두 스피릿'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 정신을 공유한 동료, 선후배와 '더불어' 만들어 낸 것이다."
 

 

작년 8월 최남석 전 원장의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최 원장과 연구소에서 함께했던 후배들 중 일부는 LG를 떠나 벤처를 창업하는 등 국내외 바이오·신약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CFO,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 파이안바이오테크놀로지 한규범 대표 등이 있다. <사진=대덕넷DB>
작년 8월 최남석 전 원장의 회고록 출간기념회에서 후배들과 함께. 최 원장과 연구소에서 함께했던 후배들 중 일부는 LG를 떠나 벤처를 창업하는 등 국내외 바이오·신약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김용주 대표와 박세진 CFO, 알테오젠 박순재 대표, 파이안바이오테크놀로지 한규범 대표 등이 있다. <사진=대덕넷DB>
◆ 최남석 원장은
1935년생으로 미국에서 유기화학 석사, 고분자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 벤처 ALZA에서 합성 고분자물질 크로노머(CHRONOMER)를 발견했다. 고국에 돌아와 1974년부터 3년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화공연구부장으로 재직하며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기초 소재인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했다. 1980년, 당시로써는 드물게 국책 연구소에서 민간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15년간 럭키중앙연구소(현 LG화학 기술연구원) 소장을 지냈다. 이후 LG화학 고문을 맡다가 1999년 퇴직했다.
 
                                                                                  고별사(告別辭)

친애하는 연구원 여러분! 오늘 발표를 통해 여러분들께서도 아셨겠지만 본인은 금년 말을 기하여 정년 퇴임하게 되었습니다. 1월 1일부터는 그동안 고분자연구소를 맡아 운영해 오신 여종기 소장께서 부사장으로 승진하시어 기술연구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CU의 주력 사업인 석유화학 분야의 연구개발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으며, 앞으로도 기술연구원을 훌륭히 이끌어 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여러분들께서도 신임 여종기 원장을 성심껏 도와주시고 새로운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이곳에 몸담은 지도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흔히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만, 한국의 빠른 R&D 환경의 변화를 생각할 때 그동안 우리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1979년에 기업 연구소로는 처음으로 대덕연구단지에 입주하여 50여 명의 연구 인력으로 시작한 이래 중앙연구소로서의 기틀을 잡았으며, 전문연구소 위주의 연구개발 본부 체제를 거쳐, 지금처럼 650명에 이르는 연구 인력이 종사하고 있는 기술연구원 체제로 성장하기까지 우리의 연구개발은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고 믿습니다.
원래 저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몇 년 전 신년사에서 말했듯이, 비행기 운전석에는 백 미러(back mirror)가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제 성격에 맞지 않을 뿐더러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생각하기에도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상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과거를 돌이켜 보는 일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면 될 것이고, 평가는 먼 훗날에 받으면 될 것입니다.
15년 동안 저는 변하지 않는 신념 하나로 이 연구소를 운영해왔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 연구소를 월드 클래스(World Class)의 연구소로 만들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 왔고 항상 미래지향적 사고로 이 연구소를 이끌어 가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 대해 한 점의 후회도 없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낸 이곳에서 생활한 것에 대해서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저의 재임 기간 중 의도하지 않은 일로 피해를 입었던 분이 계시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이맘때쯤 저는 미국에 있었습니다. 미국 출장 기간 내내 저는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내에 우리 연구소가 'World Class' 연구소로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해 골몰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CU에서는 2000년에 세계 30대 화학회사로 발전하고, 창사 100주년이 되는 2047년에는 세계 10대 화학회사로 진입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계획이 현재의 사업만 가지고는 달성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사업 영역의 재조정 없이는 발전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제 생각에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보아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요, 또 하나는 R&D 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 보두가 Globalization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 중 혹시 전략적 제휴는 비즈니스 측면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략적 제휴의 핵심은 그 기업의 기술 수준에 대한 평가입니다. 그 기업의 기술 수준에 대한 명확한 평가 없이는 제휴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제휴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업의 기술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정보의 원활한 제공과 획득, 그리고 평가입니다. 요즈음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든지, 정보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든지, 인공위성을 띄운다든지 하는 것 모두가 어떻게든 필요한 정보를 남보다 빨리 얻고자 함입니다. 이제 PC 없는 연구 생활이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어루만지는 식의 생활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보의 습득이란 마치 우리 몸의 오감과 같은 것이어서, 보고 듣고 하는 기능이 제대로 돌아갈 때 건강하듯이 정보의 획득, 유통이 원활할 때 연구개발이나 사업의 제반 문제들이 잘 수행될 수 있습니다.

비전 달성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인 R&D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우선 우리 R&D가 세계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전략적 제휴나 아웃소싱 추세는 연구개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연구개발 측면에서 이를 선도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따라서 이러한 추세에 부흥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 자신이 세계 수준의 연구소로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주고받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협력과 제휴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World Class Research Institute'란 어떤 연구소를 지칭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나름대로는 세계 수준의 연구 하드웨어를 갖추고, 세계 수준의 연구 인력들이 모여, 세계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는 곳이 'World Class'라고 생각합니다. 동부단지의 건설로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연구소가 건립되었고, 여기에 걸맞은 기기들도 속속 갖추어지고 있습니다. 남은 것은 연구 인력을 어떻게 하면 세계 수준으로 확보하고 육성할 것인가 하는 점과, 어떻게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연구소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세계 수준의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추진해 온 연구인력 고도화 정책(유학 특혜 시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는 외국 연구 인력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기와 실력이 있는 연구원이면, 국적, 인종, 성의 차별 없이 누구나가 일할 수 있는 오픈된 연구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례로 지금 현재의 연립주택을 개조하여 외인 숙소로 만들려는 계획도 추진 중에 있습니다. 'Internal Globalization(내부의 세계화)'이 되어야만 세계를 무대로 당당히 경쟁을 하고 전략적 제휴를 할 수 있는 연구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연구소 운영과 관련된 점입니다. 연구소는 무엇보다도 능력 본위로 운영되어야 하며, 연구원이 스스로 자기의 일을 찾아서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의 최대 적이라 할 수 있는 권위주의가 팽배한 조직, 상사에게 의존하는 조직, 권한은 없고 책임만 많은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능력에 따른 평가와 보상이 공정하게 주어지도록 조직이 운영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결국은 능력주의에 기초를 둔 사회가 가장 공평하고 합리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능력 위주의 평가를 해왔다고 생각합니다만, 앞으로 더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을 펴 나가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 모이신 여러분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세계적 수준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지 않는다면 어떠한 노력도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세계인이며, 내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긍지를 가지고 연구에 전념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1995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 시점이면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감회도 각자 다르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저로서는 금년 한 해가 유난히도 저의 기억에 남는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15년을 몸담고 있던 이 연구소를 퇴직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우리가 World Class의 연구소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는 것도 바로 여러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긍지를 가지고 일하십시오. 여러분이야말고 대한민국 제1의 과학자요, 엔지니어입니다.

* 최남석 전 원장이 1995년 12월 LG화학 부사장 겸 기술연구원장직에서 퇴임하면서 했던 고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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