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서중해 KDI 소장, 대덕열린포럼서 '기업' 중심 특구 강조
혁신 클러스터 성공, 오랜 기간 숙성된 여러 조건 필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기업에 달렸는데 기업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인 것 같다. 이곳에는 아쉬움이나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서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소장이 대덕연구개발특구(이하 대덕특구)에 쓴소리를 던졌다. 지난 28일 개최된 대덕열린포럼에 처음으로 과학계 전문가가 아닌 경제학자가 연사로 나섰다. 
서 소장은 '유니콘, 행복한 가족, 안나 카레니나 원칙'을 주제로 대덕특구의 문제점과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 요건을 짚었다.

그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인용해 "좋은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여러 조건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일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개최된 대덕열린포럼에 서중해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이 '유니콘, 행복한 가족, 안나 카레니나 원칙'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 소장은 "대덕특구는 과연 행복한 가족인가"라고 물으며 "과학입국 기술자립 비전을 어떻게 현실 경제로 실현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지난 28일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개최된 대덕열린포럼에 서중해 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이 '유니콘, 행복한 가족, 안나 카레니나 원칙'을 주제로 발표했다. 서 소장은 "대덕특구는 과연 행복한 가족인가"라고 물으며 "과학입국 기술자립 비전을 어떻게 현실 경제로 실현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 대덕특구 행복한가?···"이대로 가면 미래는 '그럭저럭'"

서 소장이 본 대덕특구는 구성원들의 태도, 환경 조건, 시의 역할, 중앙과의 균형 등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가 꼽은 가장 큰 성장의 걸림돌은 '주인의식' 결여다. 서 소장은 "산학연 협력·연계·개방이라는 구호는 난무하지만, 주인은 없다. 대전시도 보조 역할에 그칠 뿐"이라며 "대덕특구와 대전시가 분리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대덕특구에 바닥을 깔아줘서 흔들리는 폭이 적은 만큼 절박함이 없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대덕특구의 미래는 지금처럼 그럭저럭 유지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서 소장은 기업 중심의 대덕특구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기업이 주인이 되고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대덕특구는 현장의 목소리를 형식에 상관없이 듣고 반영하도록 힘써야 한다. 개방·협력과 실험·모험이 가능한지 돌아보자"고 주문했다.
비대한 중앙과 객체가 된 지방의 불균형 극복도 필요하다. 서 소장은 "우리나라가 정체된 원인 중 하나는 중앙 집중형 체제"라며 "이 시대에는 정부의 과도한 작동 방식이 맞지 않는다. 이는 국가와 KDI의 고민이자 나의 고민이다"라고 덧붙였다.

2005~2017년 대덕특구의 일부 통계 자료. 매출액과 직원 수가 2011년부터 정체됐다.<출처=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특구통계자료> 서 소장은 이 외에도 우리나라와 대덕특구의 현실을 나타내는 여러 자료를 보여줬다. 이에 따르면, 현재 나스닥 상장 기업 3461개 중 한국 기업은 하나뿐이며 2012년부터 '이스라엘 창업' 구글 검색량이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 대덕과 판교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6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 시점부터 대덕과 판교의 '창업·스타트업·벤처' 언급량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2005~2017년 대덕특구의 일부 통계 자료. 매출액과 직원 수가 2011년부터 정체됐다.<출처=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특구통계자료> 서 소장은 이 외에도 우리나라와 대덕특구의 현실을 나타내는 여러 자료를 보여줬다. 이에 따르면, 현재 나스닥 상장 기업 3461개 중 한국 기업은 하나뿐이며 2012년부터 '이스라엘 창업' 구글 검색량이 한국을 추월하고 있다. 대덕과 판교의 상황도 비슷하다. 2016년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개소 시점부터 대덕과 판교의 '창업·스타트업·벤처' 언급량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 토론 열기···"주인 자세로 목표 향해야 관료 개입 줄어"

발표 후 서 소장과 참가자들은 1시간 동안 대덕특구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 참가자는 실험과 모험이 조직에도 반영될 수 있냐고 물었다. 서 소장은 "지금까지 대덕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자리는 줄곧 관료 출신 인물이 맡아왔다"며 "구성원들이 이사장 후보에 기업가를 추천하거나 낙하산에는 반기를 드는 등 적극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중해 소장은 "대덕은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며 "앞으로 KDI와 대덕의 교류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서중해 소장은 "대덕은 경제학자에게 중요한 연구 대상"이라며 "앞으로 KDI와 대덕의 교류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한 기업인은 인사만으로 생태계가 바뀔 것 같지 않다며 구성원들의 태도를 언급했다. 그는 과거 스위스 사례를 들며 "스위스의 연구개발 예산 중 3분의 1은 조건을 달지 않고 연구에 투자됐는데 큰 성과는 여기서 나왔다"며 "연구자와 기업인을 돈 먹는 하마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참가자는 "대덕은 본래 연구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나 이제 연구와 사업화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 전환기를 맞았다"면서 "이에 따라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온갖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생각이 필요한 때"라고 풀이했다. 서 소장은 "연구 중심에서 기업 중심으로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업을 활용해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인이 자아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에 서 소장은 "우리가 목표 수준을 높이고 주인의 자세로 이를 달성하려 한다면 관료의 개입도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안나 카레니나 원칙 보여준 '이스라엘'

발표 앞단에는 서 소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해 '시도와 실패'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사연이 소개됐다. 

올해 그가 만난 이스라엘 벤처 캐피털 전문가들은 안나 카레니나의 원칙에 따른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부의 정책 중 도움이 되는 것과 발목을 잡는 것이 무엇이냐는 서 소장의 물음에 이들의 답변은 "별로 없다"였다. 서 소장은 "벤처 캐피털 OurCrowd 관계자에 따르면 그들의 기업 생태계는 다국적 전문가·투자자·학계·인큐베이터·정부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정부 역할이 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벤처 캐피털 PICO Partners는 서 소장에게 실패 박람회를 제안하는 등 실패를 통한 학습을 강조했다. 이 기업은 어린이 대상 STEM 교육에 '기업가정신(Entrepreneur)'을 추가한 STEEM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서 소장은 "이스라엘 기업인, 대통령, 일반인 모두 시도하고 실패하라는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며 "혁신 클러스터의 성공은 단순하지 않다. 오랜 기간 숙성을 거쳐 나온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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