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장인순 前 한국원자력연구소장
"현장 모르는 탁상행정의 극치, 무지의 소치"

정치가들이 잠자는 밤에 국가의 경제가 성장한다고 했던가? 작은 가게도 운영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재벌을 개혁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서  오후 6시가 되면 연구실 불과 컴퓨터를 끄라고 밀어붙이고, 어기면 벌이나 문책을 받아야 한다. 이런 나라에 희망과 미래가 있는가?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의 극치이고, 무지와 무식의 소치가 아닌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자고 싶으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겠지만 가난한 대중은 밤낮으로 피땀 흘리면서 일을 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연구실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고 추월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가면서 연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밤을 새우면서 연구하는 자유마저 박탈하는 국가에 미래가 있는가?

주 52시간 연구개발은 R&D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의 연구개발 근간을 뿌리째 흔들어 뽑아버리는 것이다. 밤새워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시간외 수당을 달라고 쇠파이프 들고 길에서 데모한 적이 있는가?

길에서 데모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연구실에서 밤새워 연구하는 것이 쉬운가? 60여년전 4.19혁명 때 대학 3학년 학생으로 데모에 참여해 보았지만 데모같이 신나(?)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우리는 빈손으로 시작했다. 주 80시간 이상 연구실에서 그 많은 밤을 지새우면서 한국의 원자력기술 자립을 이뤄 놓았다. 주 52시간 근무는 열심히 일하는 연구원들에게는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이유는 주 52시간이 모자라는 많은 연구원들은 연구를 하기 위해 토요일, 일요일을 이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연구자들은 주말에도 쉬지 못해 더 힘든 삶을 살아야한다. 

어떤 연구 과제는 연구의 속성상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많다. 특히 연속 조업이 필요한 연구자에게도 주52시간을 강제로 적용하는 것은 모든 연구를 그만두라는 것과 똑같다. 연구개발이 무엇인지, 현장에 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제도를 들이대는 것인가?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밤새워 연구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불쌍해 보여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위로하는 마음으로 주52시간 근무를 선물(?)로 주자는 것인가?

오죽하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밤에도 연구하게 해달라는 산업계의 눈물겨운 호소를 정부에 요청하겠는가?

특히 많은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을 시행하면 우수한 연구인력 충원이 어려워 R&D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근에 불거진 미중 무역 분쟁과 한일 무역 분쟁으로 일본의 경제 보복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현장의 상황을 모르는 정부에게 그에 맞는 외교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한국의 모든 과학자·연구자들이 모든 연구실의 불을 밤새 밝히고 노력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해외에 의존하는 부품이나 수출통제 품목을 국산화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적은 연구비로 가장 짧은 시간에 세계 최고의 원자력발전기술자립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있다면 '우리 국민이 세계 어느 국민 보다 우수하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정부는 산업계와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구자들이 마음 놓고 어느 때고 어느 시간이고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무한 경쟁 시대이고 불확실성이 큰 시대다. 때문에 산업계와 과학계 현장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선진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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