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학예술영재고 동아리, 연구하며 레고로 제작
표준연 연구실서 키블저울, 설계도 학습···이해도 '쑥쑥'
과학행사서 대중에게 설명, 큰 호응···진로에도 도움

7월초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찾은 특별한 손님들(?). 앳된 얼굴의 학생들은 보기에도 꽤 규모가 있는 특별한 레고 모형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작동도 가능하다"며 레고모형을 열심히 설명한다.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물리동아리(ARCHPHYSICS) 학생들이 새로운 질량표준인 '키블저울'을 레고로 만들어 우리나라 표준의 시작점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기증했다.

학생들은 1년여 동안 논문 등을 찾아보며 키블저울에 대해 배우고, 레고모형으로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며 가장 적합한 형태로 구현했다. 특히 11명의 동아리원 중 3명의 학생들이 표준연 연구실에서 1주일간 상주하며 연구원들과 교류하고, 키블저울에 대해 직접 보며 익히는 시간도 가졌다.

또 '키블저울대중화단'을 구성해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에 참가해 키블저울을 홍보하기도 했다.

학생들을 지도한 윤기상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교사는 "영재학교 특성상 자체적으로 대학, 연구기관에 인턴십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나 대학 연구실이 대부분"이라면서 "학생들이 직접 출연연 연구원들에게 자문을 받고, 실제 연구실에도 상주하며 연구원 생활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는 질량, 온도, 물질량, 전류 등 단위가 재정의 된 해로 학생들의 정성이 담긴 깜찍한 선물에 표준연에서도 감동했다는 후문이다.

표준연 연구자, 행정직원, 교사, 학생 모두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기에 최종 전시물이 제대로 완성될 수 있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표준연 연구자, 행정직원, 교사, 학생 모두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기에 최종 전시물이 제대로 완성될 수 있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 학생들 "수백번 레고 부수고 제작 반복···연구실 상주하며 연구원 생활 느껴"

레고 키불저울 탄생은 학생들과 함께 한 윤기상 교사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1월 그는 과학캠프로 일본 나고야대를 방문하며 레고를 활용한 전시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노벨상 수상자관에 나고야대 물리학과 학생들이 만든 ATLAS 레고 모형 전시물의 정교함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기존에 레고를 단순한 장난감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를 활용해 과학 학습과 교육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동아리 'ARCPHYSICS' 팀.<사진=강민구 기자>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 동아리 'ARCPHYSICS' 팀.<사진=강민구 기자>
그러던 중 학생들이 물리동아리를 만들고 싶다며 찾아왔다. 이에 윤 교사는 레고로 키블저울을 제작하는 것을 권유했다. 학생들도 관심이 높았다.

윤 교사는 교직생활을 하면서 표준연 음향실에서 연구를 수행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표준연 연구진과 교류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

키블저울 동아리단이 발족하고, 표준연에서 이광철(단장), 우병칠, 김동민 표준연 박사가 이들의 멘토역할을 자처했다. 

레고는 장난감 특성상 한계점이 있었다. 실제 학생들이 제작한 모형은 뼈대가 약해서 움직이니 무너지기도 했다. 약한 부분을 접착제로 붙이며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을 지속했다. 세세한 표현을 위해 모터를 달고, 작은 부품들도 찾아 부착했다. 

연구실에서는 직접 논문을 찾아 연구자들에게 질문하며 공부했다. 실험실 한켠에 부착된 각종 포스터들도 훌륭한 교과서가 됐다. 학생들은 표준연 연구진들과 카톡방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때로는 전화통화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표현해도 원래 취지에 벗어나지 않는가', '이부분은 이렇게 표현가능한가' 등 질문이 계속됐다.  

윤기상 교사는 "완성된 작품이 표현력, 예술성 등을 두루 갖춰 놀라웠고, 이를 과학 행사에 갖고 나가서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면서 "물리, 기계, 전자 특성을 모두 배워가며 레고 부품으로 새로운 키블 저울을 해석해냈다"고 말했다.

레고부품을 활용해 제작하고 부수는 작업이 반복된 끝에 최종 전시물이 완성됐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레고부품을 활용해 제작하고 부수는 작업이 반복된 끝에 최종 전시물이 완성됐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 표준연 "새로운 표준 알려 기뻐···더 많은 소통 기회 기대"

이번 키블 저울 제작에 참여한 학생, 연구자는 물론 표준연 구성원들도 모두 소통하며 과학대중화를 위한 좋은 기회가 됐다는 소감을 전했다.

김동민 표준연 박사는 "단위 재정의로 키블저울 관련 연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일주일 가량 연구실에 있으면서 키블저울에 대해 고민하고 시스템을 고민하는 모습이 대견했다"면서 "시스템 도면과 설계도를 학생들이 참고하도록 공개했으며, 연구진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며 키블저울과 과학적 실험이 이뤄지는 표준연 연구진의 생활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토록 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표준연 연구실에서 연구원 생활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학생들은 표준연 연구실에서 연구원 생활을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김 박사는 "어린 친구들과 대화하며 생각이 신선하다고 생각했고, 이들의 사고 틀을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학생들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참가 학생들 입장에서도 기존에 몰랐던 출연연의 존재와 가치를 알게 되며, 미래 연구자로서의 꿈을 꾸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아리를 이끈 이은석 학생은 "박사님들께 키블저울의 기본 조작법, 시스템, 부품 역할들을 배웠다"면서 "미리 연구원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어 좋았고, 이곳에서 내 분야 연구를 수행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강재웅 학생은 "새로운 질량 표준으로 미세한 차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원분들께 표준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면서 "온도 등 표준 항상성을 맞추고, 실험기구에서 정확한 실험을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강 군은 "키블저울의 작동원리와 과정을 안다. 실제 키블저울과 달리 레고는 결합부위가 약해져 무너지기 때문에 내구성을 높여야 했다. 국가 질량 표준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연구자를 만나 키블저울의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김현서 학생은 "레고 특성상 자재가 약해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면서 "실제 모형 부분을 판단해 레고로 만들었으며, 만들기는 쉽지 않았지만 공부하면서 배우고 이를 구현해 좋았다"고 강조했다.  

김 군은 "표준연에서 엄격한 실험실 조건 하에서 표준을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을 보며 장치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면서 "질량을 제외한 다른 표준장치도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구성원들도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레고 재료비를 확보하기 위해 레고 한국총판에 기획서를 보내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성은정 표준연 홍보실장은 "단위재정의라는 큰 이슈를 대중에게 알릴 필요성이 있었고, 학생, 홍보실 직원, 연구자 모두 적극 나서 일이 추진될 수 있었다"면서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만든 사람들 수준에서 설명하니 대중들의 반응까지 좋아 연구원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에 대학교수를 우선적인 진로로 생각하다 출연연 연구자로의 꿈도 키우게 됐다. 기존에 몰랐던 연구자의 생활을 체험하며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윤기상 교사는 "출연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면서 "상당수 학생들이 서울·경기권 출신이고, 학교도 세종시에 있어 대덕을 잘 몰랐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학생들의 과학적 식견이 넓어지고, 연구원 생활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 중에는 키블저울 실험실에서 앞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면서 "단순한 과학대중화를 넘어 학생 진로 설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은 과학 전시행사 홍보부스에서 레고 키블저울에 대해 설명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학생들은 과학 전시행사 홍보부스에서 레고 키블저울에 대해 설명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레고 모형 전달식. 제작에 참여한 이은석, 김현서, 강재웅 학생과 윤기상 교사(맨왼쪽), 이광철 표준연 박사(맨 오른쪽).<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레고 모형 전달식. 제작에 참여한 이은석, 김현서, 강재웅 학생과 윤기상 교사(맨왼쪽), 이광철 표준연 박사(맨 오른쪽).<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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