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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 어머니도 현역···'연구 실수' '자체 서바이벌' 즐긴다

[미국 대표연구실①]NIH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 비만노화연구실
노벨의학상 대가의 가르침 연구실 스미다····비만 해결 단초
"시키는 연구만 지독하게? No···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가라"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과 더욱 밀접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진화는 연구실에서 시작되죠. 남다른 연구 문화를 보유한 연구실은 연구성과와 인재 배출의 산실입니다. 대덕넷은 올해 '대한민국 대표연구실' 기획 취재를 통해 우리나라의 연구실 문화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또 과학선진국인 미국, 유럽, 일본 등 연구 현장을 심층 취재해 '과학선진국 100년 연구실을 가다' 기획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해외 취재가 순조롭게 완료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최의묵 NIH 박사, 카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 김유수 RIKEN 박사, 스칸디나비아 한인과학기술자협회, 재독과학기술자협회 등 많은 분들께 지면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글 싣는 순서 미국 3편-일본 4편-유럽 3편.<편집자 편지>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NIH NHLBI(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NIH NHLBI(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고령에도 현역으로 연구실에 출근해 연구장비를 시동한다. 사실상 정년이 없다. 연구 자율성도 최대한 보장된다.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자는 매년 지난해의 연구성과와 지출 내역만 제출하면 된다. 이외에 특별한 의무가 없다. 연구자들은 R&D 환경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뿐이다. 결코 누군가 시키는 연구만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없던 길로 향한다. 때로는 자신과의 서바이벌을 즐긴다. 

질병퇴치로 인류에 공헌한다는 기치로 연구개발에 몰입하는 NIH(미국국립보건원)의 이야기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북동 방향 12㎞쯤에 위치한 메릴랜드주 베데스다. 조용한 전원도시의 느낌과는 달리 이곳에는 세계 최고의 생명의학 분야 두뇌들이 몰려있다. 부지 122만3140m²(37만평)에 75개 연구빌딩으로 구성됐으며 생명의학 메카로 통한다.

각 연구빌딩마다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한 고군분투 연구들이 한창이다. 그 중 NIH NHLBI(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 비만노화연구실로 향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NIH는 출입부터 심상치 않다. 10명이 넘는 보안요원으로부터 신원조회·신분확인 절차를 밟는다. 소지품 검사는 물론이고 차량 내부와 하부까지 깐깐한 검사가 이어진다. 약 40분이 넘는 출입심사를 거치고 나서야 출입증을 부여받고 NIH 정문을 통과했다. 

NIH 초창기 건축물의 상징인 100년 역사 빨간 벽돌 건물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NIH 건설 당시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놨다.<사진=박성민 기자>NIH 초창기 건축물의 상징인 100년 역사 빨간 벽돌 건물이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NIH 건설 당시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겨놨다.<사진=박성민 기자>

NIH 홍보 담당자의 안내에 따라 NHLBI 비만노화연구실로 이동하는 길에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NIH는 1887년 설립됐고 부설 연구기관인 NHLBI는 1948년에 설립됐다. 빨간 벽돌을 빼곡하게 쌓아올려 만든 건물은 NIH 초창기 건축물의 상징과 같다.

미로(?) 같은 공간을 돌고 돌아 비만노화연구실에 도착했다. 이곳은 8명의 연구자와 1명의 테크니션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 연구실 리더인 한국계 수석연구자 Jay H. Chung 박사(한국명 정재항)를 만났다.

◆ 노벨의학상 대가의 가르침 연구실에 스미다

정재항 박사가 마셜니런버그 박사와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정재항 박사가 마셜니런버그 박사와의 기억을 회상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재항 박사가 NIH에서 포닥(박사후과정)으로 연구할 당시 '유전암호 해독'으로 196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마셜니런버그(Marshall W. Nirenberg) 박사와 같은 팀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노벨상 수상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돋았다고 회상한다. 노벨상 수상자 옆자리에서 연구한다는 것이 연구자로서 큰 자부심이 됐다. 노벨상 수상자가 전해준 경험에서 나올 수 있는 피땀 어린 조언들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정 박사의 지도교수는 필립레더(Philip Leder)교수. 필립레더의 지도교수가 마셜니런버그 박사이기도 했다. 때문에 필립레더 교수를 자신의 아버지라, 마셜니런버그 박사를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소개한다.

마셜니런버그 박사가 사용했던 연구노트와 각종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사진=박성민 기자>마셜니런버그 박사가 사용했던 연구노트와 각종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비만노화연구실은 아담한 규모이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온기가 연구실 곳곳에 남아있다. 특히 마셜니런버그 박사의 연구 철학이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

"너의 코끝을 따라가라" 마셜니런버그 박사가 입이 닳도록 연구자들에게 이야기했던 조언이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난다면 주저하지 말고 따라가라는 의미다.

도전적으로 다른 연구분야와 융합하며 늘 모험적인 연구자세와 사고방식을 심어줬다. 연구자가 안주하는 곳에는 연구 성과가 없다라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마셜니런버그도 1961년 콜라보 연구에 성공하면서 노벨상까지 이어졌다.
 
그는 "연구자는 항상 좋은 냄새만 따라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모험을 즐기며 낯선 환경에서 연구에 도전하라는 조언을 마셜니런버그가 줄곧 해왔다"라며 "비만노화연구실 다수의 연구 결과들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와 협력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자율적 연구환경? 주체적 '서바이벌'

"시키는 연구만 지독하게 잘한다고요? 이곳에서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시키는 것에 익숙한 포닥들은 '독립연구' 과정에서 모두 떨어집니다. 주체적으로 문제를 찾고 풀어야 하죠. 스스로 자율적인 연구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정 박사가 NIH의 자율적 연구환경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정 박사가 NIH의 자율적 연구환경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사진=박성민 기자>
정 박사의 포닥 시절도 지금과 같았다. 선배 연구자들이 연구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연구 가이드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연구실에서는 연구자 스스로 직접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주체적 '서바이벌'을 강조해왔다. 

뿐만 아니라 비만노화연구실 위층에는 정 박사의 모친이 미생물학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85세 나이임에도 현역에서 연구하는 모습이 NIH에서는 낯설지 않다.

이처럼 정년 없이 연구 자율성이 보장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며 스스로 자율성을 만들어 가는데 있었다고 NIH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노벨의학상 대가의 가르침이 스며든 비만노화연구실에도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연구팀은 중년이 되면서 체중이 불고 체력이 감소되는 현상에 관여하는 효소(enzyme)를 발견했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원활해지지 못하면서 체중이 늘고 체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효소를 활용해 부작용 없는 중년 비만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발견은 계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운'도 따라야···실수를 즐기자"

NIH NHLBI(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 비만노화연구실 연구팀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NIH NHLBI(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 비만노화연구실 연구팀의 모습.<사진=박성민 기자>

정 박사는 비만노화연구실 연구자들의 아이디어를 100% 신뢰한다. 심지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도 좋으니 연구 실수를 즐기자고 독려한다.

예로 영국 세균학자가 푸른곰팡이에 있는 페니실린이라는 물질이 세균을 죽이는 효과를 찾아내 인류에게 '항생제'를 선물했다. 개발 뒷 배경에는 '연구 실수'가 있었다. 

배양 실험 중 실수로 곰팡이 포자에 오염됐고, 곰팡이 주변에서 세균이 죽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실험 실수로 배양 키트를 폐기할 수 있었지만, 세심하게 관찰한 덕분에 항생 효과를 발견했다.

그는 "대부분의 발견은 계획에서 나오지 않는다. 페니실린도 실수로 인해 얻은 결과다. 연구자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라며 "실수를 즐기고 독려하는 연구실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 박사는 "아무리 똑똑하고 많이 안다고 해도 실수로 인한 '운'은 따라가기 어렵다"라며 "상식과 벗어난 생각과 사고를 하는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 바보 같은 아이디어일지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지 도전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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