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삼용 표준연 박사, '굽힘' 감지 센서 개발
복잡한 알고리즘 필요 없어···'스마트신발'서 활약 기대
"어떤 움직임이든 측정···세상에 없는 것 만들 때 재밌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 우삼용 박사의 연구실. 문 옆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벨이 울렸다. 우 박사가 만든 무접점·무전원 센서다. 평소 우 박사는 기술을 현장에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의 연구실에 기업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유다. <사진=한효정 기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역학표준센터 우삼용 박사의 연구실. 문 옆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벨이 울렸다. 우 박사가 만든 무접점·무전원 센서다. 평소 우 박사는 기술을 현장에 연결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의 연구실에 기업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이유다. <사진=한효정 기자>
2년 만에 다시 찾은 우삼용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의 실험실. 문 옆에 '우 박사표' 자체 제작 초인종이 하나 더 늘어 있었다. 손으로 꾹 누르면 전기가 통해 소리가 나는 '힘' 감지 초인종. 그 옆에 새로 생긴 것은 손끝만 닿아도 벨이 울리는 '굽힘' 감지 초인종이다. 

우 박사는 연구원에서 센서를 만든다. 압력을 감지하는 압저항 고무를 개발, 이를 이용한 센서가 대표적이다. 이 기술은 대전의 중소기업인 PDK와 성광유니텍 등에 이전되어 여러 센서와 방범창의 탄생에 기여했다.

아주 작은 굽힘도 감지하는 우삼용 박사의 BSR 센서. <사진=한효정 기자>
아주 작은 굽힘도 감지하는 우삼용 박사의 BSR 센서. <사진=한효정 기자>
우 박사는 또 다른 센서를 만들었다며 사무실 한쪽에 있는 작업용 책상으로 안내했다. 그는 어지럽게 섞인 전자부품들 사이에서 지퍼 모양의 얇은 물체를 집어 들었다.

두 개의 전극에 필름이 붙은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센서다. 이름은 'BSR'. 밴드 센시티브 레지스터(Bend Sensitive Resistor)의 약자를 따서 지었다. 힘 감지 센서에서 한 단계 진화한 '휨' 감지 센서다. 힘센서는 특정 부위를 눌러야 하지만, 휨센서는 어디를 눌러도 작동한다.

우 박사가 BSR을 한쪽 끝에 매달고 전류를 연결했다. 손으로 센서를 툭 건드리자 저항을 읽는 기계의 화면에 그래프가 움직였다. 센서가 한쪽으로 휘면 저항 그래프가 치솟았고 반대쪽으로 휘면 그래프가 내려갔다. 센서를 쳐서 흔들면 그래프는 요동쳤다.

우 박사는 "이렇게 민감하게 변형을 감지하는 센서는 없다. 어느 단계까지를 완성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센서가 정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라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일이 재밌다"고 말했다.

이 센서는 평소 우 박사와 교류가 많은 PDK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우 박사는 "PDK가 사람의 발 꺾임을 읽는 군화를 만들기 위해 깔창에 외국산 밴드센서를 사용했는데, 움직임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해 연구실을 찾아왔다"고 떠올렸다.

시중에는 미국 기업 플렉스포인트(FLEXPOINT)와 스펙트라심볼(spectrasymbol)의 밴드센서가 이미 출시됐다. 이 제품들의 생김새는 우 박사의 것과 비슷하지만, 성능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외국산 센서는 힘을 받아도 큰 저항 변화가 생기지 않고 흔들었을 때는 응답속도가 느려 저항 그래프의 진동이 나타나지 않는다. 굽혀진 각도가 30도를 넘어야 신호가 나온다. 한 방향의 굽힘만 읽을 수 있어 양방향의 변형을 감지하려면 센서 두 개를 붙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산 센서들은 스위치, 자동차 시트, 스마트장갑 등 큰 변형을 감지하는 곳에 주로 쓰이고 있다.

우 박사가 예상하는 BSR 센서의 활약 분야는 미국 센서가 장악하지 못한 '스마트신발'이다. 최근 세계 각국은 스마트신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스마트깔창에 센서를 넣어 사용자의 걸음걸이, 균형, 걸음수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우 박사는 "스마트센서는 퇴행성 질병의 전조증상인 걸음걸이 변화와 이동거리, 에너지소모 등도 알려줄 수 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만들어온 BSR 센서들.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그동안 만들어온 BSR 센서들.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현재 스마트깔창에 사용되는 센서는 밴드센서가 아닌, 삼축가속도센서다. x·y·z 세 방향의 움직임을 읽는다. 걸음수를 재는 만보기와 스마트폰 등에도 모두 이 센서가 들어간다. 우 박사는 "만보기는 허리운동을, 깔창은 다리운동을 측정해 걸음수를 측정한다"며 "감지하는 운동별로 서로 다른 복잡한 알고리즘을 설계해야 하고 측정도 부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BSR 센서는 알고리즘이 필요 없다. 우 박사는 BSR 센서를 넣은 자신의 구두를 보여줬다. 걸을 때 발이 굽혀지는 깔창의 부위에 센서가 부착됐다. 걸음수를 보여주는 계기판은 유선으로 연결되어 발목에 고정됐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계기판에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빨리 달려도 몇 발짝 움직였는지 잡아낼 만큼 응답속도도 빠르다.

우삼용 박사는 자신의 구두 깔창에서 걸을 때 발이 꺾이는 부분에 BSR 센서를 붙여 실험했다. 오른쪽 사진에서 구두 겉에 부탁된 것은 걸음수를 나타내는 계기판.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우삼용 박사는 자신의 구두 깔창에서 걸을 때 발이 꺾이는 부분에 BSR 센서를 붙여 실험했다. 오른쪽 사진에서 구두 겉에 부탁된 것은 걸음수를 나타내는 계기판.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우 박사는 이 구두를 신고 일상생활을 하며 센서의 성능을 시험했다. 그는 "알고리즘이 없어도 어떤 움직임이든 살짝 변하는 각도를 측정하는 새로운 원천기술"이라며 "스마트신발 외에도 손의 움직임을 읽는 장갑, 풍향을 감지하는 센서 등에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 박사는 센서의 내구성을 평가하는 장치도 손수 만들었다. 스피커에 연결된 판 끝과 밴드센서에 자석을 붙여 척력을 이용했다. 스피커에서 10Hz 정도의 낮은 주파수가 나오면 플라스틱 판이 움직이면서 센서도 진동한다. 1초에 10번, 하루에 약 100만 번 센서를 굽혔다 폈다 반복할 수 있다. 실험 결과 센서의 성능은 이상 무. 

이 센서의 존재를 알면 미국 회사에서 탐내지 않겠냐는 물음에 우 박사는 "팔아서 돈을 벌 생각으로 한 게 아니다"라며 "국내 스마트신발 연구자들이 이 기술을 가져가 차별성 있는 제품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쉽고 빠르고 정확한 측정을 위한 첨단 센서들이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삼용 박사가 센서 성능을 평가하는 책상. 옆 연구실에서는 센서를 만든다. <사진=한효정 기자>
우삼용 박사가 센서 성능을 평가하는 책상. 옆 연구실에서는 센서를 만든다. <사진=한효정 기자>

대전 기업 PDK는 우삼용 박사와 개발한 센서 시제품을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2019 로보월드'에서 선보였다.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대전 기업 PDK는 우삼용 박사와 개발한 센서 시제품을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2019 로보월드'에서 선보였다. <사진=우삼용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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